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년 만에 완전체 찾은 ‘곽분양행락도’…독일 귀환 전 첫 공개

강혜란 2024. 3. 1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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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있는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 가 보존처리 작업 과정을 마친 뒤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아름다운 꽃나무 아래 학이 노니는 정원. 대형 차양 아래 손주 둘을 품에 안은 노인이 함박미소를 띠고 있다. 등 뒤에선 큰 부채를 든 시녀가 시중들고 주변에 가족과 신하들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무희의 춤과 기녀들의 연주가 지금 성대한 축하연 중임을 알린다.

조선 19세기에 크게 유행한 그림 ‘곽분양행락도’의 한 장면이다. 주로 6폭~12폭 병풍으로 제작돼 수복강녕의 삶을 기원하는 길상(吉祥) 용품으로 활용됐다. 1802년 순조와 순원왕후의 혼례 때 사용되면서 사대부는 물론 민간에도 유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국내외에 40점 남짓 전한다.

이 가운데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돼온 곽분양행락도가 15개월간 보존처리를 마치고 독일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1902년 해당 박물관이 이를 소장한 후 122년 만에 국내 첫 공개다. 11일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공개된 작품은 애초에 그림 낱장이 각각 분리돼(8장) 전해지다가 이번에 전체적인 오염 제거 및 배접 처리를 통해 ‘8폭 병풍 완전체’로 재탄생했다. 연구소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의 ‘국외문화유산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사업’에 따라 이를 진행했다.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에 있는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병풍 '곽분양행락도' 가 보존처리 작업 과정을 마친 뒤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의 중심 장면(8폭 가운데 5폭의 일부). 11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과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대표 박지선)는 15개월간 작품 보존처리를 마치고 독일로 되돌려주기에 앞서 처음으로 이를 공개했다. 강혜란 기자

곽분양행락도의 주인공은 중국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郭子儀·697∼781)다. 그는 안사의 난(755~763,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 곽분양으로 불렸다. 숱한 무공을 세워 출세가도를 달렸을 뿐 아니라 8남7녀 외에 많은 손주를 보았고 85세까지 장수했다. 곽분양행락도는 그의 80세 생일잔치를 묘사한 그림으로 명나라 때 유행하다 조선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재단의 김정희 이사장은 “중국에선 곽자의가 중심이 돼 그의 충신됨을 높이 사는 그림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처럼 다복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의 연회용 병풍으로 쓰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채로운 도상과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곽분양행락도는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공개된 라이프치히그라시 소장품의 경우는 독일의 저명한 고미술상 쟁어(H. Sanger)가 일본에서 구입한 것을 1902년 소장기관이 사들였다고 한다. 가로 50㎝, 세로 132㎝ 크기의 낱장 그림 8장이 하나로 어우러진 연폭 병풍으로 전체 4m에 달한다. 1~3폭에는 집안 풍경과 여인들 및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4~6폭에는 잔치 장면, 7~8폭에는 연못과 누각의 모습을 묘사했다. 각 장의 오른쪽 상단에 펜으로 알파벳과 번호가 적혀있고 그 중 하나엔 ‘Korea, Sanger’라고 적혀 있어 입수 경위와 유물 번호를 기록한 용도로 추정된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는 낱장으로 전해져오다 이번에 8폭 병풍 완전체로 재탄생했다. 11일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대표 박지선)에서 공개된 병풍 그림에선 유물 번호와 작품 소장 경위로 추정되는 알파벳이 확인된다. 강혜란 기자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의 보존처리를 진행한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의 박지선 대표가 11일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강혜란 기자

연구소의 박지선 대표는 “앞서 스펜서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이 소장 중인 곽분양행락도를 보존처리한 경험 덕에 이번에 새로이 비단 장황(표구)까지 해넣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림만 분리하는 과정에서 1면과 8면의 화면 일부가 잘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복원하면서 이를 보완해 전체 크기를 맞췄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3월 말 독일 박물관으로 돌아가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재단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총 10개국 31개 기관을 대상으로 53건의 국외 소재 문화유산을 보존처리하여 현지에서 전시되거나 활용되도록 했다. 김정희 이사장은 “외국에 소장된 유물을 꼭 환수하지 않더라도 활용을 통해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보존처리 지원에 계속 힘쓰겠다”고 말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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