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 연기 위해서 종일 훈련…그래도 피겨는 행복”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피겨 여왕’ 김연아(34)의 등장 전후로 나뉜다.
김연아는 2006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고, 4년 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김연아 이후 18년 만에 주니어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른 선수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경신고 1학년 서민규(16)다. 남자 선수 최초로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기대주 서민규를 11일 서울 태릉빙상장에서 만났다.
서민규는 지난 2일 대만에서 열린 2024 주니어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에서 나카타 리오(일본)를 1.44점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키스앤크라이존에서 점수를 확인한 뒤 펄쩍 뛰어오르며 기뻐했던 서민규는 “한국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셔서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성장세가 가파르다. 2022년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지난해 3차 대회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3~24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시니어 형들과 경쟁하면서도 1차 선발전 2위, 2차 선발전 3위에 올랐다.
서민규는 피겨스케이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구에서 20년 넘게 피겨 지도자 생활을 해온 어머니 김은주 코치 덕분에 일찌감치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만 4세 때 스케이팅을 시작해 맨땅보다 빙판이 친숙했다. 서민규는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선수 해볼래?’라고 물어보셔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쇼트프로그램(2분40초)과 프리스케이팅(4분10초)를 합쳐도 7분 정도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지상 훈련, 웨이트 트레이닝, 빙상 훈련까지 해야 한다. 서민규는 “새벽에 일어나서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을 한 뒤 학교에 간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연습한다”며 “힘들기도 하지만, 피겨는 행복이 더 많은 스포츠다. 얼음판 위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을 때 성취감이 크다”고 했다.
2008년 10월생인 서민규는 ISU의 시니어 연령 상향 조정(15세→17세) 탓에 몇 달 차이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엔 나설 수 없다. 하지만 2030년 겨울 올림픽(개최지 미정)에선 절정의 기량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차준환 이후 남자 피겨스케이팅을 이끌 선두주자로 꼽힌다.
서민규는 노비스(주니어 아래 단계) 시절부터 뛰어난 스케이팅 기술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스텝과 스핀을 비롯한 비점프 기술과 풍부한 표현력이 강점이다. ‘김연아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자주 받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영화나 음악을 많이 접하게 해주셨다. 김민석(멜로망스)의 취중고백 같은 발라드 음악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성악을 배운 적도 있다. 그래서 노래도 자신있다”며 웃었다. 서민규는 또 “내 영상을 제일 많이 보지만, 다른 선수들의 영상도 자주 본다. 가기야마 유마(일본)와 차준환 형의 영상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이번 시즌 프리 프로그램 곡(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직접 골랐다. 서민규는 "영화를 광고에서 봤었는데 곱추인 콰지모도의 비극적인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 나오는 음악을 많이 들었다"며 "노래가 몰아치고 터지는 부분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점프다. 22~23시즌까지는 공중에서 세 바퀴 반을 도는 트리플 악셀 점프를 프로그램에 넣지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는 트리플 악셀을 추가했고, 4회전 점프도 시도할 계획이다. 서민규는 “내게 맞는 4회전 점프를 찾고 있다. 쿼드러플 살코를 연습 중”이라고 설명했다.
피겨 선수들이 가장 힘든 시기는 성장기다. 갑자기 키가 커지면서 밸런스를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민규는 “나는 키(1m59㎝)가 작아서 고민이다. 160㎝ 후반까지는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민규는 부모님과 함께 대구에서 살고 있다. 국가대표 훈련 때는 서울로 올라온다. 그는 “형들과 훈련하면 배우는 게 많아서 꼭 오려고 한다. 아버지가 차로 운전을 해주신다. 3~4시간 걸리는데 차 안에선 거의 자는 편”이라고 했다. 아버지 서재현씨는 대구에 피겨 지상 훈련 센터를 운영하면서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여자 싱글 신지아(16·세화여고)의 은메달에 이어 서민규가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은 남녀 선수가 동시에 시상대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신지아와 동갑내기인 서민규는 “지아는 집중력이 뛰어난 좋은 친구다. 나보다 더 큰 무대에 선 적이 많은데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 서민규
「 ◦ 생년월일 2008년 10월 14일
◦ 신장 1m59㎝
◦ 출신교 경북사대부초-경신중-경신고 (1학년 재학)
◦ 주요 경력 2024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23 주니어 그랑프리시리즈 3차대회 금메달
◦ 구사 기술 트리플 악셀-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트리플 악셀 단독 점프
◦ 특이사항 ‘강동원 주연’ 영화 보며 연기 연습
」
김효경·고봉준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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