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입시 문제·왕따 논란 담았다
[양형석 기자]
지난 2003년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호러 영화 <장화, 홍련>은 임수정과 문근영이라는 걸출한 신예 여성배우들을 발굴하며 전국 314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후 우후죽순처럼 비슷한 장르의 호러 영화들이 개봉했지만 2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장화, 홍련>을 뛰어넘는 호러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687만 관객을 동원했던 <곡성>이나 544만 관객의 <검은 사제들>은 '호러'라는 장르로 묶을 수 있을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비록 <장화, 홍련>의 기록을 깨진 못했지만 2018년에 개봉했던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도 호러 영화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크게 화제가 됐다. 지금은 익숙한 얼굴이 된 <오징어 게임>의 위하준, <재벌X형사>의 박지현, <더 글로리>의 성훈이 신인이던 시절을 볼 수 있는 <곤지암>은 전국 267만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에 대이변을 일으켰다. <곤지암> 이후 충무로에서는 신인배우들을 기용한 저예산 호러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 만약 <여고괴담>이 개봉하던 시기에 지금처럼 상영관이 많았다면 전혀 다른 흥행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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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호러영화
사실 19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무서운 이야기는 으쓱한 시골마을이나 공동묘지 같은 곳을 떠올렸지만 사실 학교만큼 무서운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곳도 드물다. 실제로 각 학교에는 선배가 후배에게 전달하고 다시 그 후배가 학교에 새로 입학한 후배들에게 전달하면서 오랜 기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있다. 충무로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10대들이 주인공인 호러 영화가 끊임 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2004년에 개봉한 <분신사바>는 <가위>와 <폰>을 만들며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던 안병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여학교에서 크게 유행한 귀신을 부르는 주술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여고괴담>에서 여고생을 연기했던 김규리가 <분신사바>에서는 학교에 새로 부임한 미술교사를 연기했고 <야인시대>의 '나미꼬' 이세은과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 이유리가 학생 역할로 출연해 전국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08년에는 '한국판 <쏘우>'로 불렸던 데스게임 공포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가 개봉했다. <고사>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다크 나이트> 사이에 개봉하는 모험수를 던져 전국 163만 관객을 동원하며 의외로 선전했다. 씨야의 남규리와 티아라의 함은정, 스피카의 양지원 등 걸그룹 멤버들이 대거 학생 역으로 출연했던 <고사>는 2년 후 윤시윤, 박은빈, 손호준, 지창욱 등이 출연한 <고사 두 번째 이야기:교생실습>이 개봉했다.
2014년에 개봉했던 <소녀괴담>은 '미담의 아이콘' 강하늘이 2013년 <상속자들>에서 이효신 역으로 주목 받은 후 선택한 데뷔 첫 주연작이었다. 강하늘이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년을 연기한 <소녀괴담>은 기본적으로는 호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코믹한 장면과 귀신과의 멜로장면 등 다양한 장르가 하이브리드된 영화다. <소녀괴담>은 201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아시아연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5년에 개봉한 이해영 감독의 <경성학교>는 1938년 일제강점기 당시 병약한 소녀들이 교육과 숙식을 제공받으며 지병치료와 요양, 체력회복을 지원받는 요양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개봉 당시에는 <과속스캔들>, <늑대소년>에 출연했던 박보영의 원톱영화로 알려졌지만 <경성학교>에는 박보영 외에도 박소담과 고원희, 금새록 등 이름 있는 배우들이 꽤 많이 출연했다(물론 전국 35만 관객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 <여고괴담>에서 학생 역할을 맡았던 4명의 배우들은 모두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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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담임에게 멸시를 받고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미술실에 갇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여고생(최강희 분)이 귀신이 돼 조용히 학교를 다닌다는 <여고괴담>의 설정은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구미호>의 조감독을 거쳐 <여고괴담>으로 데뷔한 박기형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연출로 런닝 타임 내내 <여고괴담>의 무섭고도 음침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냈다.
<여고괴담>은 호러 영화로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입시제도와 교우관계의 라이벌 의식, 왕따, 학교 교육의 부조리, 교사의 부도덕성 등 학원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영화 속에서 실질적인 악역으로 나왔던 악랄한 교사들의 별명('미친 개', '늙은 여우')은 여러 학교에서 실제 교사들의 별명이 됐고 영화의 포스터에 정치인의 얼굴을 붙인 패러디가 유행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학교>, 시트콤에서 <논스톱> 시리즈가 있다면 영화에서는 <여고괴담> 시리즈가 신인 여성배우들을 발굴하는 등용문으로 오랜 기간 명성을 얻었다. 실제로 <여고괴담>의 최강희, 박진희, 윤지혜를 비롯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규리(개명 전 김민선), 박예진, 공효진,<여고괴담3: 여우계단>의 송지효, 박한별,조안, <여고괴담4: 목소리>의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등 <여고괴담>에 출연했던 많은 신인배우들이 스타로 성장했다.
수 많은 매체를 통해 패러디 됐던 '전설의 점프컷' 때문에 <여고괴담>을 대표하는 배우로 최강희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개봉 당시 <여고괴담>의 주인공은 떠오르는 청춘스타 김규리였다. 드라마 <신고합니다>에서 구본승의 여자친구 역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은 김규리는 <여고괴담>의 임지오 역으로 확실한 스타반열에 올라선 후 2000년대 초반까지 드라마와 영화, CF를 두루 섭렵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여고괴담>을 연출한 박기형 감독도 <여고괴담>이 첫 장편영화였던 신인 감독이었지만 <여고괴담>에는 훗날 유명감독이 되는 인물들이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고괴담>에서 소품을 담당했던 스탭은 <밀수>의 류승완 감독이었다(당시 류승완 감독은 박찬욱, 곽경택, 박기형 등 선배 감독들 밑에서 영화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액션배우 출신으로 유명한 <용의자>,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 역시 <여고괴담>에서 스턴트를 담당했다.
▲ <여고괴담> 속 최강희의 '점프컷'은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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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는 1996년 MBC 청소년드라마 <나>에서 홍세연 역으로 주목을 받은 후 극 중 이름을 따와 한 동안 '최세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여고괴담>의 크레딧에도 최강희는 최세연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있다). 9년 전 학교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귀신으로 남아 학교를 다니는 장진주(현재 시점 이름은 윤재이)를 연기한 최강희는 한국 호러 영화 역사상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된 점프컷을 남기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진희가 연기한 소영은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는 우등생으로 선생님들로부터 총애를 받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지만 폐쇄된 미술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뜻밖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전교 1등 소영에게 심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정숙과는 1학년 때까지 단짝 친구였지만 선생들이 자신과 정숙을 바교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사이가 멀어졌다. 박진희 역시 <여고괴담>이후 승승장구하며 스타배우로 성장했다.
<여고괴담> 출신 배우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진 않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중 한 명이 바로 정숙을 연기했던 윤지혜다. 윤지혜는 1990년대 어느 학급에서나 한 명쯤 볼 수 있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열등감 많은 학생을 연기했다. 영화 내내 웃는 모습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우울한 캐릭터였던 정숙은 결국 자살을 선택했고 재이가 떠난 자리를 대신해 학교를 떠도는 귀신이 됐다.
<친절한 금자씨>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이용녀는 <여고괴담>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늙은 여우'로 불리는 콧대 높고 깐깐한 중년 여교사를 연기했다. 진주를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 만으로 멸시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만악의 근원'으로 영화 초반 뒤에 서 있던 진주의 원령에 의해 살해 당한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시체로 발견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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