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을 함께 한 '드래곤볼 아버지'의 죽음... 먹먹하다 [이게 이슈]
[양형석 기자]
▲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 만화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를 그린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지난 1일 급성 경막하 출혈로 별세했다고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했다. 향년 68세. 사진은 도리야마 아키라씨 인스타그램 이미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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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뇌출혈로 쓰러졌던 나는 그해 10월까지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론 알지 못하지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세 사람의 죽음을 접했다. 비록 대통령 선출 당시 한 살 차이로 투표권이 없었지만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내 손으로 뽑은 첫 번째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가요만 듣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외국가수였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었다.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좋아했던 세 사람이 차례로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연속으로 접하면서 나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의 나이가 더해진 나는 감정이 무뎌진 탓인지 어지간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어도 크게 슬프거나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물론 이 기간엔 직계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난 적도 없었다).
▲ 만화책을 좋아하는 30~40대 남학생들 중에서 학창시절 '드래곤볼 모으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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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센세이션 일으켰던 <드래곤볼>
초등학교 4학년이 끝나가던 1988년 12월, 만화 주간지 <아이큐 점프>가 창간됐다. <보물섬>과 <소년중앙>으로 대표되는 월간 만화잡지에 익숙하던 어린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새 이야기가 나오는 <아이큐 점프>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물론 초등학생에게 1000원이라는 가격은 꽤 부담스러운 돈이었기에 당시 나는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들 몇 명과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아이큐 점프를 구입한 후 공평하게 돌려 보기로 MOU(?)를 체결했다.
<아이큐 점프>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1989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드래곤볼>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드래곤볼>은 연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불법 수입된 해적판으로 문방구 일대에서 판매됐지만 정식으로 연재되는 <드래곤볼>의 재미와 퀄리티는 해적판의 그것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다.
연재 초기만 하더라도 <드래곤볼>은 '7개의 구슬을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손오공과 부르마가 드래곤볼을 찾아 떠나는 모험물로 진행됐다. 하지만 피라후 일당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용신에게 소원을 비는 데 성공한 인물은 손오공도 부르마도 야무치도 피라후도 아닌 매우 하찮은 소원을 빈 '변태 돼지' 오룡이었다. 그 후 손오공은 할아버지의 스승인 무천도사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다.
<드래곤볼>이 인기를 끌면서 독자들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했고, 그가 <드래곤볼> 연재를 시작하기 전 <닥터 슬럼프>라는 또 다른 명작을 연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닥터 슬럼프>는 천재 발명가에 의해 탄생한 엄청난 힘을 가진 소녀 인조인간 아라레의 일상과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닥터 슬럼프>는 국내에 다소 늦게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드래곤볼>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드래곤볼>에도 아라레를 비롯한 <닥터 슬럼프> 캐릭터들이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레드리본군의 블루 장군이 손오공 일행으로부터 드래곤볼을 빼앗아 달아나던 중 펭귄마을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블루장군은 손오공을 협박하기 위해 아라레를 인질로 잡았다가 역으로 아라레에게 크게 혼이 난다. 당시 시점에서 보면 <닥터 슬럼프>의 주인공 아라레의 전투력이 <드래곤볼> 천하제일 무술대회 준우승자 손오공보다 훨씬 강했다는 뜻이다.
▲ <드래곤볼>은 연재종료 후에도 애니메이션으로 꾸준히 제작돼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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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의 모험과 천하제일 무술대회가 중심을 이루던 <드래곤볼>은 손오공이 2전3기 끝에 마주니어(피콜로)를 꺾고 천하제일 무술대회 우승을 차지한 후 '초인 배틀물'로 장르가 바뀐다. '스카우터'라는 신문물이 등장하면서 캐릭터들의 전투력이 수치로 표시됐고 손오공과 피콜로가 다른 별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설정도 등장했다. 갑작스럽게 많은 설정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거란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크게 사이어인 편과 프리저편, 인조인간 편, 마인 부우 편으로 나눠진 <드래곤볼>의 중·후반부는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떠난 나메크별에서 만난 프리저는 기껏해야 2~3만을 오가는 전투력에서 '최강'을 논하던 <드래곤볼>의 세계관에서 자신의 전투력이 '53만'임을 밝히며 독자들을 경악시켰다. 프리저의 놀라운 전투력에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인조인간 편에서는 한 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선역 신캐릭터가 등장했다. 바로 미래에서 온 전사 트랭크스였다. 등장하자마자 프리저 부자를 가볍게 해치우며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트랭크스는 곧 베지터와 부르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사이어인'임이 밝혀졌다. 비록 '완전체 셀'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아버지와의 수련으로 더욱 강해진 트랭크스는 미래로 돌아가 인조인간 17, 18호를 가볍게 제압하고 평화를 되찾았다.
인조인간 편까지 독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드래곤볼>은 마인부우 편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했다. 손오공의 죽음 이후를 보여준 것은 반가웠지만 이야기를 지나치게 끌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초사이언3와 퓨전, 미스틱 오반 등 중구난방으로 늘어난 설정은 독자들의 집중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토리야마 작가는 손오공이 원기옥을 통해 마인 부우를 물리치는 최후의 전투를 끝으로 11년에 걸친 긴 연재를 마감했다.
<드래곤볼>은 1995년 연재 종료 후에도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게임, 피규어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해 인기를 이어갔다(물론 한국과 대만,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실사영화는 모두 '졸작'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야무치가 재배맨의 자폭공격에 당해 웅크린 채 사망한 자세의 피규어와 차오즈가 내퍼의 등에 매달려 자폭하기 직전 눈물을 흘리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백팩은 <드래곤볼>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망 직전까지 활발한 활동했던 토리야마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는 <드래곤볼> 완결 후에도 끊임없이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게임들의 감수와 원안, 캐릭터 디자인 작업 등에 참여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토리야마 작가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 소년점프에 <네코마인>이라는 개그만화를 연재했는데 손오공이 주인공 중 한 명인 Z의 스승으로 등장해 독자들의 반가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비정기 연재물이었던 <네코마인>은 <드래곤볼> 정도의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작업을 소화하며 열정을 불태운 토리야마 작가는 지난 1일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향년 6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8일 <드래곤볼>의 공식 계정을 통해 이 사실이 발표됐다. 토리야마 작가는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최신작의 감수를 맡는 등 사망 직전까지도 <드래곤볼>의 원작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작가는 공교롭게도 <드래곤볼> 연재가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청룡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바다 건너 일본에 사는 만화가의 죽음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드래곤볼>과 함께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많은 사람들은 토리야마 작가가 천국에서 훌륭한 만화가들을 만나 아무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만화를 실컷 그리며 영면하기를 기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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