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강제로 요양병원 옮겨졌다 사망…전공의 이탈 뒤 압박"

하수영 2024. 3. 1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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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열린 '의사 단체 집단행동 중단 촉구, 한국중증질환연합회 입장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환자를 볼모로 한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와 의대 교수의 의료 현장 이탈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뉴스1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70대 암 환자가 반 강제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음 날 바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1일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례를 포함한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환자 피해 사례들을 소개했다.

지난해 10월에 담도암 진단을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70대 암 환자 A씨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음 날 새벽 4시에 사망했다고 한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본격화한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된 병원의 퇴원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연합회 측 주장이다.

식도암 4기 환자의 보호자 B씨는 "병원에서 의료 사태를 이유로 항암치료를 거절당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며 "하지만 정작 치료 계획은 말하지 않았다. 현재의 의료 사태로 인해 입원도, 치료할 여력도 없으니 알아서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상태가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미 머리가 멍해졌는데, 치료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길바닥으로 내쫓긴 심경으로 진료실을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힘겨루기를 하며 중증 환자들의 치료받을 기회와 시간이 짓밟고 있다고 느꼈다. 막막함과 황당함에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희정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간사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열린 '의사 단체 집단행동 중단 촉구, 한국중증질환연합회 입장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입원 대기 중인 C씨(76)는 "항암치료가 1주일 이상 연기돼서 마음을 졸이며 병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병원에 전화해 대기 순번을 확인하고 있는데 순번이 전혀 줄지 않고 있다"며 "너무 무섭고 겁이 나지만, 이 사태가 끝나길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증언했다.

중증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암 환자 D씨(60)는 "9차에서 10차로 넘어가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입원이 중지됐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외래로 돌렸으나, 이 역시도 1주일이 밀려 총 4주간 치료 연기가 발생했다"며 "그 사이 등 통증과 간 수치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입원 중지로 항암치료가 10일가량 연기됐다는 암 환자 E씨(71)는 "첫 항암 치료를 받고 CT 판독을 해보니 췌장 내부에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며 "입원 일정이 연기되지 않고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면 전이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대 종로구 연건캠퍼스 앞에서 한국중증질환연합회 주최로 전공의 사직과 의대 교수 의료현장 이탈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필수의료 중단하고 의사들은 돌아와야"

중증질환연합회는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속에서 전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라며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 추진을 중단하고 의사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가장 보호받아야 할 중증질환자들이 양쪽의 갈등 상황에서 이들 사이의 협상 도구로 전락해 볼모가 되고 있다"며 "이 파렴치한 상황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동시에 집단 사직한 전공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연합회는 "정부가 명단 공개를 거부하면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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