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범죄 단체를 방불케 한 교사들의 시험문제 장사
문제 공급 조직 만들고 탈세·리베이트까지 동원
교육 당국에도 의혹…문제 거래 법으로 막아야
감사원의 사교육 카르텔 관련 감사 결과, 일부 교사들의 일탈이 단순한 금품 거래를 넘어 범죄 집단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현직 교사 27명 등 56명에 대해 어제 수사를 요청했다. 적발된 교사 대부분은 사교육 업체와의 거래 사실을 숨긴 채 수능 출제나 EBS 교재 제작에 참여했다. 일부 교사는 수능이나 모의고사, EBS 문제집 출제 경력이 있는 다른 교사들을 모아 ‘문항 공급 조직’을 만들었다. 이런 조직을 여럿 적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큰 조직엔 무려 35명의 현직 교원이 참여했고, 20억원 가까운 금액을 받아 나눠 가졌다.
이 과정에서 차명계좌 사용, 배우자 명의 출판사를 이용한 세탁, 문제를 넘겨주지 않은 교사에게 출제비를 주고 나중에 돌려받는 리베이트와 이 교사에게 거짓 답변을 요구하는 증거 조작까지 온갖 범죄가 총동원됐다. 발간도 되지 않은 EBS 교재 내용을 빼돌리거나, 학원에 건넨 문제를 내신 시험에 그대로 출제한 사례도 나왔다.
이런 거래의 하이라이트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다. 이 문제의 지문은 국내에서 출판되지 않은 ‘『Too Much Information』(TMI·투 머치 인포메이션)’이란 책에서 발췌됐는데, 수능 이전에 한 일타 강사의 모의고사에 나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감사해 보니 EBS 교재 집필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두 교사 중 한 사람이 나중에 발간될 EBS 교재에 문제를 내고, 다른 사람은 똑같은 지문을 학원 강사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수능 출제위원으로 위촉된 다른 교수가 규정을 어기고 EBS 미발간 교재를 미리 보고 같은 지문을 수능에 내면서 사달이 났다.
일타 강사와 학원은 교사와의 검은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교재를 본 학생들은 점수가 높고, 그 학원과 강사에게는 아무리 비싸도 수강생이 몰리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감독해야 할 교육부와 평가원은 무능을 넘어 공모 의혹까지 받고 있다. 23번 문제의 사전유출 의혹에 대해 숱한 이의신청이 들어왔지만, 평가원 담당자들이 중복 출제 여부를 다루는 회의 안건에서 아예 빼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대목이 너무 많다.
교육부는 올해 초 교사와 학원 간 문제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하지만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2016년에도 문제 거래가 경찰 수사로 드러나자 교육부는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공염불이었다. 수능 출제자뿐 아니라 현직 교사와 학원 간의 문제 거래는 철저히 막아야 할 사회악이다. 가이드라인 정도로는 부족하다. 검은 돈의 공여자인 학원과 강사를 엄벌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이 정말 사교육 카르텔을 깰 의지가 있다면 범죄를 차단할 입법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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