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99달러부터" 美 달러숍의 배신…바이든 최대 난제는 '인플레'

뉴욕=권해영 2024. 3.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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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판매가, 대부분 2달러 안팎부터 시작
인플레 둔화에도 체감 생활 물가 높아
유권자 80% "인플레, 가장 큰 스트레스"

뉴욕 맨해튼 5번가와 웨스트 46번가 사이에 위치한 달러 스토어. 200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피프스 애비뉴 달러 앤드 디스카운트'란 이름의 이 매장은 높은 물가로 악명 높은 맨해튼 한복판에서 지난 20년 동안 소득 수준이 낮은 서민층에게 식료품과 각종 생필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왔다. 고품질 제품을 1달러(약 1320원)에 유통하는 전략을 쓰는 '달러숍' 중 하나다.

하지만 지난 6일(현지시간) 오후 이곳을 방문하니 가격이 1달러인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달러트리와 같은 대형 달러숍 체인이 2021년 제품 판매가를 1달러에서 1.25달러로 올리긴 했으나, 개인 사업자가 운영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곳의 판매가는 훨씬 더 높았다. 대부분의 제품에는 2달러 안팎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3달러, 5달러가 넘는 제품도 많았다. 욕실·주방 소모품이나 문구류, 과자, 음료, 냉동식품 등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저렴한 제품이어도 대부분 1달러 후반 가격에서 시작됐다.

매장 곳곳에는 '제품 1개당 1.99달러'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쓰인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안내판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가격이 쓰여 있지 않은 경우에만(If price not mark)'이라는 단서가 달렸다. 제품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을 살펴보니 많은 제품에 2~3달러대의 가격표가 붙은 것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었다. 달러숍이 아닌 '2달러숍'에 가까웠다.

지난 6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달러숍에서 소비자가 식료품을 구매하고 있다. 매장 천장에는 '제품 1개당 1.99달러'라는 종이 안내판이 부착돼 있지만,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의 가격은 대부분 1.99달러보다 높았다. 매장 점원인 칸(Khan)은 "지난 2~3년간 원자재, 인건비, 물류비 등 모든 것이 다 오르면서 제품 가격도 여러 차례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지난 6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달러숍. 매장 내부에는 "99센트의 꿈이 있는 곳에서 쇼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매장 점원인 칸(Khan)은 "2000년 초 문을 열 당시에는 달러숍으로 출발했지만, 엄밀히 말해 이제는 달러숍은 아니다"며 "지난 2~3년간 원자재, 인건비, 물류비 등 모든 것이 다 오르면서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격도 여러 차례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격 인상도 지속되고 있다. 이 매장은 미국 인기 음료인 '스네이플' 판매가를 지난주 0.1달러 올렸고, 이번 주 안으로 다시 0.25달러 오른 2달러로 인상할 예정이다. 칸은 "기업이 공급 가격을 올리니 우리도 판매가를 올리는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가격을 올려 팔고 싶은 판매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달러숍의 배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년간 지속된 물가 상승 탓에 달러숍도 제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하는 추세다. 최근 미 경제 전문지 포천에 따르면 대형 달러숍 체인인 '달러 트리'나 '달러 제너럴'은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행위) 방식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해 도마 위에 올랐다. 인플레이션 지표가 둔화하고 있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생활 물가는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경제 현안으로 인플레이션이 꼽히고 있다.

인플레이션 지표 자체는 둔화세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연간 상승률은 2022년 6월 9.1%에서 올해 1월 3.1%까지 하락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역시 인플레이션 추가 둔화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면서도 "지난해 중순 이후 급격히 둔화해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생활 물가로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 둔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미 경제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인의 가처분 소득 중 식비 비중은 11.3%로, 1991년(11.4%) 이후 31년 만에 최대로 나타났다. 지난 몇 년간 식료품과 외식 물가가 급등한 여파다. 물가 상승세는 꺾였지만, 임금 인상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주요 이유다. 여기에 코로나19 기간 축적된 초과 저축도 소진됐다. 미 경제가 견조한 성장률과 강력한 고용 등으로 호황인데도 '바이드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박한 배경에는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인플레이션이라는 점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날 주요 외신과 미시건대 로스경영대학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 1010명 중 80%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지목했다. 조사에 따르면 가계 재정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48%, 미국 경제 여건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응답은 30%로 지난해 11월 조사 때보다 각각 5%포인트, 9%포인트 늘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6%로 지난해 11월과 동일했다. 그의 경제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9%로 같은 기간 2%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2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27만5000건 증가해 시장 예상치(19만8000건)를 넘어서고 1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내려온 것을 감안하면 강력한 경제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슈링크플레이션을 지적하며 기업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뱅크레이트닷컴의 마크 햄릭 선임 경제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5분의 1가량 빼앗았다"며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임금은 오르고 있다는 대통령의 (국정연설) 발언은 맞지만, 인플레이션이 이전만큼 나쁘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에릭 고든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제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많다는 것은 그에겐 나쁜 소식"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나 경제 지표가 유권자들을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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