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봉사에 찬양 버스킹… 폐허 같던 교회가 주민 휴식 공간으로

양민경 2024. 3. 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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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사회 홀리 브리지] <1부> 다시 쓰는 교회의 길
<6> 현장을 가다
③ 완주 위봉교회
안양호(왼쪽 다섯 번째) 위봉교회 목사가 지난 2022년 전북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이승익(왼쪽 네 번째) 전주 우리교회 목사와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위봉교회 제공


전북 완주군 위봉교회(안양호 목사)는 해발 600m에 가까운 고지대에 자리한 ‘두메산골 교회’다. 전주역에서 차로 30여분 거리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 뒤 도착한다.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여러 악기와 음향 장비가 실린 버스킹(길거리 공연) 트럭을 지나면 트랙터와 굴착기 등 농기계로 가득한 교회 앞마당이 나온다. 안양호(62) 목사가 고물상 등에서 자비로 구매해 직접 수리·도색한 것들이다.

지난달 29일 교회에서 만난 안 목사는 “그간 모은 농기계가 100대 가까이 되는데 군청에서 보관소도 지어줬다”며 웃었다.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오래된 종탑과 최근 수리된 예배당이 등장한다. 그는 “거동이 힘든 어르신 성도는 주일날 트랙터에 자리를 마련해 예배당 앞까지 태워다 드린다”고 귀띔했다.

언제든 나타나는 ‘동네 목사’

전북 완주군 위봉교회 앞마당에 자리한 트랙터와 포클레인 사이에 선 안양호 목사.

완주는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공개한 ‘지방소멸 위험지수’에서 ‘소멸위험지역 진입 단계’(4등급)에 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교회 주소지인 소양면은 지난달까지 전체 인구 5675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는 39.1%이지만 교회 인근 대다수 거주민은 70·80대다. 60대인 안 목사 부부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2018년 교회에 부임한 그가 이듬해 중고 트랙터를 구매한 것도 농사일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 주민을 돕기 위해서였다. 당시 교회에 적을 둔 성도 6명도 모두 80대였다. 밭을 갈아주는 ‘트랙터 봉사’를 시작으로 빈 땅에 해바라기와 아마란스, 고구마와 고추 등을 앞장서 심었다. 주민과 함께 조성한 해바라기 꽃길은 이제 동네 명물이 됐다.

아예 중장비 면허를 취득한 안 목사는 농사일은 물론 제설 작업 등 일손이 부족한 곳마다 찾아가 거들었다. 마을 행사가 열리면 축하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붕어빵도 만들어 나눴다. 부활절·성탄절 등엔 마을 주민을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성탄 트리 점등식도 열었다.

“저런 목사도 있느냐”는 소문이 돌자 마을에서 먼저 그를 찾았다. 안 목사는 “지금은 ‘마을회의 때 와서 기도해 달라’고도 한다”며 “현재 이장과 부녀회장, 노인회장 등 25분이 교회에서 성도로 함께 예배한다”고 말했다. 산골 마을 주민과 동고동락한 그의 이야기는 EBS 1TV ‘한국기행’과 KBS 1TV ‘인간극장’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교회로 탈바꿈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안 목사는 군산기계공고와 서울시립대를 거쳐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포항과 김제, 익산 등에서 담임 목회를 한 안 목사가 이곳에 온 건 ‘찬송학교’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주변 목회자의 소개로 이곳에 왔을 때 그는 교회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지난 8년간 문을 닫아 꼭 ‘귀신 나올 듯한 산 위의 폐허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고를 나온 데다 군대 공병대 경험이 있어 용접과 목공일이 가능했던 안 목사는 교회 수리에 직접 나섰다. 1년여간 공사를 진두지휘하다 발에 녹슨 못 4개가 박혀 파상풍을 앓고 심근경색이 와 생사의 고비도 넘겼다. 갖은 고생 끝에 완성한 교회는 복층 예배당과 주민 휴식공간 및 탁구장을 갖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사택을 개조해 만든 주민 휴식공간 및 탁구장에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새로 갖췄다. 주민뿐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 누구든 편히 와 이용하라는 취지다.

교회 예배당 위층에 마련된 마로덕선교사님기념실 내부.


새로 단장한 공간엔 예배당 위층의 ‘마로덕선교사님기념실’ 및 ‘근대교회역사문물관’도 있다. 공사 중 강대상 아래에서 1907년 작성한 당회록과 세례교인 명부를 발견한 게 계기다. 기념관 및 역사관에는 1900년 교회를 세운 미국 남장로교 소속 마로덕(1875~1960·루터 올리버 매커친) 선교사를 기리는 물품과 풍금 등사판 등 이전 교회에서 사용했던 물건도 전시 중이다. 현재 그는 방송을 보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교회를 안내하며 마로덕 선교사 등 우리 현대사에 기여한 한국 기독교를 전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찬송으로 지역 섬기는 ‘빌립선교단’

안 목사는 위봉교회 부임 직후부터 이승익 전주 우리교회 목사와 전주 풍남문 광장 등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는 버스킹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포항에서 했던 ‘248 기타 찬송교실’을 수강한 이 목사는 10년 전부터 덕진공원과 풍남문 광장 등에서 기타로 찬송을 연주해왔다. 이 소식을 들은 안 목사가 합류 의사를 밝히며 음향 설비와 악기를 가져왔다. 버스킹 규모는 이전보다 두세 배로 커졌다.

이 목사가 시작한 ‘빌립선교단’에는 현재 안 목사 등 인근 초교파 목회자와 성도 75명이 소속돼 있다. 기타를 멘 선교단원들은 찬송과 포크송을 부른 뒤 모인 이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대접한다. 매주 모이는 관람객 120여명 중 노숙인도 적잖지만 이들 모두 공연에 호의적이다.

이 목사는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버스킹 초반엔 공연 중 술을 드시고 행패 부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오기 전 미리 청소해놓고 기다리신다”며 “명절이나 부활절, 성탄절에는 평소보다 넉넉히 음식을 준비하는데 주변 교회에서 헌신된 동역자가 여럿 찾아와 더 많은 소외 이웃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지금은 감동에 목마른 시대 같다. 교회는 싫어도 교회에 담긴 사연엔 눈물짓는 사람이 적잖다”고 했다. 그러면서 “‘온 땅이 하나님의 성소’라는 마음으로 나의 거주 지역에서 예수로 사는 게 곧 찬양하는 삶 아니겠는가”라며 “이런 기독교인이 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완주=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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