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다주·엠마스톤 동양계 패싱?… 아카데미, 인종 차별 논란

박은주 2024. 3. 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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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드 다우니 주니어가 10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키 호이 콴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다른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유튜브 ABC News 캡처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엠마 스톤이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동양계 배우를 패싱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최근 다양성 기준을 강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수상자들의 이 같은 태도 논란이 후보 지명 과정에서의 잡음 등과 겹치면서 여전히 ‘차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와 엠마 스톤은 10일(현지 시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오펜하이머’와 ‘가여운 것들’로 각각 남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먼저 이름이 불린 것은 로다주. 오펜하이머에서 ‘아이언맨’의 이미지를 벗고 주인공의 정적, ‘루이스 스트로스’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였기에 수상자 이름이 호명되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자신의 45년 연기 경력에서 첫 오스카 수상이었던 만큼 로다주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논란이 된 것은 로다주가 트로피를 받으며 보인 태도였다. 지난해 남우조연상 수상자이자 베트남계 배우 키 호이 콴이 트로피를 건넨 순간, 로다주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손만 뻗어 상을 받았다. 대신 다른 백인 배우와 악수하고, ‘주먹 인사’까지 나눈 뒤 객석을 향해 트로피를 들어 보였다. 그동안 키 호이 콴은 로다주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거두고, 머뭇거리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미국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베트남계 미국 배우 키 호이 콴으로부터 트로피를 전달 받고 있다. 유튜브 ABC News 캡처

엠마 스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인 말레이시아계 배우 미셸 여(양자경)가 트로피를 건네자 엠마 스톤은 손을 미셸 여 쪽으로 뻗으면서도 시선은 다른 배우에게 고정했다. 수상 소감을 말하기 직전에야 미셸 여와 가볍게 악수를 나눴지만, 포옹을 하고 볼을 가져다 대는 등 제니퍼 로렌스에게 보인 태도와는 크게 대비됐다. 미셸 여는 그런 엠마 스톤을 키 호이 콴이 그랬던 것처럼 민망한 표정만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영화 '가여운 것들'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엠마 스톤이 트로피를 건네 받고 있다. 유튜브 ABC News 캡처

키 호이 콴과 미셸 여는 지난해 열렸던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로 오스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중국계 이민자 여성 ‘에블린’이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 자신이 멀티버스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주인공임을 깨닫고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하려 나서는 SF 액션 코미디 영화다. 미셸 여는 이 영화로 ‘오스카상 최초의 동양계 여우주연상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Once, 에브리씽)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지난해 2월 제29회 미국배우조합상(SAG) 4개 부문 상을 받은 후 프레스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당시 두 사람의 수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년 뒤 같은 무대에서 두 사람 다 로다주와 엠마 스톤의 행동으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국내외 네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각종 SNS에는 해당 장면을 캡처한 장면을 게시한 글과 함께 “오늘 밤 나는 로다주와 엠마 모두에게 실망했다” “강력한 인종차별이다, 부끄러워 하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로다주가 시상식 이후 키 호이 콴과 포옹하는 사진이 일부 공개되기도 했으나, 오히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 세계 영화인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오스카에서 인종차별 및 성차별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는 ‘페미니즘’ 메시지를 녹여냈다는 영화 ‘바비’와 관련해 차별 논란이 지난 1월 불거진 바 있다. 바비가 이번 오스카상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은 것이 성차별적이라는 것이다.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미국 영화 매체 ‘더 할리우드 리포트’의 레베카 선은 “오스카는 전통적으로 진지함 쪽에 무게를 둔다”며 성차별 논란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가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은 점을 언급했다. 그는 그레타 리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도 연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며 “리의 미묘한 이중언어(한국어·영어)가 일부 (아카데미) 투표자들에게는 너무 조용하게 느껴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레타 리는 이 영화에서 한국적 정서인 ‘인연’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한국계 셀린 송 감독도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과 달리 감독상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이 지난 1월 7일 LA 베버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버 시상식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화이트 오스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나름대로 변화의 전기를 마련해왔다. 2016년 SNS에 널리 퍼진 ‘OscarsSoWhite’(오스카는 너무 하얘) 해시태그 운동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 2015년과 2016년,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모두 백인으로 지명되자 그간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흑인 영화감독인 스파이크 리 등이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 흑인 하층민과 젠더 문제를 다룬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수상하고, 2020년에는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개 부문에 수상했다. 이듬해에는 윤여정이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중국계인 클로에 자오 감독이 ‘노매드랜드’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엔 동양적 정서가 강하고, 동양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작품상 등 7관왕에 올랐다.

올해부터 최고상인 작품상 후보 조건에도 여성, 소수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내용의 다양성 기준이 추가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 따르면 다양성 기준은 △출연진 △제작진 △영화산업 진입 기회 △마케팅 및 홍보 4개 영역 9개 세부 기준으로 나뉜다. 작품상 후보에 오르려면 2개 영역에서 각각 1개의 세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같은 노력이 무색하게 ‘바비 논란’에 이어 주요 수상 배우들의 태도 논란이 더해지면서 인종 차별 논란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부 네티즌은 “올해부터 전년도 수상자만 시상하는 게 아니라 역대 수상자 여러 명이 같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의문스럽다” “지난해 동양계 배우들이 대거 수상했기 때문이 아니냐” “백인 배우들만의 잔치인 게 또 한 번 증명됐다” 등의 댓글을 달며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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