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스템의 배신…사교육-교사 정교한 유착에 교육당국 속수무책
11일 감사원이 발표한 교원과 사교육 업체의 문항 거래 실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시스템의 허점을 낱낱이 드러냈다. 점차 정교해지는 일부 교사와 사교육의 유착에 대응하려면 출제위원 선정부터 관리까지 수능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차명으로 돈-문제 거래…검증 방법 없어
교사들이 수능 출제·검토 경력을 내세워 학원에 문제를 팔 수 있었던 건 교육 당국의 관리·감독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평가원은 최근 3년간 수험서 집필 경험이 있는 경우 수능 출제 참여를 제한했다. 하지만, 사교육 카르텔 논란이 있던 지난해 전까지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치거나 처벌한 전례는 없었다.
교사들은 이 점을 노렸다. 한 고교 교사는 2020년부터 4년간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제공해놓고도 집필 경험이 없다고 속여서 수능 출제위원으로 위촉됐다.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사를 통해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제공한 교사도 있었다. 이 교사로부터 35명의 교원을 소개받은 출판사는 2019년부터 4년간 18억 9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교육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10월 “출제 위촉 전 국세청 과세 정보를 받아 사교육 업체와의 거래내역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등교육법 등의 개정이 필요한 데다, 배우자 등 차명으로 돈이 오갈 경우 검증할 방법도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현재까지 배우자까지 금융거래 내역 조회를 확대하는 방안은 검토한 적 없다”고 말했다.
좁은 출제진 풀, ‘들키지 않을’ 자신감으로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출제를 소수의 교사나 교수에게 의존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이번 감사에서 수사의뢰·징계 대상이 된 교원은 대부분 수능·모의고사·EBS 교재 등 주요 문제를 중복 출제·검토한 경력이 있었다. 한 전직 평가원장은 “학교 현장에서는 한 달 넘게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교사의 출제 파견을 꺼린다”며 “거기에 문제 퀄리티까지 유지하려다 보니 1000명 안팎의 출제진 중 몇 명은 수능, 모의평가 출제, 검토 경력이 중복된다”고 말했다.
소수의 집필진은 사교육과 거래를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사교육업체, 강사와 다른 교사들 간에 다리를 놓고 중간 관리 역할을 하는 교사도 생겼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오랫동안 특정 대학 출신 출제진들이 여러 시험 출제, 검토위원으로 중복적으로 위임되고 비밀이 지켜지며 사교육과의 유착 관행이 정착된 것”이라며 “이 문제를 방치한 교육당국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EBS는 “향후 신규 집필자 확대, 특정 집필진의 연속 집필 횟수 제한 등으로 구성 원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인력 풀 확대 등 관련 대책을 강화해 올 6월 모의평가에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정성 의혹 덮기에 급급했던 평가원 “수험생에 사과해야”
평가원이 수능 출제 전 시중 문제집을 모니터링을 통해 겹치기 출제를 거를 수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개인 수강생만 살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집은 인터넷에서도 구매가 가능했다.
한 대형학원 관계자는 “평가원은 2022학년도 수능에서도 생명과학Ⅱ 과목에서 오류를 내면서 출제 시스템을 전면 강화했고, 이를 책임지며 평가원장이 사퇴했다”며 “그보다 더한 공정성 논란이 벌어진 셈이라 덮기에 급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호 교수는 “수능 문제거래 또는 소위 족집게 수능 출제 문항 예측이라는 ‘벼락 맞은 확률’보다 낮은 사례가 우연이라고 발표한 평가원 관계자들은 수험생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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