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떠도는 조국이라는 유령[최민우의 시시각각]
“당의 결정을 수용합니다.”
지난 4일 아침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페이스북 글이었다. 직전까지 “이재명 대표의 속내 충분히 알아들었다”며 불쾌감을 표하고, 전날에도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가진 임 전 실장이었다. 민주당 탈당이 당연한 수순으로 예상됐는데, 하룻밤 새 180도 돌변한 것이다. 임 전 실장의 유턴에 스타일을 구긴 건 기자회견까지 미룬 이낙연 대표였다. 반대로 쾌재를 부른 이는 누구였을까. 이재명 대표? 전현희 서울 중-성동갑 후보? 속으로 가장 반긴 이는 전날(3일)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 대표에 취임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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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초반 조국당 지지율 약진
'비명횡사'의 수혜자라는 평가
내로남불과 반목의 진통 이어져
」
2월 초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2심에서 2년형을 선고받아 곧 영어(囹圄)의 몸이 될 것으로 예상되던 조 전 장관이 극적 반전을 꾀하고 있다. 각종 비례정당 여론조사에 조국당이 지지율 15% 안팎을 기록해서다. 이런 추세면 ‘국회의원 조국’은 떼놓은 당상이다. 약진의 원인으론 조 전 장관에 대한 동정론, ‘검찰 독재정권 조기 종식’을 내건 선명성 등이 꼽히지만, 본질적으론 ‘비명횡사’ 공천에 실망해 민주당을 이탈한 이들이 그 대안으로 조국당을 택했다는 게 정설이다. 민주당 지지층의 ‘반명 정서’를 조 전 장관이 고스란히 챙긴 것이다. 컷오프된 임 전 실장이 주저앉지 않고 밖으로 나가 깃발을 들었으면 현재의 조국당 선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초 ‘조국의 강’을 우려하며 거리를 두던 이재명 대표도 강한 팬덤을 보유한 조국당을 무작정 외면할 수 없었다. 5일 예방차 찾아온 조국 대표를 만나 연대 모양새를 연출했다. 엘리트 강남 좌파로 우월의식이 강한 조 대표도 이날만큼은 제1야당 대표에게 최대한 예를 갖췄다. “민주당이 범진보민주진영의 본진”이라며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까지 언급했다. ‘원래 민주당 주인인 친문을 대거 쳐내 당을 ‘친명당’으로 만들어도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하지만 본국에 머리를 조아린 다음 조 대표 행보는 또 달랐다. 7일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공수처 수사를 받는 박은정 전 부장검사와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 본부장을 영입했다. 8일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황운하 의원을 영입했다. 황 의원은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날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에 연루된 문미옥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비롯해 윤재관 전 국정홍보비서관, 정춘생 전 여성가족비서관도 합류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인사다. 10일 조 대표는 봉하마을도 찾았다. 자신이 친노ㆍ친문 적통임을 천명한 것이다.
다만 조국당 위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컨벤션 효과에 불과하다는 진단도 있다. 조국당 인기로 파이를 빼앗기게 될 범야권 비례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통진당 후예라는 종북ㆍ반미 인사에게 조국은 전형적인 ‘사쿠라’ 아닌가. 이재명 대표에게도 불안요소다. 지금은 민주당-조국당은 딴살림이라고 하지만, 4년 전 열린민주당 사례에서 보듯 총선 이후 조국당이 민주당으로 편입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기껏 정적 임종석을 무릎 꿇리고 친문을 실컷 솎아냈는데, ‘친문 본색’ 조국당이 들어온다면 말짱도루묵 아닌가. 가뜩이나 “총선 끝나면 이재명 가고 조국 온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는 분석까지 나오니 말이다.
무엇보다 변수는 조 대표의 판결이다. 1ㆍ2심에서 인정한 혐의를 법률심인 상고심에서 번복할 가능성은 작지만, 일각에선 조 대표가 국회 법사위에 들어가 자신의 판결을 최대한 늦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한국 사회를 두 동강 내고, 숱한 범죄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았던 ‘조국 사태’는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공산당 선언』을 빌리자면 이렇다. “하나의 유령-조국이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를 5년째 떠돌고 있다.”
최민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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