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추모한 오스카... '기생충' 비난한 트럼프 비꼬기도

윤현 2024. 3. 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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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지난해 세상 떠난 영화인들 추모... 나발니도 등장

[윤현 기자]

미국 아카데미가 배우 고(故) 이선균을 추모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10일(현지시각)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 무대가 마련됐다.

아카데미를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안)는 이날 시상식에서 안드레아 보첼리가 아들 마테오와 함께 부르는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배경음악으로 고인이 된 영화인들을 화면에 차례로 보여줬다.

이선균을 비롯해 미국 인기 드라마 <프렌즈> 챈들러 빙 역의 매튜 페리, 영화 <러브스토리>의 라이언 오닐, 일본 출신 음악감독 류이치 사카모토 등의 얼굴이 등장했다. 

이선균이 출연한 영화 <기생충>은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에 올랐다. 당시 시상식에 참석한 이선균은 봉준호 감독, 동료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이선균과 함께 추모 영상 등장한 나발니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11일, 2020년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에 참석했던 고 이선균을 추모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 EPA/연합뉴스
 
추모 영상에는 지난달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사망한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나발니>에서 나발니가 "만약 그들이 날 죽이기로 한다면 우리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뜻"이라며 "악의 승리를 위해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나왔다. 

나발니에게 "만약 당신이 살해당한다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가"라고 물으며 시작한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그가 47세 나이로 의문사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푸틴 정권을 겨냥한 듯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그린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므스티슬라프 체르노프 감독은 무대에 올라 "이 모든 영광을 바꿔서라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간 군인들이 돌아오도록 하고 싶지만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역사를 만든다"라면서 "이곳에 모인 여러분처럼 재능있는 사람들이 마리우폴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을 잊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가자 전쟁 규탄한 유대인 출신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영화 감독이 2024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을 규탄하는 수상 소감을 보도하는 AP통신
ⓒ AP
 
또한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다룬 영화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영국의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유대인 출신인 글레이저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의 우리를 반영하고 맞서기 위해 내린 것"이라며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 그들의 유대인성(이스라엘 민족성)과 홀로코스트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에 이용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지휘관인 독일군 장교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보여준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앞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했다. 

글레이저 감독은 "이 영화는 비인간화(dehumanisation)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발생한 희생자이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이든 모두 비인간화의 희생자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우리 자신보다 열등하고 다른 존재로 여긴다"라며 "그것은 점차 잔혹함으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시상식이 열린 돌비극장 앞에서는 약 1천여 명이 모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빌리 아일리시, 마크 러팔로 등 일부 유명 인사들은 휴전을 촉구하는 핀을 달고 시상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정치적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시상식 사회를 맡은 코미디언 지미 키멀은 진행 도중 "누군가가 저에 대해 쓴 리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라면서 "글쓴이는 '키멀을 다른 사회자로 교체하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썼는데 어떤 전직 대통령이 이 글을 썼을지 알아맞혀 보라"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님, 아카데미 시상식을 봐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아직 수감 생활이 안 끝난 것 아니냐"라고 비꼬았고,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 출마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년 전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때도 "우리(미국)는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국 영화에 상을 줬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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