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중 귀신 보이면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겨내자”

박효진 2024. 3. 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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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 수첩-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장재현 감독과 제작 뒷이야기
영화 ‘파묘’의 장의사 역할을 맡은 배우 유해진과 무당 역 이도현 김고은, 풍수사 역 최민식(왼쪽부터).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가 개봉 18일째인 지난 10일 누적 관객 수 800만명을 돌파했다. 2016년 나홍진 감독의 ‘곡성’(687만명)을 넘어 한국 오컬트 장르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이 됐다.

‘파묘’는 묘를 이장하거나 화장하기 위해 기존에 만든 무덤을 파(破)하는 것을 뜻한다. 제목부터 공포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파묘는 의뢰인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는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는 어릴 적 고향 경북 영주 뒷산의 100년 된 무덤에서 굿판과 함께 묘를 파내는 걸 보고 충격받은 기억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에도 도전해 10여 차례 이장에도 직접 참여했다고 밝힌 장 감독은 실제 무속인과 풍수사, 장의사의 고증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장 감독은 영화 ‘검은 사제들(2015)’에선 구마 의식을 하는 가톨릭 신부의 이야기를 다뤘고 ‘사바하(2019)’에서는 불교에서 파생된 신흥 종교집단의 비리를 쫓는 목사를 주인공으로 불교와 기독교적 세계관을 그렸다.

파묘는 오컬트 장르의 피날레로 “무속 아이디어와 퍼포먼스를 쏟아냈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컬트 장르의 영화를 제작해온 장 감독이 집사 직분을 가진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다.

하정완 꿈이있는교회 목사는 “교회 개척 초창기부터 영화와 연극 등을 접목한 목회를 하다 보니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교인들이 적지 않다”며 “장 감독도 그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유튜브 채널 ‘더미션’ 박기자 수첩에서는 파묘에 얽힌 뒷이야기와 장 감독에 대해 알아봤다.

믿음으로 이겨낸 ‘파묘’ 촬영 현장

영화에서 풍수사 ‘상덕’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파묘 출연 계기에 대해 “신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인간과 종교는 뗄 수 없는 존재이며 대본을 보고 친근감을 느꼈다”며 “무엇보다 장재현 감독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반해 종교에 대해 편협하지 않은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원혼을 달래는 무당 ‘화림’역은 배우 김고은이 맡았다. 그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장 감독은 “크리스천 배우로 알려진 김고은에게 무당 역할을 줘야 하는 데 있어서 신중히 접근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고은은 “종교적인 부분은 영화 선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 미팅 때 영화가 잘 되면 감독님이 교회에서 간증도 할 것이라고 말해 ‘이건 괜찮겠다’ 싶었다”며 “단지 걱정한 건 ‘무속신앙에 대해 많이 무지한데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영화 촬영을 앞두고 두렵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귀신 영화를 찍으면 현장에서 귀신을 보거나 한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보인다는 영화계 속설 때문이다.

김고은은 “그때 교회 집사님이신 장 감독님이 ‘만약에 귀신 보이면 우리 하나님께 기도로 이겨내자’고 말했고 함께 한 배우 이도현도 촬영, 조명 감독님도 모두 다 기독교인이라 안심이 됐다”고 고백했다.

배우 유해진은 장의사 ‘영근’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영근을 교회 장로 직분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장 감독은 “그래도 내가 교회 다니는 집사인데 오컬트 영화를 만들면서 교회 교인들에게 면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실제로도 만난 장의사 중 한 분이 교회 장로님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제작의 모티브가 된 성경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쇼박스 제공

장재현 감독은 대입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길에서 우연히 영화 촬영 현장을 목격하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군대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한 그는 제대 후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입학했다.

2000년에 대학에 입학했을 나이지만 05학번이 된 장 감독은 “남들보다 5년이나 뒤처졌다는 생각에 항상 열등감에 시달렸다. 빨리 목표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대학 3학년 때는 해외NGO 단체를 통해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1년간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장 감독은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가 자신이 지원해 주던 아이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당시 신에 대한 원망과 탄식 부조리를 느꼈다”고 고백한 그는 이 스토리를 영화 사바하에 녹여냈다.

“이에 헤롯이 (중략)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또 사바하에서 “100년 후 태어난 여자아이가 너를 죽일 것”이라는 승려의 예언을 들은 교주가 자신과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죽이는 장면은 성경 속 헤롯왕의 이야기를 참고했다.

장 감독은 “성경에서 예수 탄생을 앞둔 헤롯왕과 동방박사 이야기가 가장 시네마틱하다고 생각하는데 왕의 탄생을 예언하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를 죽인다는 스토리, 언젠가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사바하는 성경 속 헤롯왕의 이야기를 합쳐서 구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가 오컬트 장르 영화를 만드는 것에 불편한 시선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장 감독은 “내게는 신과 인간에 대한 화두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종교적 텍스트는 상당히 흥미롭다.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하며 노력하겠다”며 “늘 내적으로도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는 감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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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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