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안 면밀히 볼 것” 장고 들어간 은행…일부 소비자 단체 “DLF보다 후퇴”
은행권은 금융감독원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불완전 판매 검사 결과에 대해 일단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1차 배상안 격인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배상안에 금감원과 은행 간에 이견이 발생한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銀 판매 설계 문제” 지적에 “굉장히 죄송”
11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굉장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모든 은행과 일부 증권사는 판매 설계 단계부터 ELS 불완전 판매를 조장했다고 보고 있다. 11일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불완전판매 사례는 개별 판매사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며 “특히 은행은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례였다”고 지적했다.
청력 안 좋은 투자자에 “이해했다 하라”
실제 A 은행은 미·중 갈등으로 홍콩H지수 변동성이 커지던 지난 2021년 신탁 수수료 목표를 전년 대비 56.9% 오히려 올리면서 ELS 판매를 독려했고, 일부 은행은 핵심성과지표(KPI)에 ELS 판매 실적을 반영하고, 판매 한도 기준도 내부 승인 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완화했다.
투자자 성향분석 시 필수 확인해야 하는 ‘거래 목적’ 항목에 B 은행은 점수를 배정하지 않아 ‘노후 자금 마련’이나 ‘단기 운영 목적’을 선택해도 ELS에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손실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분석 기간을 일부러 20년에서 10년으로 줄여 설명해 투자 위험을 축소한 은행도 있었다.
개별 판매 과정서도 문제가 다수 발견됐다. C 은행 직원은 87세 투자자에게 “예금 선호를 체크하면 가입이 안 된다”면서 투자 성향 상향을 종용했다. D 은행 판매 직원은 87세 투자자가 청력이 약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고 얘기했지만, “이해했다”고 답하라고 반복 요청했다. 배우자 대신해 방문한 고객에게 ELS 재가입을 권유하면서,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일자를 변조한 은행 직원도 있었다.
분쟁 조정 이제 시작…은행권 시뮬레이션 돌입
이번에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은 금감원의 1차 배상안에 불과하다. 최종 배상안은 은행과 증권사가 금감원 안을 어느정도 수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금감원은 기준을 제시한 만큼 금융사가 자율 배상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과거 파생결합펀드(DLF)와 달리 배상 기준 사례가 촘촘하게 나뉘어 있고, 투자자 별로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변수다. 일부 배상안이 판매사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투자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결국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은행권은 금감원의 배상안을 기준으로 자율 배상 등이나 소송 가능성, 배상 금액에 대한 자체 시뮬레이션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일단 지금은 금감원의 배상안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알아서 배상해라 압박으로 느껴”
은행들은 겉으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불만도 감지된다. 불완전 판매에 대한 사실 관계가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감원이 검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배상안을 압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우리 입장에서는 알아서 배상액을 어느 정도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들린다”고 했다.
반면 일부 소비자 단체는 배상 기준이 자의적이고, 전반적으로 DLF 때와 비교해 후퇴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예를 들어 가입 횟수 20회나 5000만원이 넘는 투자금은 배상 비율을 차감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기본 배상 비율은 낮추고 차감 요소는 많이 해 놔서 실제 배상 비율은 기대한 것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면서 “금감원이 사실상 은행의 백기사 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금감원 제재도 변수…“배상금 수조원 갈수도”
배상안과 별도로 진행하는 금융사 제재도 변수다. 금감원이 자율 배상을 할 경우 제재 감경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제재 수위에 따라 은행권에 배상안 압박이 될 수도 있어서다. 특히 과징금이 수조원 단위로 나오거나, 최고경영자(CEO) 제재가 나오면 금융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개정 금융소비자법은 은행 전반 불완전 판매가 인정되면 과징금을 판매 금액 50%까지 부과할 수 있다.
향후 은행들이 ELS 같은 고위험 판매 상품을 파는 것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 부원장은 “고위험 상품판매 금지도 제도개선 옵션 중 하나로 논의는 될 수 있지만, 현재 어떤 방향으로 갈지에 대해 확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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