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포 강 사람들
도서관 모퉁이에서 죠반니 괴레스키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우연히 마주치고 감상에 푹 젖었다. 다혈질 신부 돈 까밀로와 일자무식 공산주의자 읍장 빼뽀네. 이 투 톱의 이야기가 내가 접한 최초의 이탈리아 문학이 아니었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성당에서 이 책을 사 왔는데, 성당에서 이렇게 재밌는 책을 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캐릭터인 예수님은 ‘내가 추구하는 예수상’에 걸맞는 이미지였다. 스피노자에게 스피노자의 예수가 있었듯이, 돈 까밀로에게는 돈 까밀로의 예수가 있는데 나만의 예수를 찾지 못했던 꼬마 예비수녀(당시 장래희망 3순위)였던 나는 이 책을 참조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돈 까밀로가 어둠 속에서 두들겨 맞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스란히 매타작을 견딘 것은 일흔개의 계란을 싣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빼뽀네로, 무신론인 공산주의를 비판한 강론에 앙심을 품어서다. 그는 고해성사를 통해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털어놓는데, 돈 까밀로는 보속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빼뽀네를 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런데 예수님이 ‘손은 축복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막는다. 시무룩하게 돌아선 돈 까밀로는 ‘그렇지만 발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응수하고, ‘그렇다면 딱 한 대’를 허락받는다. 잠시 후 강렬하게 걷어차인 빼뽀네의 말이 걸작이다. “십 분 전부터 이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모음인 이 책은 점묘법으로 그린 대형화 같은 느낌이 든다. 무려 열 권의 시리즈로 불어나는 동안 두 사람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동네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적’이라는 수식은 ‘너무나 인간적’ 일 때만 쓴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혐오가 판치는 21세기에 포 강 유역 사람들이 다투고 화해하며 복작거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건조한 날씨에 가습기를 트는 것처럼 마음의 습도를 울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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