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의사 수입 [김선걸 칼럼]
의료 공백이 심각해졌다. 응급실에선 남은 의료진과 환자들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TV에서 의사협회 비대위 인사가 하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주수호 위원장(전 의협회장)은 “당장 의사가 부족하다면 정부가 외국 의사를 수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맞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반대하면서 수입을 하자는 논리는 뭘까. 관련된 논문을 찾아봤다.
브레노 브라가 등 연구자 3인은 ‘美 이민 정책과 외국 의사 공급: 콘래드 30 면제 프로그램(NBER Working Paper 32005)’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의 ‘의사 수입’ 이슈를 다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외국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의사가 되려면 장애물이 많다. USMLE(의사 면허 시험)를 3차까지 통과하고 J-1 비자를 받은 후 미국서 레지던트를 다시 수련해야 한다. 그리고 본국으로 귀환해 2년이 지나야 이민 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콘래드 30’은 외국 의대 졸업자들(IMGs)의 본국 귀환을 면제하고, 레지던트 직후 미국 진료를 허용하는 등 정착을 촉진한다. 연구자들은 이로 인해 2002년부터 2020년 사이에 추가로 4000명의 IMGs가 미국에 유입됐다고 추정했다.
조사 결과, IMGs는 주로 1차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의사 부족 지역(HPSAs)에서 일했다. 그리고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IMGs의 유입이 미국 의사 고용에 영향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마디로 외국 의사는 미국 의사와 경쟁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보완재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현재 의사협회는 의대 증원을 해도 소아과 등 기피 전공과 농어촌 불모지에는 의사가 안 갈 것이라 주장한다. 의사를 늘려 이런 곳에 보내겠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논리다. 그런데 소득이 낮은 나라 출신의 외국 의사가 들어온다면 필수·지역 의료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필수·지역 의료에 종사하는 책임감 있는 의사들은 예전부터 외국 의사 고용을 제안해왔다.
밀튼 프리드먼은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1962년)’에서 의사 면허를 사례로 들어 제한된 라이선스가 수수료를 높이고 서비스를 제한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 의료 시장은 그 이론대로 한 단계 더 극단적으로 진화했다.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기피 시장’과 누구나 가려는 ‘선호 시장’으로 갈라져버렸다.
의협 주장대로라면 기피 시장은 한국 의사를 늘리더라도 공급 부족 해결이 안 된다. 결국 외국 의사 유치 등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이 동시 통역까지 지원하는 첨단 기술의 시대다. 외국 의사 채용은 검토해볼 만하다고 본다. 물론 언어, 문화, 제도상의 이질감이 클 것이다.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실제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은 외국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전체 23% 수준이다.
‘외국 의사 수입’을 논하고자 하는 건 현재 의정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 의사들이 들어와 기피 전공이나 의료 부족 지역을 보완한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매년 2000명’의 증원도 조정이 필요한 논거가 된다. 예를 들어 외국 의사 200명이 들어오는 시기에는 증원을 줄이거나, 단계적으로 증원 수치를 줄이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제대로 된 논의를 하려면 의사와 정부가 일단 한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외국 의사 수입이든 증원 숫자 조정이든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뭘 못하겠나. 정부는 손을 내밀고 전공의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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