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생필품 값 반년마다 조정…인플레 더 부추겼다

정종훈 2024. 3. 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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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시대 가격 전략 수정


‘가격 인상 폭은 그대로, 횟수는 더 많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용 압력이 커진 국내 기업에서 나타난 변화다. 2년 가까운 고물가 기조 속에 기업들이 생필품 가격을 이전보다 자주 올린 게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11일 한국은행은 한국소비자원 생필품 가격 데이터 등을 활용해 기업의 가격 조정 행태를 살펴본 보고서를 공개했다. 가공식품·생활용품을 비롯한 209개 제품의 가격 인상·인하 빈도(할인 등 일시 조정 제외)는 2018~2021년 월평균 11%에서 2022~2023년 15.6%로 상승했다. 이를 기간으로 환산하면 상품 가격을 유지하는 기간이 평균 9.1개월에서 6.4개월로 줄었다.

기업들이 물가가 안정적일 때 연 1.3회 정도 가격을 바꿨다면, 팬데믹 이후 고물가 시기엔 한 해에 두 번씩 바꿨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A 시리얼 제품은 2019~2021년엔 가격 변동이 거의 없었는데, 2022년 들어 두 차례나 인상됐다. B 라면 제품은 2019년 이후 잠잠하던 가격이 2022~2023년 크게 올랐다가 소폭 내리는 등 들썩이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엔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최고 6%대까지 치솟았고, 지난해도 그 여파가 남아 물가상승률이 2~5% 선을 오간 바 있다.

특히 가격을 올리는 주기는 원래 16개월 정도였는데, 2022~2023년엔 10개월로 크게 단축됐다. 반면 가격 인하(20개월→18개월) 빈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가격 조정폭도 팬데믹 전후로 비슷했다. 2019년부터 국내 생필품 가격 인상률은 1회당 평균 20~25%, 인하율은 15~20%라는 패턴이 유지됐다. 최근 2년 새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주도한 건 사실상 ‘잦은’ 가격 인상이라는 의미다.

이동재 한은 물가동향팀 과장은 “고물가 시기 기업들이 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자 저항과 민감도, 경쟁 제품으로의 대체 효과 등을 고려해 가격 인상 폭보다는 빈도를 조정했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률과 가격 인상 빈도 간 상관성이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기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일시적 가격 변동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상품값이 비싸진 만큼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할인 등 ‘짧은’ 가격 조정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상품이라도 판매처에 따른 가격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생산·유통 업체들이 가격 인상 빈도를 높임과 동시에 재고 상황·수요 변화에 맞춰 할인 행사 같은 가격 조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걸 보여준다.

품목별로는 조미료·식용유지 등 수입 원재료 비중이 높아 비용 압력을 많이 받은 생필품의 인상 빈도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주류 등의 가격 인상 횟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이런 변화는 전체 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제유가 상승 등 외부 충격의 크기가 크고, 서로 다른 변수가 동시에 터질수록 상품 가격 인상이 잦아졌다. 이는 물가 상승률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특히 물가 상승률이 4~5%대로 높을 때는 이전과 같은 비용 충격(유가·곡물가 상승 등)에도 인상 빈도가 늘면서 그 여파가 빠르게 전체 물가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였다.

올해 들어 물가 상승률은 3% 안팎을 나타내고 있다. 여전히 목표 수준(2%)과 간극이 있고, ‘잦은 인상’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상품 가격 전략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유가 상승 등 충격이 발생하면 언제든 인플레이션 수치가 출렁일 수 있는 셈이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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