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로또? 돈먹는 하마 됐다…공사비 3.3㎡당 1000만원 비명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웃음소리가 퍼질 것 같은 재건축 시장에 한숨 소리가 깊다. 공사비 급등이라는 불청객이 가져온 걱정 때문이다. 재건축으로 로또를 기대하기 어려워졌으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은 거 아니냐는 비관적인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재건축 문턱을 없애고 사업성에 부담이 되는 걸림돌들을 치우겠다며 올해 들어 세부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다. 제도 도입 30년 만에 재건축 여부를 결정하는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한다. 이를 담은 관련 법 개정안은 안전진단이란 명칭도 ‘재건축진단’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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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제 완화에도 재건축 '한숨'
공사비 3.3㎡당 1000만원도
추가분담금 눈덩이처럼 커져
재건축 거품 걷어내야 할 때
」
재건축으로 짓는 아파트 규모를 지금보다 1.2배나 1.5배까지 늘린다. 용적률(사업부지 면적 대비 건축 연면적 비율)을 역세권 120%까지, 노후계획도시 150%까지 완화한다. 아파트를 많이 짓는 3종 주거지역의 용적률 상한이 현재 300%에서 450%까지 올라가게 된다. 정부는 재건축 저승사자로 불린 재건축부담금도 기존의 10% 수준으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이 정도면 재건축 시장은 장밋빛 일색이라야 맞다. 그러나 먹구름을 몰고 온 게 공사비다.
전용 84㎡ 국민평형 건축비만 3억6000만원
공사비가 3.3㎡(계약면적 기준)당 1000만원 시대를 맞았다. 이는 지하층 면적을 포함한 기준으로, 대개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 84㎡ 아파트를 건축하는 데 5억5000만원 정도 들어가는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7차가 시공사를 정하기 위해 공고한 공사비가 3.3㎡당 959만원이다. 이달 초 강남구 도곡동 도곡개포한신은 3.3㎡당 920만원이었다. 일반아파트보다 공사비가 많이 드는 주상복합을 짓는 사업장에선 3.3㎡당 1000만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용산구 남영동제2구역과 마포구 마포로1-10지구가 각각 3.3㎡당 1070만원과 1050만원이었다.
서초구 일대 공사비가 2020년까지만 해도 3.3㎡당 500만 원대였다. 2020년 2월 서초구 반포동 반포3주구가 3.3㎡당 542만원이었다. 이후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2022년 700만 원대로 뛰더니 2023년 800만 원대에 들어선 뒤 900만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코라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자잿값 등 건설비용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주거용건물 건설공사비(지수 기준)가 지난 1월 기준으로 2021년 이후 최근 3년 새 24.3% 올랐다. 2000년 이후 평균 3년 상승률(11.8%)의 2배가 넘는다. 주요 건축자재인 철근·시멘트 가격이 최근 3년간 50% 넘게 뛰었다.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 사업이 곳곳에서 삐걱대고 있다. 공사비가 많이 올랐지만, 원가 부담을 느끼는 건설사들이 수주에 소극적이어서 조합들이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공사비를 올려 다시 시공사를 구하기도 한다. 신반포27차는 당초 지난해 11월 3.3㎡당 909만원을 제시했다가 입찰이 유찰되자 이번에 3.3㎡당 50만원 더 올렸다.
공사비가 치솟기 전 계약한 단지들에선 공사비의 증액을 둘러싼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2017년 3.3㎡당 560만원에 계약한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2차는 착공을 앞두고 시공사에서 3.3㎡당 1300만 원대로 증액을 요구해 협의 중이다. 이미 착공한 사업장들에선 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한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공사중단 파행 끝에 3.3㎡당 650만원에 타결된 강동구 둔촌주공 공사비가 지금은 부러운 수준"이라며 "그나마 공사비가 많이 오르기 전 공사가 상당 부분 진척된 덕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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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 5억, 반포 12억…추가분담금 공포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비가 크게 늘어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분담금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추가분담금은 공사비와 조합 운영비 등 전체 사업비에서 조합원·일반 분양수입을 뺀 금액이다. 조합원이 재건축을 위해 내놓은 기존 건물(토지 포함) 외에 추가로 내야 하는 비용이다. 사업비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공사비가 추가분담금을 좌우한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는 조합원당 추가분담금이 5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공사비가 너무 비싸다”며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서초구 신반포 18차 2337동은 전용면적을 111㎡에서 97㎡로 줄이는데도 추가분담금을 12억원 더 내야 한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시공사는 공사비를 2019년 계약한 2조636억원에서 4조775억원으로 1조4412억원 올려달라고 지난달 요구했다. 공사비 증액에 따른 추가분담금만 조합원당 4억원이다.
강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 추가분담금 무서워 재건축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재건축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돈 먹는 하마’로 바뀐 셈이다.
강남의 경우 일반분양분 가격을 제한하는 분양가상한제 규제가 추가분담금 증가에 일조한다. 분양가상한제의 건축비 상승률이 공사비 상승률에 뒤처지면서 실제 공사비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반포주공1단지 공사비가 3년여 사이 55% 오르지만 같은 기간 상한제 건축비 상승률은 30%다. 지난달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 재건축 단지(메이플자이)의 일반분양분 가격 중 건축비가 3.3㎡당 672만원이었다.
초고층·고급화·큰 집 '3대 거품'
재건축 순항을 위해선 추가분담금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규모의 경제가 재건축에도 적용된다. 덩치가 클수록 단위면적당 공사비가 줄어든다. 3.3㎡당 900만원이 넘는 신반포27차와 도곡개포한신은 재건축 규모가 1000가구 미만의 중소 사업장이다. 3.3㎡당 1300만 원대에 협의 중인 신반포22차는 2개 동 160가구의 미니 단지로 재건축한다. 여러 단지를 합친 통합 재건축이 공사비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
층수를 낮추면 공사비도 낮출 수 있다. 건물이 높이 올라가면 벽 등이 더 두꺼워지고 튼튼해져야 한다.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 등이 초고층을 포기한 이유다. 지나친 단지 고급화도 공사비를 부추기는 요인이어서 고가 외산 마감재 등을 자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조합원은 재건축 뒤 배정받는 새 아파트 크기를 줄이는 ‘다이어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 분양가가 낮아지고 줄어든 조합원 집 크기만큼 일반분양분이 늘어 이중으로 추가분담금을 줄일 수 있다.
주택경기 과열과 함께 부풀어 올랐던 재건축 거품을 걷어낼 때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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