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세금 무풍… 합성 니코틴, 청소년들 건강도 위협 [And 건강]

민태원 2024. 3. 12.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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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없는 세상] 1세대 전자담배의 진화
빈틈 노리는 ‘담배의 해악’
최근 일반담배(궐련) 흡연율은 계속 줄어드는 대신 신종담배 사용은 지속 증가 추세다. 궐련과 전자담배의 ‘중복 흡연’이 늘면서 금연율이 떨어지고 있다. 또 갖가지 맛과 향을 첨가한 전자담배가 청소년과 젊은 여성을 쉽게 흡연으로 이끄는 등 신종담배 유행에 따른 폐해가 우려되고 있다. 이에 국민일보는 ‘담배 없는 세상’을 타이틀로 담배 및 금연 관련 이슈를 월 1~2회 기획기사로 게재한다. 신종담배의 확산과 문제점, 건강에 미치는 영향, 규제 강화의 필요성 등을 짚어본다. 먼저 빠르게 진화하는 1세대 신종담배 액상형과 궐련형 전자담배의 실태를 살펴본다.

온라인에서 판매·광고되는 궐련형(맨 왼쪽)과 액상형 전자담배. 화려하고 귀여운 캐릭터·디자인으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 SNS·블로그 캡처, 게티이미지

뿌리·줄기 니코틴은 일부 과세 포함
원료·함량 표시 불필요… 깜깜이 판매
담배 해당 안돼 무제한 온·오프 광고

과일향·캐릭터 활용 흡연 부추겨
연초 잎 안쓰면 규제 적용 안돼
담배 정의 포괄적 확대 목소리 커

청소년들에게 ‘핫한’ 액상 전자담배는 기존 연초 잎과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 제품에서 합성 니코틴 제품으로 거의 대체됐다. 줄기·뿌리 니코틴과 합성 니코틴 제품은 현행 담배사업상 담배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아 ‘유사 담배’로 불린다. 이런 이유로 담배 판매나 광고, 경고문구·그림 의무 부착, 세금 부과 등 각종 규제에서 빠져 있다. 다만 줄기·뿌리 니코틴 제품은 법 개정으로 2021년 8월부터 제세 부담금 부과 대상에는 포함됐다. 그 후 ‘완전 규제 무풍지대’인 합성 니코틴 제품이 액상 전자담배 시장을 선점했다. 규제의 빈틈을 타 온라인에서 판촉 광고가 무분별하게 이뤄진다. 이런 광고가 비흡연자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무방비로 노출되는 실정이다.
‘규제 밖’ 합성 니코틴 제품 성행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가 4년간 온라인상(SNS, 블로그 등)에서 전자담배 액상의 판매·광고 게시글을 모니터링한 결과 이런 판도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줄기·뿌리 니코틴 제품의 인터넷 판매·광고 비율은 2020년 50.9%(2805건)에서 2021년 45%(1856건), 2022년 5.7%(273건), 2023년 3.2%(86건)으로 급감했다. 반면 합성 니코틴 제품 비율은 같은 기간 16.1%(885건)→38.8%(1599건)→67.1%(3208건)→64.4%(1753건)로 증가세를 보였다. 또 니코틴 함량은 표시돼 있으나 줄기·뿌리인지, 합성 제품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비율도 2020년 33%(1819건), 2021년 16.2%(668건), 2022년 27.2%(1298건), 2023년 32.4%(881건)로 상당히 높았다.

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11일 “줄기·뿌리 니코틴 제품에도 각종 세금·부담금이 부과되면서 담배 규제는 물론 세금에도 자유로운 합성 니코틴 제품 판촉이 크게 늘었다”면서 “담배가 아니어서 원료나 함량 표시를 굳이 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안에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었는지 깜깜이 상태로 흡연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액상 전자담배 규제의 허점은 편법을 낳고 있다. 줄기·뿌리 니코틴 제품임에도 탈세를 목적으로 합성 니코틴 제품인 것처럼 허위 수입 신고했다 단속되는 사례가 나왔다. 지난해 3월 관세청은 가짜 합성 니코틴 제품 36개 품목, 28만㎖를 적발한 바 있다. 당시 합성 니코틴으로 들여온 액상 전자담배 64건 중 17%(11건)가 허위 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독 물질’ 2%초과 니코틴 몰래 유통

니코틴 함유량이 허가 기준인 ‘2%’를 초과하는 고농도 액상 제품도 시중에 유통 중인 것으로 파악돼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은 니코틴을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은 ‘유독 물질’로 규정하고 특별히 2% 초과 혼합물을 담배 용도로 판매하려면 유해 화학물질 영업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SNS 등에는 허가 여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1% 니코틴은 저리 가라. 2% 고농도 액상’ ‘흡수율 10배 타격감 100배, 하이 니코틴 제품’과 같은 구매 유도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외 온라인사이트에서는 5%, 8% 니코틴 제품도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와 국가금연지원센터가 지난해 5월 킨텍스에서 열린 ‘전자담배 박람회’ 현장 점검 결과 온·오프라인에서 2% 초과 니코틴 액상 판매·광고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화학물질 관할 부처인 환경부는 고농도 니코틴 제품의 판촉과 유통에 대한 감시에 한계가 있다. 담배 규제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합성 니코틴 제품이 담배에 해당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인 이성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고농도 니코틴 제품 흡연은 중독의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니코틴 자체도 심혈관질환과 말초동맥질환 발생을 가중하고 뇌졸중, 고혈압, 상처 치료 지연, 생식·주산기 질환(미숙아 발생, 조산, 자연유산), 위궤양, 식도 역류 등과 연관성 있음이 밝혀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니코틴 액상에 딸기 바나나 청포도 등 다양한 맛과 향을 첨가하고 액상 포장이나 전자담배 기기에도 화려한 이미지·캐릭터를 사용해 디자인을 꾸미는 추세다. 신규 흡연자, 특히 청소년과 여성의 호기심을 사서 ‘흡연 입문(gateway)’을 부추기려는 의도다. 아울러 기기의 배터리 용량과 충전 기능 확대, 액상 잔량 표시 등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 편의성과 액상 흡입 횟수를 늘리고 있다. 현행법상 전자담배 기기·장치나 액세서리는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역시 규제가 불가능하다.

전자담배 액상과 기기·장치, 담배 형태 흡입제류는 물건의 형태 및 제품명에 상관없이 ‘청소년 유해 물건’(여성가족부 고시)으로 지정돼 있다. 청소년 대상 판매·대여·배포가 금지돼 있으며 판촉 시 ‘19세 미만 사용 금지’ 표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단순 판매·광고 게시글에선 이런 규정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감시나 단속도 사실상 힘들다.

담뱃잎 안 쓰는 궐련형 전자담배 나오나

연초를 가열해 나오는 증기를 마시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성인들의 사용이 느는 추세다. 전자 기기에 꽂는 스틱(연초)에는 가향 캡슐을 넣어 담배 냄새 등 거부감을 최소화하고 있다. 또 기기 장치도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비흡연자와 청소년의 담배 사용을 유인하려는 전략이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스틱은 담배로 규제되지만, 가열 장치는 배제돼 있다. 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최근 한 외국회사가 연초 잎을 사용하지 않는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 스틱 개발 계획을 밝혔는데, 국내법상 담배 규제 사각지대 발생이 우려된다”고 했다. 연초 잎을 쓰지 않는 경우 담배에 해당하지 않아 각종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성규 센터장은 “모든 것이 현재 담배사업법에 담배의 정의가 연초 잎 제품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담배 정의가 모든 담배 및 니코틴 제품, 나아가 전자기기·장치류까지 포괄적으로 확대돼야 복지부나 여성가족부, 환경부 등 관할 부처가 전자담배 관련 소관 업무를 수월하고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1대 국회에는 담배 정의 확대 관련 법안이 4건 발의됐으나 논의의 진척이 없어 회기 종료를 앞두고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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