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후퇴 가능성, 느닷없는 소득대체율 인상안

신성식, 황수연, 남수현 2024. 3. 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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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1월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상균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연금개혁이 후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두 가지 안을 확정해 11일 발표했다. 34명으로 구성된 의제 숙의단이 2박 3일 합숙토론을 거쳐 확정했다. 다음달 중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투표로 둘 중 하나를 결정한다.

이날 확정한 1안은 소득대체율을 40%(2028년 기준)에서 50%로, 보험료를 9%에서 13%로 인상하는 안이다. 2안은 소득대체율(40%)을 그대로 유지하고 보험료를 12%로 올린다. 1안은 소득 안정 효과, 2안은 재정 안정 효과에 역점을 뒀다. 국민연금은 이대로 가면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된다. 1안대로 하면 소진 시기가 7년, 2안은 8년 늦춰진다. 둘 다 보험료 납부의무 연령(현재 만 59세)을 64세로 늦춘다.

요란한 연금개혁 논란 치고는 둘 다 결과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1안의 주목적은 노인 빈곤율 완화이다. 2022년 빈곤율은 38%이다. 2085년이 돼도 25.5%나 된다. 빈곤 완화가 시급한 건 맞다. 그러나 대체율 인상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단순하게 따지면 소득대체율이 40%일 때 생애평균소득 100만원인 사람이 40년 가입하면 노후연금 40만원을 받고, 대체율을 50%로 올리면 50만원 받는다. 하지만 40년 가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평균 17~18년이다. 이 경우 대체율을 10%p 올려도 연금액이 17만원에서 21만여원으로 약간 오른다. 그것도 당장 오르지 않고 한참 후에 오른다.

반면 재정 지출은 엄청나다. 2062년 기금 소진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지출이 급증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2093년 누적적자가 700조원(지금대로 가면 7750조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연금개혁의 주목적이 '70년 튼튼'인데 더 나빠진다. 그래서 기초연금 인상으로 풀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지급 범위를 노인의 70%에서 40% 이하로 축소하고 연금액을 50만~60만원으로 올리는 방법도 있다. 윤석명 박사는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를 25%로 올려도 부족하다"며 "후세대에게 더 큰 짐을 떠넘겨 개악이라는 지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득대체율 인상안은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에서 빠졌다가 뒤늦게 들어갔다. 재정계산위에서 암묵적으로 의견이 모인 안은 '소득대체율 40% 유지-보험료 15%' 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시민 정서를 감안할 때 15% 인상을 제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2안으로 가면 26년 동결된 보험료를 처음 올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2안대로 하면 2093년 누적적자를 약 2000조원 줄일 것으로 추정한다.

오 위원장은 "1안은 기금 소진 연도를 늦추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정 불안정을 확대하는 방안"이라며 "의제숙의단이 2박3일 짧게 논의했는데, 1안이 미래세대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7개 의제를 사흘만에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500명의 시민대표단 토론에서도 이런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

김상균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은 "이번에 두 개의 안이 보험료 '마의 장벽 9%'를 뛰어넘게 되는데, 지난 20년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국민교육으로 이어진 증거라고 볼 수 있다"며 "공론화 토론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연금개혁에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시민대표단 투표에서 특정 안이 좀 더 비중있게 나오면 국회 연금특위가 이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달라질 수도 있다. 공론화위 관계자는 "시민대표단에서 어떻게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가는 게 아니라 국회나 정부에서 적절하게 보험료를 조금 더 올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들이 소득대체율·보험료율 동시 인상,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며 보험료율 인상 중 어느 걸 선호하는지 국회가 알아내는 게 공론화의 핵심 목적이다. 요율 자체는 조금 더 올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명 박사는 "시민대표단에게 누가 설명하느냐가 관건이다. 두 안을 충분히 공정하게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1안이 더 정의롭고 공평한 것처럼 보일텐데 두 방안의 의미를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료만 올리는 걸 달가워할 국민은 없다. 공론화위 다른 관계자는 "500명 시민대표단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34명의 숙의단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받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소득대체율 인상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뜻)"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 연금개혁의 빈 답안지를 국회에 보냈다. 국회 연금특위는 공전을 거듭했다. 책임있는 결정을 기피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내놓은 게 공론화 토론 방식이다. 연금개혁은 매우 복잡하다 난해하다. 이 방식이 그리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안건을 공론화 토론에 부친 예가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은 2006년 개혁 때 연금위원회 개혁안을 두고 한달여간 대국민 토론회를 열었다. 연금제도가 직면한 문제와 개혁에 대해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외 국가들은 전문가 논의를 거쳐 지도자가 결정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황수연⋅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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