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바쳤던 한국지엠, 후배들이 걱정입니다"

김웅헌 2024. 3. 11. 10: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한국GM, 그 안에 사람人] 김용구 조합원

[김웅헌 기자]

7일,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공단로 6. 한국지엠의 유일한 부품 물류기지인 세종 PDC를 찾았다. 주변은 개발 계획에 따라 토목공사가 한창이었다. 1만 9712평에 달하는 물류센터는 한국지엠 소유의 토지와 건물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어린 여공들이 일했던 방직공장 건물을 임대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는 당시의 학교와 기숙사 건물도 그대로 남아 있다.
 
▲ 한국지엠세종물류센터 1960년대 방직공장 건물을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은 몇 년 동안 수익구조 및 효율성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인천 물류, 제주 부품, 창원 물류센터의 문을 닫았다. 이제 세종 PDC는 한국지엠의 유일한 부품물류센터가 됐다. 이곳에서 올해 정년을 맞이하는 김용구 조합원을 만났다.

"이 회사에 젊어서 들어와서 이제 나이 먹고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청춘을 갈아 넣은 이 회사를 나가려니 후회가 많아집니다. 지나와 보니까 동료들끼리 잘 지낼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됩니다. 고만고만한 또래의 사람들끼리, 왜 그리 사소한 일들로 다투고 미워하고 경쟁했는지 참 후회가 됩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것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는 인터뷰의 첫 이야기로 지난 37년을 회상하며 동료들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용구 조합원은 1987년 대우자동차 부평 프레스 공장에 입사했다. 이후 부품 물류 업무를 하는 KD 부서에서 10년을 근무했다. 2004년 현재의 세종 PDC로 근무지를 옮겨 현재 수출포장 직 직장대행(기술 선임)으로 일하고 있다.
 
▲ 김용구 조합원 올해 퇴직하는 세종물류 김용구 조합원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총각일 때 친구 작은아버지 회사에 형수가 다녔어요. 어떻게 연락이 돼서 형수의 소개로 회사 동료 4명과 4대 4로 소개팅을 하게 됐죠. 그리고 계룡산 여행을 함께 갔어요. 동료들과 서로 맘에 드는 상대편을 골랐지요. 사랑의 작대기라고 해야 하나요.

그때 저는 소개팅에 나온 지금의 아내가 눈에 들어왔어요. 두말없이 아내를 미팅 상대로 결정하고 만남을 계속했죠. 그때의 만남으로 아내와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현재까지도 그때 소개팅에 참석했던 회사 동료 4명과는 모임을 계속하고 있어요."

아내 이야기를 꺼낸 김에 가족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요청했다.

"저는 충북 단양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들은 다들 저보다 고향에서 멀리 삽니다. 87세이신 어머님이 단양 고향 집에서 살고 있어요. 어머님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요즘은 불이 무섭다며 치매 증상도 보여서 걱정이 많습니다. 근처에 있는 요양 시설에 모시려고 해도 어머님과 고향에 사시는 친가 어르신들이 반대하십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라도 모시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찾은 게 작년 추석에 5000만 원 정도 들여 시골집을 어머님이 편히 거동할 수 있도록 개조했어요. 요양보호사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방문 요양을 하고 있어요. 제가 그나마 가까워서 자주 찾아뵙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늘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와의 대화에서 60대의 그만그만한 사람들의 제일 큰 걱정이 노부모 요양과 관련한 사항임을 새삼 느꼈다. 정년을 앞둔 그에게 회사에 관한 평소 생각을 물었다.
 
 김용구 조합원이 한국지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비싼 임대료 내고 비정규직 늘리는 회사 이해 안 가"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제가 물류 조합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을 참 오래 했었습니다. 이곳은 국내에 있는 동종사 물류센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낙후됐습니다. 한국지엠 고위급 임원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 점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노후화 된 이 건물에는 화재 발생 시 작동해야 할 자동 소화시설(스프링클러)조차도 설치돼 있지 않으며, 비가 오면 천정에서 누수가 돼 장비 이동 시 사고 발생 우려가 매우 크다고 개선을 요구했으나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희가 십여 년 전에도 정수유통(세종 물류 소유주) 용지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느니 몇십억 원을 들여서라도 매입하는 것이 수익률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경영진들은 매년 각종 임대창고와 세종 물류 임대료를 포함해서 100억 원가량을 매년 직·간접 임대료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사업하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합니다."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현장에서 파악하기로는 부품판매 영업이익률이 지난 10년 평균 약 4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2021년부터 23년까지 1800∽2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남기도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현재 세종 물류에 근무하는 현장 정규직 인원은 2020년 33명에서 24년 21명, 25년에는 11명만이 남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비정규직 도급업체 인원은 130명 정도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물류사업에서 엄청난 수익을 남기고 있으면서도, 해마다 100억 원가량의 부지 임대료를 지급하고, 정규직 직원을 충원하지 않고 비정규직 인원으로 대체하는 것은 직원과 함께 성장하려는 모습이 아니라, 더 많은 수익을 미국 본사로 빼돌리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올해 정년을 앞둔 김용구 조합원은 시종일관 한국지엠 경영진들의 물류센터 정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김용구 조합원이 부품물류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선배로서 물류센터 노후화 문제, 인원 충원 등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퇴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부족했던 부분들은 후배들이 조금씩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정과 아내에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아내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이혼할 거라고 작정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면 사소한 것들은 먼저 이해하고 맞춰가야 합니다. 제가 조금 더 살아 보니까 그래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퇴직 후 삶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저는 후회는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회사 다니면서 남매를 결혼시켰습니다. 귀여운 손녀도 보았습니다. 저는 퇴직 후 개인택시를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아직 아내와의 협상이 다 끝난 건 아닙니다. 아내는 퇴직 후 쉬라고 하는데 사지 멀쩡하고 아직 팔팔한데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정년연장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나 회사 차원에서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저보다 먼저 퇴직하신 선배들의 퇴직 후 삶을 보며 느낀 겁니다."
  
 김용구 조합원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청춘을 온전히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한국지엠까지 함께한 사람, 김용구. 그는 말하는 내내 서두르지 않았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편견이 아니라 격양된 말조차 절제와 조절로 답했다. 자신의 말보다 상대방의 생각을 먼저 경청하려는 일관된 자세가 지금의 그를 존재하게 했을지 모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