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관중에도 심각한 졸전, 갈길 먼 김기동의 서울
[이준목 기자]
제시 린가드와 김기동 감독이라는 두 '거물'의 합류에도 효과는 아직 미미했다. 프로축구 FC서울이 5만여 관중들 앞에서 치른 홈 개막전에서 또다시 아쉬운 경기력을 드러내며 첫 승에 실패했다.
FC서울은 3월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2라운드 경기에서 득점 없이 0-0 무승부에 그쳤다.
서울의 2024시즌 홈 개막전이자 인천과의 '경인더비'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엔 무려 5만1670명의 구름 관중이 모였다. 서울 구단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축구연맹이 2018년 유료 관중 집계를 시작한 이후로 K리그1 단일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4월 8일 서울과 대구FC의 경기(3-0 서울 승)에서 기록한 4만5007명으로, 당시에는 인기가수 임영웅이 시축과 공연을 맡아 특별게스트로 등장하면서 팬덤 집결의 수혜를 누렸다. 또한 승강제가 도입된 2013년 이래 최다였던 2016년 6월 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에서 기록한 4만 7899명의 기록도 경신했다.
서울은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으로 꼽힌다. 최근 몇년간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k리그1 관중동원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고, 지난 2023년에는 평균 관중 2만2633명을 기록하여 유료 관중 집계 이후 처음으로 평균 '2만 관중' 시대를 열기도 했다.
여기에 올시즌을 앞두고 지난해 포항 스틸러스의 FA컵 우승을 이끈 '명장' 김기동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고, 외국인 선수로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의 제시 린가드를 전격 영입하며 큰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울산과 전북의 양강구도를 뒤흔들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홈 개막전 5만 관중은 바로 이러한 서울의 인기와 기대감이 반영된 효과였다.
하지만 서울은 기껏 경기장을 가득 메워준 팬들에게 '축구'로 보답하는데는 실패했다. 서울은 지난 2일 광주FC와의 개막 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한 데 이어 홈 개막전에서 첫 승을 노렸지만 승점 1점에 만족해야 했다. 개막 2경기에서 1무1패를 기록한 김기동 감독은 서울 사령탑 데뷔승을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결과보다 내용은 더 심각했다. 서울은 2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광주전에서는 이정효 감독과의 지략대결에서 압도당하며 전반에만 슈팅 8개, 유효슈팅 4개를 허용하는 졸전을 펼쳤다. 후반에 김기동 감독의 빠른 전술적 대응과 선수교체로 경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만회골을 넣는 데는 실패했다.
인천과의 홈 개막전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서울은 전반 초중반까지 원정팀인 인천의 페이스에 오히려 휘말렸다. 첫 슈팅이 전반 30분 이후에 나왔고 전체 경기를 다 합쳐도 총 슈팅수 차이가 4대 17이었을만큼 일방적이었다. 점유율은 서울이 높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불필요한 백패스나 횡패스에 치우쳐서 인천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기대를 모았던 린가드는 2경기 연속 교체로 출전했다. 몸상태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린가드를 가급적 아끼려고 했던 김기동 감독은, 계속해서 경기가 풀리지 않자 결국 린가드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린가드는 광주전에서는 후반 31분에 투입되어 약 15분여를 소화했고, 인천전에서는 전반 30분만에 조기투입됐다.
오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린가드는 몇차례 번뜩이는 장면을 보여주며 클래스를 증명했다. 광주전에서는 뒷공간을 노리는 로빙패스나 오른쪽에서 올려운 크로스로 동료의 득점찬스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공간이 열리자 과감한 왼발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천전에서는 투입 4분 만에 수비수 사이로 절묘한 전진 패스를 강상우에게 찔러주며 1대 1 단독찬스를 만들어줬으나 아쉽게 선방에 막혔다. 후반 39분에는 강성진이 빠른 돌파를 통해 연결해준 컷백이 린가드가 오른발에 걸리며 K리그 데뷔골 기회를 얻었으나 슈팅이 불규칙 바운드가 되며 그만 골대 위를 크게 넘어가고 말았다.
린가드는 크게 아쉬워하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린가드가 공을 잡을 때마다 크게 환호하며 휴대폰으로 촬영을하는 등 뜨거운 인기를 증명했다.
하지만 경기 투입 시간이 길어지자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모습도 드러냈다. 린가드는 후반으로 갈수록 존재감이 줄었다. 경기 막바지에는 팔로세비치가 프리킥 기회에서 린가드을 보고 공을 연결했으나, 정작 린가드는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있다가 기회를 놓쳤다.
수비가담이나 오프더볼 상황에서 동료들과의 호흡도 아직은 잘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적응하면 자연히 해결될 수도 있지만, 린가드의 클래스에 거는 높은 기대치를 감안하면 좀더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서울 팬들은 팀의 답답한 경기력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반 막바지와 후반 경기 종료 직후에는 서포터스석에서 두 번이나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김기동 감독은 "팬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당연히 팬들은 홈에서 더 좋은 경기력과 승점을 원했을 것이다"라며 비판을 겸허히 수용했다. 이어 김 감독은 "1라운드보단 좋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복 없는 플레이가 나와야 한다.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더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기동 감독은 지난해까지 포항에서 선수 자원과 구단의 지원이 한정된 상황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특히 선수구성에 맞춰 그때그때 최상의 조합을 끌어내는 유연한 전술적 능력은 김 감독의 최대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전반적으로 선수 개개인의 네임밸류는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뚜렷한 색깔이 나오지 않고 있다. 첫 2연전에서는 공격진의 소극적인 플레이와 창의성 부족, 불안한 좌우풀백 문제가 두드러졌다. 여기에 일류첸코, 린가드, 기성용 등이 모두 이름값에 비하여 체력적-전술적으로 활용하기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선수들이라는 점도 김기동 감독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험난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김기동 감독이 과연 황선홍-최용수-박진섭-안익수 등 서울에서 연달아 쓴 맛을 본 전임 감독들의 비극적인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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