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를 잃은 군인 이종섭... 교민은 호주대사가 부끄럽다

이대원 2024. 3. 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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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의 도덕적 권위 중시하는 호주 사회와도 배치... 대한민국 대표로 인정 못해

[이대원 기자]

매년 4월 25일은 호주가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 행사 중 하나인 안작(ANZAC: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 데이다.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국가 추모의 날이다. 이날은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호주와 뉴질랜드 군이 독일의 동맹국이던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위해 갈리폴리(gallipoli)에 상륙한 날이다. 

8개월간 치러진 갈리폴리 전투에 호주는 약 5만 명을 파견했고, 그중 약 8700명이 전사했다. 전선의 상황은 참혹했고, 호주가 아닌 유럽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전투였지만 명령을 거부한 군인은 없었다고 한다. 승리하지 못했지만, 이 전투는 호주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이 보여준 인내, 용기, 독창성, 유머 감각은 이후 '안작 정신'으로 계승되었고, 위기나 고난의 시기에 호주인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자질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호주가 치른 전쟁은 늘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혼자서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먼저 어려움에 빠진 동맹국을 돕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 인구는 약 4백만 명에 불과했지만 44세 이하 남성의 약 34%인 41만여 명을 징집했고, 그중 5만 8천여 명이 전사했다. 한국전쟁에도 약 1만 명이 파견되어 339명이 목숨을 바쳤다. 

군 지휘관의 도덕적 권위 
  
▲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윤 대통령은 신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이 전 장관은 10일 오후 출국했다. 사진은 2023년 9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입장하는 모습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호주 국민이 아닌 다른 나라 국민을 지키는 전투에 참가하는 호주 지휘관들은 다른 나라 지휘관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자질이 필요하다. 바로 도덕적 권위다. 

군인에게는 매우 특별한 권한이 있다. 부하에게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길 가능성이 없는데도 진지를 사수하도록 명령하기도 하고,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교전 규칙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령에 항거하지 않는다. 대의는 정당하고 공정하며, 명령을 내리는 상관에게는 도덕적 권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덕적 권위는 법적 권한과 다른 것이다. 법적 권한이 반드시 옳은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법적 권한으로 내린 명령이 도덕적으로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잘못에 빠지게 된다.  

호주에서 자라는 한인 교포 아이들이 호주 학교에서 배우는 안작 정신은 바로 도덕적 권위에 관한 것이다. 지휘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남의 나라 땅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라는 명령을 누구도 따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전해져 온 뉴스가 호주 교민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바로 명예를 지키지 못한 한 군인 때문이다. 지금 의혹의 눈길을 받는 그 군인의 행동이 법적으로는 잘못이 아니어서 훗날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 그 퇴역 군인의 법적 권리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 호주에서 우리 아이들이 배워온 것은 군인에게는 법적 권한 만큼 도덕적 권위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호주는 나라로서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호주 역사 역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도덕적 권위를 세우지 못한 지휘관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그들은 현실의 불량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위에 기반한 권위를 마치 도덕적 권위인 양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 지도자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위를 도덕적 책임을 감추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명예 되찾고 다시 오시라
  
 10일 오후 호주대사로 부임 예정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 조국혁신당,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 관계자들이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윤석열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외압 범인도피, 범죄은폐 저지 긴급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외교관 출국장앞에서 대기중이던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조국혁신당 영입인사인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신장식 대변인 등이 이종석 전 장관이 이미 출국장으로 들어갔다는 정보가 들려오자 허탈해하고 있다.
ⓒ 권우성
 
우리는 군대에 간 젊은이들에게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명령이어도 그것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른 한 군인은 목숨을 잃었다. 사고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다른 군인에게는 잔인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호주 교민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일이 이제 우리의 일이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을 감추고, 자신의 법적 권한이 마치 도덕적 정의인 양 행세한 한 퇴역 군인을 안작 정신을 배우고 자란 한인 2세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표로 소개할 것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살면서 때로는 한국의 일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외면하기도 한다. 한국보다 나은 호주의 모습을 보면서 호주와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은 이방인의 심정을 달랠 때도 있다. 호주 교민의 목소리가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투에서 패한 군인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명예를 잃은 군인을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대표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호주에서 자란 한인 2세들 중에도 한국에 돌아가 자랑스러운 군복무를 해야 할 젊은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시 호주로 돌아오길 바란다. 

이종섭 대사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시라. 돌아가셔서 잃어버린 명예 되찾고 다시 오시라. 지금까지 당신이 지켜오셨을 목숨보다 명예가 소중하다는 군인의 본령을 이제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대원 기자는 호주에 사는 교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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