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법을 또 어기겠다는 자신감
더불어민주당의 텃밭, 광주가 심상치 않다.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창당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사들을 모으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영향이 커 보인다. 민주당에서 조국혁신당 지지로 방향을 튼 유권자들이 많다. 이낙연 공동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가 활동을 본격화해 민주당 표 분산은 더 가속화할 것 같다.
이런 현상의 기저엔 “시스템에 의한 혁신 공천”이라며 진행한 총선 후보 골라내기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이재명 대표의 ‘사천’으로 판단한 광주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이탈하고 있다. 광주 8개 지역구 후보 중 경선이 진행 중인 서구갑 외 7곳에서 ‘비명횡사 친명횡재’ 현상이 나타났다. 승리한 상당수는 출마지역에서 활동을 해 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구갑에서 비명계인 송갑석 의원이 진다면 친명계가 석권한다. 특히 이 대표의 각종 재판을 도와 온 박균택(광산갑), 양부남(서구을) 후보는 ‘고검장 출신 20% 가산점’을 받았다. 당헌·당규상 장·차관급 이상의 정무직 공직자, 1급 상당 고위공무원단, 17개 시·도 광역단체 부단체장 등에게는 정치신인 가산점을 10%만 부여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고 경쟁 후보자들이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밀어내는 사천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활동까지 끌어안고 있다. 민형배(광산을) 의원도 그 혜택을 받은 후보 중 한 명이다. 민 의원은 2022년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탈당 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에 무소속으로 참여해 법안의 법사위 전체회의 상정을 가능케 했다. 민 의원의 ‘꼼수 탈당’ 혹은 ‘위장 탈당’ 이후 법안은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처리됐다. 당 내부에서조차 “묘수가 아니라 꼼수다. 검수완박을 찬성하시는 국민조차 이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박용진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사 범위를 일부 확대했지만 검수완박법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형사법 전문가인 모성준 대전고법 판사는 최근 출간한 『빨대 사회』에서 “국회가 검찰수사권 박탈로 국가의 전체 수사 권한을 토막 내 사기 범죄 조직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형사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뒤로는 사기 범죄 조직에 대한 수사, 처벌을 어렵게 하는 법률을 지속해서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탈당한 민 의원은 어떻게 다시 민주당 광주지역 후보까지 된 것일까. 지난해 4월 그는 당의 요구에 의해 특별 복당했다. 당헌·당규상 탈당 경력자는 당내 경선에서 25% 감점을 적용받지만 당 요구로 복당하면 문제없다는 점을 활용한 조치였다. 복당 전에도 그는 지역위원회 행사 등에 참석하며 사실상 당 활동을 했다. 비명계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부끄럽다”(이원욱 의원),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김종민 의원)는 말이 나왔지만, 결정 번복이나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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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사천에 광주 민심 이탈
‘꼼수탈당’ 민형배도 경선 승리
위헌·위법적 행위에 반성 없어
」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민 의원도 “헌재 결과 어디에도 제 행위에 대해 위장탈당이라거나, 탈당 행위에 대한 판단을 했거나, 이런 게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3월 헌재는 입법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다면서도 국민의힘이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민 의원이 탈당할 이유가 없음에도 검수완박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민주당을 탈당했고, 당시 법사위원장이 회의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미리 가결의 조건을 만들어 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민 의원의 탈당은 거대 정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국회 다수결 원칙을 규정한 헌법 49조도 어겼다고 봤다. 다만 이미선 재판관이 절차상 문제는 있지만 권한 침해 정도가 국회법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검수완박법 자체를 무효화하지 않는다는 결정에 동조하면서 법이 살아남았다.
절차적, 실효적 정당성을 모두 상실한 이 법을 당장 되돌릴 수는 없다. 두려운 건 헌재가 위헌·위법하다는 판단을 했음에도 그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그 행위를 다시 하겠다는 자신감이다. 복당 당시 “(탈당은)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다시 안건조정위 같은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피할 수 없다”던 민 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생각은 여전한 것일까. 이 뿐인가. 헌법과 법률을 어기고 있거나, 위반할 각오가 선거판 곳곳에서 선언되고 있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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