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회견·시진핑 연설 사라진 양회…외신 “中보던 창 닫혔다”

신경진, 김한솔 2024. 3. 1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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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전인대 폐막식에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주석단 위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총리 기자회견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연설도 없이 폐막했다. 전인대 폐막식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한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인대와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선 31년 만에 총리 기자회견이 폐지되고, 당과 정부의 상하관계를 확립한 국무원(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를 ‘총리 지우기’로 해석한 외신들은 “양회가 시진핑을 위한 쇼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폐막식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격리가 이뤄졌던 지난해보다 썰렁했다. 기자의 숫자는 늘었지만 총리 기자회견이 열리던 금색대청이 있는 3층은 접근이 차단됐다. 2층 기자석과 외교사절 방청석도 개막식보다 취재 기자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자오러지 전인대 위원장은 폐막식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기존 정부조직법에선 ‘총리 책임제’를 명시하는 등 당·정 분리 원칙을 담고 있었지만 42년 만에 이뤄진 개정안에서는 ‘당’이 조문 곳곳에 등장했다. 자오 위원장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에 굳게 뭉쳐 중국식 현대화로 강국건설과 민족부흥의 위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자”고 말했다. 전인대에선 경제 성장률 5%를 규정한 정부업무보고와 예산안 등도 통과됐다.

관심을 모았던 시 주석의 연설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 주석은 지난해 전인대에선 폐막 연설을 통해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국방력 강화 의지를 천명했다. 총리 내·외신 기자회견도 사라져 리창(李强) 총리의 입장 표명도 없었다.

전날 폐막한 국정 자문기구격인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에선 정부업무보고에서 빠졌던 ‘평화통일’을 명문화한 정치보고를 2085명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왕후닝 정협주석은 폐막 연설에서 “정협은 중국식 현대화 추진에서 정치적 지위를 높이고, 사상적 이해를 심화시켜야 한다”며 시진핑 3기의 집권 캐치프레이즈인 ‘중국식 현대화’를 재차 강조했다.

외신들은 양회에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일 양회와 관련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란 중국 네티즌의 댓글을 소개하며 “(댓글엔) 중국이 독재하고 은둔하는 이웃국가(북한)를 닮아간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1988년 이후 24차례 중국 총리 기자회견을 취재했던 찰스 허츨러 전 NYT 특파원은 “중국이 어떻게 작동하고, 중국이 자국민과 세계에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볼 수 있던 창구가 닫혔다”고 비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 중국 공산당에는 당의 총서기와 정부의 총리 두 명의 수장(首長)이 있었으나, 이제 이인자는 사라지고 시진핑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양회의 모든 초점이 시 주석 1인에게 향하면서 5% 성장률 달성을 위한 정책, 부동산과 청년 실업 등 산적한 난제도 뒷전으로 밀렸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식 의회가 시진핑의 권력을 과시하는 ‘시진핑의 쇼’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중국인이 국가라는 배가 방향타 없이 표류하고 있다고 걱정하지만, 이는 위대한 조타수 시진핑을 의심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이는 2024년 중국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전인대 개막식과 6일 시진핑 주석이 참석한 해방군·무경부대 대표단 회의에 불참하면서 신변이상설이 돌던 먀오화(동그라미) 중국 인민해방군 중앙군사위 위원이자 정치공작부 주임이 11일 폐막식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반면 전인대 대표 자격을 유지한 리상푸 전 국방부장은 폐막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경진 특파원


“트럼프 당선, 세계에 도전, 中에는 기회”


올해 중국 외교의 모든 관심은 11월 미국 대선에 쏠려 있다. 내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깔려 있다. 황충추(黃瓊萩) 대만 정치대 교수는 “만일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전 세계에는 도전, 중국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대만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가 지난 6일 주최한 ‘2024 중국 전국 양회 해독’ 세미나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대중국 포위 정책의 지속 혹은 성공 여부에 커다란 물음표가 제기될 것”이라며 “친미 성향의 유럽, 캐나다, 아·태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입장을 조정한다면, 중국은 이른바 ‘중간세력’을 유인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중국의 대(對)한국 외교 기조도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대만 정책에 관해선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왕신셴(王信賢) 정치대 교수는 “중국이 비록 말을 줄였지만, 행동이 많아질 것”이라며 “11월 미국 대선 이전을 ‘전략적 기회의 시기’로 보고 대만에 살라미 전술로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커우젠원(寇健文)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 주임교수는 “중국의 대만 책략은 ‘전쟁을 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Anything but war)’으로 평화적 방식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구상이 대만 신정부에 더 큰 압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진핑 집무실에 차량 돌진



한편, 올 양회 기간 최고 지도부 집단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 정문에 차량 돌진 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10일 X(옛 트위터)에는 중난하이 남쪽 신화문(新華門)에 돌진한 차량의 운전자가 여러 명의 경비 요원에게 들려 연행되는 영상이 유포됐다. 지난 2022년 백지시위를 생중계했던 X의 아이디 ‘리선생(@whyyoutouzhele)’은 이날 오전 신화문 사건 영상을 올리며 “영상은 길을 지나던 차량이 촬영했다”면서 “현재 촬영한 구체적 시간과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10일 X(옛 트위터)을 통해 중국 최고 지도자 집단 거주지 겸 집무실인 중난하이의 정문 신화문 앞으로 질주한 차량의 운전자가 경비요원들에게 들려 건물 옆으로 옮겨지고 있다. X캡처


앞서 6일 경제 관련 장관급 기자회견장에서는 생방송 화면이 갑자기 바뀌는 돌발사건도 일어났다. 당시 메이디야 호텔 회견장의 첫 번째 열에 앉아있던 회색 옷차림의 여성이 갑자기 일어서 단상으로 나아가다 좌석 사이에 앉아있던 사복 경호 요원에게 저지당했다.

중난하이 주위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9년 4월 25일 파룬궁((法輪功) 신도 1만여 명이 중난하이 인근 신방국(信訪局, 청원사무소)에 운집해 마치 인간 띠로 포위하려는 듯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10월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번호판을 단 차량이 천안문 앞으로 돌진해 운전자와 관광객 등 5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치는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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