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아이돌의 음악방송 1위, 이게 가능하다고?

김상화 2024. 3. 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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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50만장 음반 판매고에 음악방송 정상까지

[김상화 기자]

 보이그룹 플레이브
ⓒ 블래스트
지난 9일 K팝 아이돌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 발생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MBC <쇼! 음악중심>에서 5인조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가 비비, 르세라핌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첨단 IT 기술로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로 구성된 그룹이 한국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가요계 이변에 가깝다.

1998년 데뷔한 사이버 가수 '아담'을 시작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고 그 뒤에 실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형태의 시도는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브처럼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3월 12일 정식 데뷔한 플레이브는 지난 2월 발표한 미니 앨범 2집 < ASTERUM: 134-1 >이 발매 첫 주만에 56만 장 판매고를 기록하며 탄탄한 팬덤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타이틀곡 'WAY 4 LUV' 역시 주요 음원 순위 상위권에 진입하면서 지난해 연말 발표한 'Merry PLLIstmas'에 이어 연타석 히트 행진을 달리고 있다. 기성 세대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는 플레이브의 등장과 인기몰이는 K팝 시장이 또 한 번 요동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방송국 사내 벤처 기업, 3D 모델링 기술이 만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WAY 4 LUV'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블래스트
 
플레이브를 탄생시킨 업체는 기존 K팝 기획사가 아닌, 방송국 사내 벤처로 출범한 소규모 회사 '블래스트'다. MBC에서 오랜 기간 예능, 드라마의 CG 작업을 담당했던 MBC VFX 슈퍼바이저 이성구 대표가 설립한 회사로, 시청자들의 성원을 받았던 VR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역시 이대표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었다.

이같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버추얼 캐릭터 기반의 사업에 돌입한 블래스트는 첫 번째 결과물로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를 내놓았다. 플레이브는 CG 기술의 발전 현황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과거 영화 <반지의 제왕>의 대표 캐릭터 골룸은 분장을 하고 연기하는 배우를 모션캡쳐 카메라로 찍은 후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CG로 캐릭터를 완성해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 발전을 통해, 배우 없이도 실시간으로 생동감 있는 얼굴과 표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어 훨씬 자유롭게 가상현실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엔 <포트나이트> 등 인기작을 다수 배출한 세계 10대 게임업체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도 힘을 보탰다. 지난 1997년 처음 개발되어 무려 27년 동안 착실히 업그레이드된 이 기술은 각종 게임 및 캐릭터 업체들이 리얼타임 3D 모델링에 기반해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플레이브 역시 언리얼 엔진의 향상된 기능에 힘입어 TV와 라디오 생방송 출연뿐만 아니라, 오는 4월에는 단독 콘서트까지 개최하는 등 일반 가수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쌍방향 소통으로 친근함 키운 '만찢남' 
 
 지난 9일 방영된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한 플레이브
ⓒ MBC
 
'버추얼 아이돌'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디지털로 구현한 펭수'라고 표현할 수 있다. 2019년 EBS에서 제작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 캐릭터인 펭수는 실제로 한국인이 귀여운 펭귄 탈을 쓰고 남극에서 온 펭귄을 연기하고 직접 말한다.

플레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캐릭터는 3D 관련 IT 기술로 만들고 구현하지만 노래와 춤 등은 실제 사람이 직접 몸으로 표현한다. 과거에 등장했던 아담, 류시아 등 '사이버 가수'들은 이러한 버추얼 아티스트의 원조 격에 해당된다.

플레이브는 리더 예준을 중심으로 멤버 모두 작사, 작곡, 안무, 프로듀싱 업무에 참여하는 자체 제작 아이돌이다. 과거 단순히 목소리만 입혔던 '선배 사이버 가수'들과는 다른 결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인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수시로 SNS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이른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식 캐릭터는 특히 로맨스 웹툰을 읽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플레이브가 만들어낸 듣기 편안한 음악은 이들을 더이상 가상 현실 그룹이 아닌, 우리 주변의 다양한 팀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만들면서 K팝 팬들에게 막강한 파급력을 행사하고 있다.

2세대 보이그룹 음악의 부활? 차별화 전략의 성공
 
 MBC FM4U '아이돌 라디오'의 한 장면. 플레이브는 버추얼 그룹이지만 라디오 생방송에도 출연해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 MBC
 
플레이브의 성공에는 단순히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콘셉트 외에도 음악적인 차별화도 한 몫을 담당한다. 최근 등장한 팀들의 대부분은 해외 시장을 겨냥한 영어 가사, 챌린지에 최적화된 간결한 안무 동작, 짧은 러닝 타임의 곡들을 만드는 추세다.

반면 플레이브는 이러한 추세를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2000년대 후반 등장했던 아이돌 2세대 보이 그룹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우리말 가사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착실하게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을 두고 혹자는 "20년 전 아담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플레이브는 단순히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존 팀과 동일하게 연습생 생활을 거쳐 정식 데뷔를 이뤘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일궈나가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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