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가 사교육 업체 돈받고 문제 거래"…교육부 "엄정 대응"(종합)
청탁금지법 위반·업무방해 혐의 56명 수사
현직 교사가 사교육 업체와 유착해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은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감사원 감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11일 지난해 9~12월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 수능 경향에 맞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 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 금품 제공을 매개로 문항 거래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혐의가 확인된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 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이는 지난해 교육부가 관련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던 22명보다 30여명 많은 수치다.
특히 2022년 유명 강사의 사설 모의고사에 나온 영어 지문이 당해 수능 시험에 23번 문항으로 출제되는 과정에서 학원 강사, 교원, 출제 교수, 평가원이 얽혀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대학교수 A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의뢰로 2023년 1월 출간 예정인 2022년 8월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했는데, 해당 교재에는 한 고교 교사가 2022년 3월 'Too Much Information'(TMI)라는 지문으로 출제한 문항이 수록돼 있었다. A씨는 2022년 8월 해당 EBS 교재 감수에 참여하며 TMI 지문을 알게 됐고, 이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TMI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해 수능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평소 교원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던 유명 강사 B씨는 TMI 지문의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원 C씨를 통해 TMI 지문으로 만든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평가원 영어팀은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설 모의고사와 중복 검증을 부실하게 해 TMI 지문 문항이 수능에 중복 출제되는 것을 걸러내지 못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수능에서 '1타 강사의 모의고사 문항'과 동일 지문이 출제됐다는 이의신청이 215건이나 접수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문항이 대형 입시학원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지문, EBS 수능 교재 감수본과 동일했던 배경에 '사교육 카르텔'이 자리했다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추후 경찰 수사를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가원 '검증 부실'…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업체 취업도
수능 검토위원 경력 교원이 다른 수능 검토위원을 포섭해 문항 공급조직을 구성한 후, 사교육 업체와 문항을 거래하거나 일부 교원이 사교육 업체 거래이력을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사실도 이번 감사 결과 확인됐다.
고교 교원 D는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다수 참여하면서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출제위원 참여경력의 교원 총 8명을 포섭해 소위 문항 공급조직을 구성하고, 2019∼2023년 5월까지 2000여개 문항을 제작·공급하고 6억6000만원을 수수했다. 이 중 3억9000만원은 참여 교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7000만원은 자신의 문항 제작비와 알선비 명목으로 수취했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 E는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업체를 공동 경영하면서 현직 교사 35명으로 문항 제작팀을 구성한 뒤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문항을 넘겨 수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고교 교원 F는 2019∼2022년까지 사교육업체에 수능 대비 모의고사 문항 1200여개와 학원 강의 부교재를 제작·공급하면서 1억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교 교원 G는 2018∼2023년 9월까지 온라인 사교육업체에 내신 예상 문항 7000여개를 제작·공급한 후, 그 대가로 83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업체에 취업해 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을 제공 후 금품을 수수한 사례도 적발됐다.
감사원은 "입학사정관 퇴직 후 3년간 학원 등 취업이 제한되는 고등교육법 조항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법상 위반 시 제재 규정은 없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교육부에 제도 개선 등을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묻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사교육 카르텔이 현실로 드러난 가운데 교육부는 엄정한 대처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는 11일 "그간 감사원 감사에 적극 협조해 왔으며, 감사 결과가 공식 통보되는 대로 해당 교원에 대한 징계 요구 등 조치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수능 공정성 강화 등을 위한 제도 개선도 지속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감사원 감사 결과 사교육 업체와의 문항 거래 등 중대한 비위가 확인된 교원에 대해서는 소관 교육청에 강력한 징계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교육부가 수립한 ‘교원 겸직 허가 가이드라인’에는 교원이 사교육 업체와 유착한 영리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겸직 금지 대상 범위와 허가 기준을 명시했다. 또 교육부는 1년에 2회 겸직 허가 위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입시비리 가담 교원 징계 시효 10년 연장 추진"
교원의 비위 등에 대한 처벌 기준도 강화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입시비리에 가담한 교원에 대한 징계 시효를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입시 관련 비위에 대한 양정기준을 신설하는 ‘교육공무원 징계양정에 관한 규칙’ 개정안도 3월 중 입법예고해 더 엄정하게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사설 모의고사 지문이 수능에 중복으로 출제된 것과 관련, 수능 출제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올해(2025학년도) 6월 수능 모의평가부터 적용하겠다고 했다.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취업하는 등 현행 법령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된 데 대해 교육부는 "규정의 실효성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전·현직 입학사정관의 취업 제한 범위 확대, 제재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관계 법령 개정 등 추후 감사원의 제도 개선 권고 사항을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교육부는 덧붙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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