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배상]'불완전판매' 백태…"은행이 이래도 되나?"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 소비자보호에는 소홀
대리가입·허위녹취·서류변조 등 총체적 부실
"판매사들은 고객 손실위험 확대기에 과도한 영업목표, 부적절한 성과지표 등을 통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하면서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판매한도 관리, 비예금상품위원회 운영 등에는 소홀해 불완전판매 환경을 조성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부터 2개월에 걸쳐 주요 은행과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현장검사와 민원 조사를 벌이고 11일 내린 결론이다.
금감원이 1월 8일부터 3월 8일까지 국민, 신한, 하나, 농협, SC 등 6개 은행과 한국투자증권, 미래, 삼성, KB, NH, 신한 등 6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검사와 민원 조사 결과를 보면 '은행이 정말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H은행 판매직원은 투자자 투자성향 분석결과가 ELT 가입이 불가한 위험중립형으로 나오자 가입이 불가하다고 안내하고 나서 작은 목소리로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라고 유도해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 또한 I은행 판매직원은 투자자에게 유선으로 ELT 가입을 권유했으나 투자자가 방문이 어렵다고 하자 고객이 내점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직원이 투자성향진단 설문지, 상품설명서, 가입신청서를 모두 작성·서명하고 판매과정 녹취시 다른직원이 고객 역할을 하면서 허위로 진행했다.
J은행 판매직원은 87세 고령투자자의 투자성향 분석 과정에서 판매직원이 "예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체크하면 가입이 안 되므로 가입할 수 있도록 투자성향을 상향했다"고 안내했다. 이어 S은행 판매직원은 87세 투자자가 청력이 약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함에도 '이해했다'고 답할 것을 반복해 요청하고 '중도해지수수료'에 대해 '가능하면 해지하시면 안 된다는 내용'이라고 왜곡 설명했다.
서류를 변조한 사례도 확인됐다. K은행 판매직원은 배우자를 대신해 방문한 고객에게 ELS 재가입을 권유하며, 명의자 본인의 가입의사 확인 없이 기존에 제출되어 유효기간이 지난 가족관계증명서 발급일자를 변조해 가입시켰다. 금감원은 "대리가입 과정에서 본인의 가입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녹취하도록 규정했지만, 사후에 파일을 점검하는 절차가 없었다"면서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금감원은 본사의 '부적정한 영업목표 설정'과 '고객 보호 관리체계 미흡'에 우선 주목하고, 일선 영업점의 판매과정에서 발생한 대리 가입, 고령자 보호 소홀, 서류 변조 등 다양한 불완전판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금감원 검사 결과 판매 본사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글로벌 주가지수 변동성 확대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영업목표와 프로모션 등 공격적인 영업을 지속했다. 성과평가지표(KPI)를 양적 판매에 맞춰 판매 한도를 우회적으로 늘리면서도 비예금상품위원회 운영은 소홀하게 하는 등 내부통제시스템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A은행은 2021년 영업목표를 수립할 때 WM(자산관리)수수료 중 신탁수수료 목표를 2020년 대비 56.9% 상향했다. B은행은 홍콩H지수가 최고점을 지나던 2021년 1분기에만 두 차례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실적 데이터를 회사 게시판에 안내하는 등 실적 경쟁을 유도했다. 여기에 녹인(Knock-in)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H지수가 하락하더라도 판매 당시 ELS 수익률(쿠폰)을 영업점 KPI로 인정하거나, 주가연계신탁(ELT) 등 고위험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신탁수수료의 최대 2배를 성과이익으로 평가해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객별 한도관리기준을 ELS 회차별로 적용해 고액 중복가입자를 양산한 은행도 있었다. C은행은 3억원 이상이면서 2건 이상 중복 가입한 개인 투자자 수만 1620명에 달했다. 또 다른 D은행은 주가지수 변동성이 확대되면 판매한도를 줄이도록 한 내부 리스크관리기준을 완화해 판매 한도를 대폭 끌어올리는가 하면 예외 한도를 설정해 부실을 키우기도 했다.
투자자 성향 분석 항목 누락, 부적합 투자자에도 홍콩ELS 판매
투자자 성향을 분석해 부적합한 투자자는 배제하고 적합 투자자에게 설명의무와 설명서 교부 의무를 이행하는 기초적인 절차에도 하자가 있었다. 투자자 성향분석은 6개 항목을 필수적으로 고려하고 확인해야 하지만 일부 항목을 누락하거나 점수를 배정하지 않은 사례가 확인 된 것이다.
금감원 검사 결과 E은행은 투자자성향 분석 시 ‘거래목적’ 항목에 평가점수를 배정하지 않아 투자자가 ‘노후자금 마련’, ‘단기운영목적’ 등을 선택하더라도 투자성향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는 결과 초래했다. 또한 '원금보존'을 희망하는 투자자에게도 자산규모와 소득수준만 만족하면 ELS에 가입이 가능하도록하거나, 투자기간 '1년 미만'으로 응답한 투자자도 다른 항목의 평가 결과를 근거로 가입하게 한 사례도 나왔다.
투자위험 누락·설명의무 미흡 사례 수두룩
판매사가 투자성 상품 판매 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위험등급 유의사항 등 투자위험을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은행이 ELT 계약 시 자체적으로 작성한 운용자산설명서를 투자자에게 설명·교부하는 과정에서 ELS 발행사(증권사)가 작성한 증권신고서(투자설명서) 내용 중 투자위험 등의 중요사항을 왜곡하거나 누락한 것이다.
금감원 검사 결과 F은행은 발행 증권사의 증권신고서에 손실위험 분석기간이 과거 20년으로 돼 있던 것을 운용자산설명서 작성 과정에서 10년으로 임의변경해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것(0%)으로 축소 기재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하는 식이다. 이 은행은 영업점에 배포한 안내자료와 권유 멘트를 통해 안전 상품으로 설명하도록 유도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G은행은 금소법에 따라 금융소비자에게 설명해야 하고 설명서의 맨 앞에 두도록 한 중요사항인 '위험등급 유의사항'을 설명서에서 누락하기도 했다.
이 밖에 투자자에게 고난도상품 요약설명서 미교부한 경우, 투자권유 자료를 10년간 보관해야 함에도 운용자산설명서를 보관하지 않은 경우도 확인됐다. 상품 판매 시 '계약 체결과정' 전반을 녹취해야 함에도 일부분만 녹취하도록 프로세스를 설정해 실질적 상품권유·설명과정을 녹취해야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는 은행도 있었다.
판매 은행과 증권사의 판매시스템의 부실은 개별 판매과정에서 무수한 불완전 판매를 야기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판매과정에서 적합성 원칙은 물론 설명의무 위반, 대리가입, 고령자 보호 소홀, 서류 변조 등 다양한 불완전판매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업점의 무리한 성과평가지표를 포함해 ELT 회차별 판매기간 단축, 신탁수수료 목표 대폭 상향 등 본사의 정책을 위반 배경으로 지목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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