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나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젊은 크리스천들과 질의응답을 하다 보면 틀림없이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도 되나요’. 해줘야 할 말이 많다. 꼭 결론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결혼에 대한 성경적 근거나 현실적 문제 등을 말이다. 그러나 각론과 결론을 잠시 미뤄두고 나는 제일 먼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는 반드시 선행돼야 할 질문이다. 만약 자문했을 때 신앙적 정체성이 확실해 실제 그렇게 살고 있는, 그래서 삶이 유배지 같은 현실로 가득할지라도 기꺼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그리스도인이라면 상관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즉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에 견줄 만큼 질의응답에 많이 등장하는 ‘이 직업을 가져도 되는가’라는 질문도 동일하다. 역시나 ‘무엇을 하려느냐’보다 우선되는 건 ‘그 직업을 선택하려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꼭 그렇게 물어야만 한다.
압도적 외형과 살기(殺氣)로 모두를 숨죽이게 했던 블레셋 장수 골리앗. 그런데 아직 약관도 안 된 홍안의 소년이 고작 물맷돌로 그를 때려 눕혔다. 성경의 수많은 일화 중 크리스천에게 가장 카타르시스를 강하게 안기는 장면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며 스스로 왕권에 도취돼 몰락한 사울 왕 다음으로 기름부음 받았던 소년 다윗. 골리앗을 물리침은 다윗이 행한 첫 번째 행동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역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다윗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 자였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을 세우려 이새의 아들을 만나러 갔으나 이새는 다윗을 사무엘 앞에 내놓지 않았다. 심지어 이새는 그 후 무기조차 없는 그 소년을 전쟁터로 심부름 보냈고 형들은 애써 심부름 온 그를 꾸짖는다.
출생의 비밀이 있든 없든 다윗은 분명 내놓은 자식처럼 대우받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선택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자녀로서의 따뜻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그래서 자신을 지탱할 만한 그 어떤 외적 조건도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없음’에 근거해 유일하게 ‘있는’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인생을 저주해 왔을 만한 그가 기름부음을 받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그 절대적 은혜 앞에 자신이 누구인지가 재규정된 것이다.
이어서 그는 압도적인 외적 조건을 가진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했다. 이때 골리앗에게 압도된 다른 이들은 숨죽였으나 다윗은 홀로 분연히 일어서 그 앞에 나아갔다. 자신에 대한 재규정 이후 더 이상 자신의 외적 조건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듯, 자신이 마주한 골리앗의 외적 조건에도 휘둘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외적 조건은 여전히 초라했다. 여전히 막내고 홍안의 소년이며 여전히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주어진 게 너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유일하다시피 한 도구. 고작 초라한 물맷돌로 골리앗을 때려 눕혔다. 이로써 그는 진정 참된 믿음이 보증하는 자유, 즉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만방에 선언했다.
이처럼 나 가진 것 없으나, 유일하게 가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이 구도는, 마치 다윗처럼 초라했던 이스라엘이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자 이 참혹한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었다.
한국교회의 현재는 마치 유배지에 갇힌 듯 암담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지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할까’보다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무턱대고 대항해 이겨보려 하거나 고작 그것밖에 없다며 불평만 하거나 혹은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비판만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성경의 서사를 마주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해야 할 질문이나 태도가 아니다. 언제나 우선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당신이 답해야 한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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