[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금리는 물가에 달려 있고, 물가는 부동산에 달려 있다

2024. 3. 1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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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부동산 안정… 금리인하 가능성 ↑
中 주도하는 원자재시장 안정될 듯
한국, 美 따라 성급히 금리 내리면
시중자금 부동산으로 몰려갈 수도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 동시에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향후 경기나 물가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신할 수 없기에 선제조치를 취하기 곤란하고, 데이터를 보면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실제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책을 펴겠다는 말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미국 물가는 부동산이 좌우한다

지난주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의회에 출석하여 인플레가 2%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증언하면서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not far from it)’고 덧붙였다. 이 말에 금융시장이 화들짝 놀랐고 전문가들은 빠르면 오는 6월쯤 미국의 정책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무래도 미국보다 늦어질 것이다. 주축 통화국이 아닌 나라는 중심국의 정책 전환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추진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개월만 버티면 선거용이 아닌 경기침체를 정면으로 대응하는 조치를 보게 될 것 같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금리 인하를 상정하고 자금 운용에 나서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다만 이 모든 것은 물가 움직임, 특히 부동산가격에 달려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이맘때 발표된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3.1%였다. 예상치(2.9%)를 웃도는 바람에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 물가는 2022년 중반에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둔화하면서 물가안정의 기대를 한껏 높였었는데, 다시금 출렁이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사실 1월 CPI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품가격은 내려가는데 서비스가격이 급작스럽게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CPI의 가장 큰 비중(36%)을 차지하는 주거비가 많이 올랐다. 전달보다 0.6%나 상승하였는데, 자가주거비(OER·Owners’ Equivalent Rent)가 크게 오른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자가주거비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용어인데, 실제 임대료가 아니라 주택소유자가 생각하는 집세이므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다만 이 데이터는 CPI를 대략 6개월 정도 후행해 지금까지의 인플레 둔화 속도를 고려할 때 지속해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CPI는 당연히 다시 낮아지게 될 것이다. 파월 연준의장이 언급한 ‘머지않은’시기는 이를 고려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정리하면 미국은 부동산이 안정되고 있어서 인플레는 둔화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일의 물가도 부동산에 달려

미국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또 다른 근거는 중국이다. 중국은 작년 하반기부터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수출국인 만큼 이렇게 물가가 떨어지면 외국으로 나가는 상품가격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수출 상대국의 물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미국의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한 요인일 수도 있다.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물가가 하락하면 디플레에 빠져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까지 중국이 가격상승을 주도했던 국제 원자재시장이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인 물가안정 요인이라 하겠다. 물론 중국이 이런 디플레의 고통을 겪는 이유는 중국의 부동산경기가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은 그간의 디플레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일본의 물가는 2021년에 플러스(+)로 돌아선 이후 이제는 2%대로 올라섰다. 그간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하는 등 물가상승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효과를 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임금상승 정책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물가를 감안한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그동안 깊은 침체에 빠졌던 부동산시장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게 오르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싶다. 일본 수도권 일원의 주택가격이 작년 하반기에 7%대에서 올해에는 10%대로 상승 폭을 넓히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부동산이 관건이다


지금 우리 경기가 최악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실제로 작년에 우리 경제는 1.4% 성장에 그쳐 코로나 이후 계속 둔화하고 있다. 올해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을 모양인데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2% 정도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에 발표된 2월 소비자물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상과 달리 3%를 상향 돌파해버렸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과값이 급등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지 못한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지만, 사과의 CPI 가중치가 0.3%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물가상승 주범을 사과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 그보다는 1년 전보다 값이 무려 71%나 올랐지만, 다들 사과를 계속 산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수요측 물가 불안 요인이 여전하다는 말인데, 쉽게 말해서 시중에 돈이 꽤 많다는 거다. 더군다나 그 돈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어쩌다 부동산시장으로 흐르게 되면 큰일이다. 임대료가 올라 물건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상인들의 호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동산가격이 안정되지 않고서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집값은 미약하나마 떨어지고 있지만,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과거 부동산 갭투자(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투자행태)가 재연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내렸다고 바로 따라 내리기라도 한다면,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동산은 중요했다. 경제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잠시 관심이 멀어질 수는 있어도 부동산은 여전히 중요하다. 적어도 경제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핵심적 고려사항이다. 부동산시장이 안정되지 않고서는 물가가 잡히지 않고,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금리 인하도 기대하기 어렵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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