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당찬 지역, 백두대간 조망 가능한 이 산 아십니까

이완우 2024. 3. 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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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만행산 천황봉 등산 여행을 다녀오다

[이완우 기자]

 천황산 원경 (2020.2.18. 임실군 오수면 둔덕마을 천변에서 촬영)
ⓒ 김진영(향토역사탐구가)
 
남원시 산동면과 보절면 경계에 있는 천황산(天皇山, 909.6m)은 섬진강 상류인 남원 요천과 임실 오수천의 낮은 하천 지형을 동서 편으로 거느려서 일망무제의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이 산은 만행산(萬行山)이라도 부르며, 정상은 천황봉(천왕봉, 보현봉)이라고 한다.

3월 초순의 이른 봄날 천황산 등산길에 나섰다. 보절면 도룡리 추어마을에서 용평저수지 주차장에 도착하여 보현사 방향으로 200m 걸으면 천황산 등산로인 임도의 어귀가 열려있다.

천황산 정상까지 2.2km의 등산길은 임도를 걸어서 너적굴골을 지나고, 계곡삼거리를 거쳐 너덜지대와 급경사를 차고 오른다. 아슬아슬한 바위 낭떠러지 능선을 지나고 잘록한 등성이에서 한숨 돌리며 정상에 올랐다. 내림길은 작은천황봉을 거쳐 계곡삼거리를 만나 용평저수지 주차장까지 2시간이면 되돌아올 수 있다. 이 산은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에서 줄기가 뻗은 천황지맥의 으뜸 산으로서 개동산 방향의 상서바위 코스와 산동면 귀정사 코스 등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다. 

지리산과 백두대간의 힘찬 산줄기 조망할 수 있는 명소 
 
 천황산 정상에서 백두대간과 지리산 방면 조망
ⓒ 이완우
이 산의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삼백 리를 굽이치며 내달리는 백두대간과 지리산 능선의 조망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삼각뿔 모양의 이 산은 몇 십 km 밖의 명산에서 알아보기 쉽게 눈에 잘 띄인다. 결국 이 산의 정상에서도 지리산, 덕유산, 무등산, 내장산과 모악산 등 여러 명산이 잘 조망된다.

천황산 정상에서 지리산 방향을 조망하면 네 줄기의 산줄기가 펼쳐졌다. 첫 산줄기는 천황산의 자락이 남원시 산동면 방향으로 뻗쳤고, 요천수가 띠처럼 낮은 지형으로 흘러내린다. 둘째 산줄기는 백두대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며, 가운데에 고남산(847m)이 높이 솟았고 여원치와 수정봉을 지나 구룡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고리봉으로 올라간다. 고려말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크게 무찔렀던 황산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고남산과 황산을 확인한다. 그 위 저 멀리에 도도한 지리산 줄기가 시작된다. 

셋째 산줄기는 오른쪽 고리봉에서 왼쪽으로 산줄기가 흐르며 세걸산, 바래봉(1,165m)과 덕두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 능선으로 그 앞쪽에 운봉고원이 펼쳐졌다. 넷째 산줄기는 하늘을 떠받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리산의 만복대, 노고단(1,507m), 반야봉(1,732m), 명선봉, 촛대봉, 장터목산장, 제석봉, 천왕봉(1,915m), 중봉과 하봉을 천천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백두대간과 지리산 줄기가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처럼 힘차게 휘돌아 달리고 있어 감동적인 장면이다. 
 
 천황산 정상에서 남원시와 교룡산 방면 조망
ⓒ 이완우
 
이 지역에서 마한의 부족 사회, 백제의 거사물현(居斯勿縣), 가야 세력의 진출, 통일신라의 청웅현(靑雄縣)과 고려의 거령현(居寧縣)이 지역에 있었다. 이 천황산 북녘 아래 거물성(居勿城)에서는 백제가 패망하고도 3년 동안이나 백제 유민들이 항전하였고,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金欽純, 598년~680년)의 신라군이 가까스로 평정할 정도로 이곳은 기상이 당찬 지역이었다. 통일신라는 신라의 지방군 10정 중의 하나인 거사물정(居斯勿停, 청웅)을 이 지역에 주둔시켰다.

천황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악과 요천 및 오수천의 충적지 평야 지대에 고대로부터 상당한 세력이 웅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천황산을 중심으로 한 거사물현을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보절면과 임실군 지사면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것은 이 지역의 주요 세력과 그 거주지가 동쪽, 북쪽과 서쪽 등으로 시대에 따라 이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지명들
 
 천황산 정상 표지석
ⓒ 이완우
천황산 등산을 안내한 이 지역 향토역사탐구가인 김진영(임실군 오수면 동후리)씨가 향토 역사서인 남원시 보절면지(2021년)에 조선 시대의 '천황산' 표현이 있다며 한시 한 수와 장계 한 문장을 소개하며, 우리나라가 고대와 중세에 황제국이었다는 주장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한시 : 天皇晩雲(천황만운), 작자 : 매헌 소산복(梅軒 蘇山福, 1556~1620) 

斗峯高揷天(두봉고삽천) 정상이 높이 솟아 하늘에 이르니
日晩雲猶幕(일만운유막) 날이 저물고 구름이 덮여서
無心自去來(무심자거래) (구름은) 무심히 스스로 오가지만
不礙眞容碧(불애진용벽) 푸르른 참모습을 가리지 않네

전라도 관찰사 박필명(朴弼明, 1658~1716)이 올린 장계(1708.6.29, 숙종 34년) 중 한 문장도 아래와 같다고 그는 주장한다.

南原府 天皇峰下平坡地陷 道臣狀聞
(남원부 천황봉하평파지함 도신장문)
: 남원부 천황봉 아래 평탄한 언덕이 함몰하였습니다. 관찰사(도신)가 장계(장문)합니다. 

이곳 천황산에 천자(황제)가 나올 천자지지(天子之地) 명당이 있으며, 이 산의 북쪽 칠상동의 북장군 장군대좌(將軍大座)가 있다고 한다.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늠름한 기상의 이 산은 주봉 천황봉, 왼쪽 봉우리 태자봉(太子峰), 앞산 승상봉(丞相峰)과 북쪽 산줄기 칠상동(七相洞) 등 그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은 수수께끼 같다.

천황산 아랫마을의 밭둑 양지에 광대나물이 꽃을 피웠다. 이 꽃들은 이 땅에서 수백 만 년을 살아온 꽃들이기에, 역사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이 천황산 등 여러 지명의 유래와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광대나물 개화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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