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황토로 노란색, 커피박으로 갈색…친환경 천연물감 그림도 잘 그려져요

2024. 3. 11.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감은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재료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물감은 문구점 등에서 쉽게 사서 쓸 수 있지만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화학물감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보통 주변에 있는 재료로 물감을 만들어 썼어요. 원시시대 동굴 벽화부터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 시대 민화 등을 보면 식물을 빻아서 만든 가루나 흙·돌(광물)가루에 물·아교·고무 등을 섞어 만든 천연물감으로 색을 칠했죠.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달하면서 화학물질을 가미한 인공 재료들로 자연이 낼 수 없는 다양한 색 물감을 만들 수 있게 됐는데요. 문제는 일부 물감이 인체와 자연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김민솔(왼쪽)·안수민 학생기자가 어몽트리 그림공간 윤다영 작가의 도움을 받아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재료로 물감을 만들고, 만든 물감으로 그림도 그려봤다.

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에 따라 학교·가정에서 어린이들이 쓰는 학습용 그림물감은 학용품으로 분류, 중금속 등 유해원소 용출·함유량 등의 안전요건을 준수해야 하죠. 제품에는 소비자가 보기 쉬운 곳에 모델명·제조연월·제조자명·수입자명·주소·전화번호·사용연령·제조국 등을 표시해야 하며, 특히 주의사항으로 ‘피부에 사용금지’ 문구가 있어야 해요. ‘환경보건법’에 따라 어린이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사용제한 환경유해인자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하고, 위해성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사용·판매를 제한 또는 금지합니다. 무색 가스인 폼알데하이드, 방부제 성분인 MIT(Methylisothiazolinone·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 등이 위해성 평가 대상이며 기준인 위험지수(HQ·Hazard Quotient)가 1을 초과하지 않아야 해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는 제품의 제조·판매업자는 친환경제품·친환경·무독성·무공해 등 포괄적인 환경성 용어 및 표현으로 소비자가 오인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를 하면 안 된다고 명시됐죠.

2021년 한국소비자원 안전감시국 제품안전팀이 발표한 ‘그림물감 안전실태조사’에서 2016년~2021년 3월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물감’ 관련 위해 사례는 9건이었습니다. 피부 상해가 6건(66.7%)으로 가장 많았고, 삼킴·눈 상해·호흡기 자극 위해 사례가 각각 1건(33.3%)이었죠. 또한 2021년 2~4월 시중에 판매되는 그림물감 20개를 조사한 결과 7개(35.0%) 제품이 구체적인 근거 없이 무독성(Non-toxic)·친환경·환경오염 등의 환경성 용어를 사용해 부적절한 표시·광고를 하고 있었죠. 해당 업체들은 관리·감독 강화 및 시정 공고를 받았어요.

자연에서 나온 흑토(왼쪽)·황토에서 불순물을 걸러 내 만든 안료.
윤다영 작가가 직접 커피박 안료(왼쪽 사진)로 만든 물감과 천연석 가넷 안료가 들어간 물감으로 그린 리스(화관) 그림.


인체와 환경에 해롭지 않은 수제물감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민솔·안수민 학생기자가 방문한 서울 서초구의 어몽트리 그림공간은 친환경 재료로 수제물감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곳이에요. 이곳을 운영하는 윤다경 작가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물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에 관해 설명했죠. “색깔을 내는 재료를 ‘안료’라고 해요. 가루 형태라 색깔 가루라고도 하는데요. 안료를 녹이고 종이 등에 잘 붙게 하려면 고착제 역할을 하는 풀(미디엄)이 필요해요. 여기에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를 넣거나 양을 늘리기 위해 증량제 등도 추가하지만, 안료와 풀만 있어도 물감을 만들 수 있죠.”

민솔 학생기자가 “물감 종류에는 어떤 게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크게 수채화물감·아크릴물감·유화물감이 있어요. 안료에는 식물성·동물성·광물성·토(土)성 등 자연에서 얻은 천연안료와 화학적인 합성 과정을 거쳐서 만든 합성안료가 있어요. 똑같은 안료라도 풀에 따라 물감 종류가 달라지죠. 안료와 아카시아나무 수액 가루인 검 아라빅 파우더 등 나무 수액(수지)을 섞으면 수채물감이 되고, 식물성·동물성 및 석유에서 나온 공업용 기름을 섞으면 유화물감, 플라스틱으로 만든 합성수지인 아크릴수지를 섞으면 아크릴물감이 돼요.”

윤다영 작가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재료로 물감을 만드는 것과 함께 물감을 어떻게 더 친환경적으로 쓸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감을 담고 굳히는 용도로 쉽게 버려지는 병뚜껑(왼쪽 사진)과 일회용 렌즈 통 등을 사용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수민 학생기자는 안료를 어떻게 구하는지 궁금해했죠. “친환경적이고 인체에 해롭지 않은 안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물감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재료가 안전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죠. 저는 주로 미국·독일 등의 물감·안료 제조회사에서 안료를 구매하는데 무료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를 제공하는 곳들이 많아요. 피부에 닿았을 때, 눈에 들어갔을 때, 싱크대에 흘려보냈을 때 등 인체와 환경에 대한 안전 등급을 담은 자료죠. 우리나라 일부 물감·안료 제조회사들은 MSDS를 공개하지 않아요. 어떤 회사는 MSDS 공개를 요청하니 일반 소비자에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기도 했죠. 또 미국의 경우, 미국창작재료협회(ACMI·The Art and Creative Materials Institute)에서 미술·공예 소재에 대한 의료 전문가의 독성학적 평가 프로그램을 통해 ACMI 인증 표시를 부여해요. 어린이를 포함한 사용자에 해를 끼치거나 급성·만성질환을 일으킬 정도의 독성물질을 함유하지 않고 안전하다면 ‘AP(Approved Product)’, 주의가 필요한 제품이면 ‘CL(Cautionary Labeling)’이 부여되죠. 문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물감에는 ACMI 인증 표시가 드물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기준에 적합한 제품에 법으로 정한 국가통합인증인 KC마크나 인증번호를 표시합니다. 안료 중 일부는 환경과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요. 자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독성이 있는 납 등이 기준치를 넘기는 경우가 있어 KC마크·인증번호·MSDS 등을 잘 보고 구매해야 해요. 불 모양의 가연성 물질 경고 표시가 있다면 안전성이 의심되기도 하죠. 화학적 냄새가 많이 나거나 물감이 닿았을 때 피부가 따갑고, 빨갛게 부어오르면 안 쓰는 게 좋아요.

검 아라빅 파우더와 뜨거운 물을 섞어 만든 풀에 클로브오일 대여섯 방울을 계량컵에 떨어뜨리면 완성된 물감에 곰팡이가 잘 피지 않는다(위 사진). 유리판에 안료와 풀을 1:1 비율로 부은 뒤 미술용 나이프로 뭉치지 않게 잘 섞어준다.


수민 학생기자가 “수제물감을 사용하면 환경에도 도움이 될까요?”라고 물었어요. “안료 중에 동물 재료로 만드는 게 있는데요. 흰색·검은색 안료는 동물 뼈를 갈거나 태워서 만들고, 빨간색 안료 중에는 곤충을 갈아서 색깔을 낸 것도 있죠. 동물을 해하면서 안료를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환경, 즉 생태계에 좋지 않겠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재료로 물감을 만드는 것과 함께 물감을 어떻게 더 친환경적으로 쓸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물감을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물감이나 안료를 담을 땐 유리병이나 렌즈 통, 병뚜껑 등을 쓰고 팔레트로는 접시를 사용해요. 붓과 손을 닦을 때는 화장지·물티슈 말고 버릴 옷이나 안 쓰는 천을 잘라서 씁니다.”

윤 작가의 설명을 들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수제물감을 만들어봤어요. 여러 색 가루 안료, 풀 역할을 하는 검 아라빅 파우더, 2.5ml·5ml·15ml 계량스푼, 물감의 갈라짐을 방지하는 식물성 글리세린,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해주는 클로브(정향)오일, 계량컵, 미술용 나이프, 렌즈 뚜껑, 뜨거운 물, 유리판, 뮬러 등이 소중 학생기자단 앞에 놓였죠. 각자 2가지 색의 안료를 골라봤는데요. 민솔 학생기자는 빨간색·파란색 물감을 만들기 위해 불순물을 거른 적토로 만든 빨간색 안료, 흙 90%와 파란색을 띠는 광물 10%가 섞인 파란색 안료를 골랐어요. 노란색·민트색을 만들고 싶은 수민 학생기자는 불순물을 거른 황토로 만든 노란색 안료와 천연 탄산칼슘 90%와 미네랄 10%가 섞인 민트색 안료를 선택했죠. 윤 작가는 "이 안료들은 MSDS로 안전을 확인 후 구매한 것"이라고 했어요.

뮬러를 사용하는 소중 학생기자단. 큰 도장같이 생긴 뮬러는 입자가 굵은 안료를 갈아서 풀에 잘 녹게 해준다.


“먼저 풀을 만들게요. 15ml 계량스푼에 검 아라빅 파우더를 가득 담아서 계량컵에 넣고 뜨거운 물 30ml를 붓고 파우더가 뭉치지 않고 전부 녹도록 잘 섞어야 해요. 클로브는 ‘정향’이라고 하는 향신료예요. 클로브오일은 아로마오일의 일종으로 피부에 발라도 괜찮고, 물감에 곰팡이가 잘 피지 않게 해주죠. 스포이드로 클로브오일 대여섯 방울을 계량컵에 떨어뜨리고 잘 섞어줍니다. 그다음 식물성 글리세린을 2.5ml 계량스푼으로 한 숟가락 넣어요. 피부에 바르는 로션의 주성분이기도 한 식물성 글리세린은 물감이 굳어 갈라지는 것을 방지해주죠. 클로브오일과 식물성 글리세린은 없다면 넣지 않아도 괜찮아요.”

유리판 위에 각자 고른 가루 안료 중 하나를 5ml 계량스푼으로 한 번 떠서 올린 뒤 그 위에 계량컵에 든 풀을 5ml 떠서 부어줘요. 가루 안료와 풀의 비율은 1:1로 하는데, 물감을 담을 렌즈 통이 5~10ml 정도라 가루 안료와 풀을 각각 5ml로 한 겁니다. “미술용 나이프로 가루 안료와 풀을 적신다는 느낌으로 섞어줘요. 다 섞었으면 큰 도장같이 생긴 유리 뮬러를 사용해 입자가 굵은 안료를 갈아서 풀에 잘 녹게 해줄 겁니다. 뮬러의 손잡이를 잡고 원을 그리면서 평평한 바닥으로 안료를 잘 짓이겨 주세요. 뮬러로 안료를 많이 으깨면 물감이 부드러워져서 사용감이 좋고, 안료와 풀이 잘 섞여서 색도 잘 나오죠.”

김민솔(왼쪽) 학생기자가 만든 빨간색 물감 ‘바램(바람)’과 안수민 학생기자가 만든 노란색 물감 ‘달고나’.


소중 학생기자단은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물감까지 만든 후 2개의 물감을 렌즈 통에 담고, 윤 작가가 만든 수제종이에 그림을 그려봤어요. “내가 만든 물감의 이름을 짓기도 하고, 물감들을 섞어 새로운 색도 만들어 보세요.” 민솔 학생기자는 파란색 물감으로 나무, 빨간색 물감으로 땅, 파란색과 빨간색 물감을 섞어 만든 보라색 물감으로 사람을 그렸어요. 파란색 물감은 파란 보석인 사파이어에서 딴 ‘새파이어 블루’, 빨간색 물감은 ‘바램(바람)’, 보라색 물감은 ‘나만의 보라색’이라고 이름 붙였죠. 수민 학생기자는 노란색과 민트색 물감으로 귀여운 캐릭터를 그렸어요. 노란색 물감은 달달한 느낌이 나서 ‘달고나’, 민트색 물감은 톡톡 튀는 색이라 ‘새콤이’라고 이름을 정했죠.

수민 학생기자가 “집에서도 물감을 만들 수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시중에 판매되는 안료 대신 베이킹에 사용하는 초코파우더·블루베리파우더 등을 사용하면 돼요. 최근에 커피박(커피 찌꺼기)을 곱게 간 것을 안료로 삼아 물감을 만들었는데요. 일반물감보다 사용감은 낮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풀은 수채물감용 나무 수액보다 유화물감용 기름을 구하기 쉬워요. 호두기름이나 올리브오일, 물엿을 사용하면 돼요. 우리가 쓰는 로션에 다양한 가루를 섞으면 색깔 로션이 되는데요. 피부에 닿아도 괜찮은 재료니 페이스페인팅이나 바디페인팅을 하면 재미있겠죠.”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친환경 물감은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물감이에요. 윤다영 작가님은 친환경 물감과 그 종류에 관해 설명해 주시고, 친환경 물감 만들기 필수 재료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저는 흙과 광물이 섞인 파란색 안료, 적토로 만든 빨간색 안료로 파란 물감과 빨간 물감을 만들고 그걸로 그림도 그려봤습니다.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나만의 팔레트를 완성해 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중 친구들도 그림 그릴 때 환경 보호에 동참할 수 있는 친환경 물감을 사용해 보세요.

김민솔(서울 명지초 6) 학생기자

수제물감에 대해 알아보는 취재를 했습니다. 물감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만든 물감의 색상이 예뻐서 계속 눈길이 갔죠. 물감을 병뚜껑·유리병·렌즈 통 등을 재활용해 보관한다는 게 친환경적으로 느껴졌어요. 제가 만든 물감은 안전한 재료로 만들어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요. 흙·광물 등으로 다양한 물감을 만들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물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고 물감을 직접 만들어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안수민(서울 동호초 6) 학생기자

글=박경희 기자 park.kyunghe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어몽트리 그림공간, 동행취재=김민솔(서울 명지초 6)·안수민(서울 동호초 6) 학생기자, 참고서적=『미술 재료 백과: 성분에서 사용 기법, 작품 보존까지』(미술문화)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