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형 받아도 3년뒤 돌려받았다…의사 배짱 뒤엔 '방탄 면허'

김준영 2024. 3.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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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면허 취소까지 각오했다.(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한 지난달 6일 의사협회가 총파업 카드를 꺼내며 밝힌 말이다. 정부가 의사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 행정처분인 ‘면허 취소’를 역으로 언급하며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발급 주체인 정부에 면허로 배짱을 부리는 건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종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법조계 관계자)이란 말이 나왔다.

지난달 6일 이필수 당시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부 발표와 관련,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후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이는 중인 의사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는 정부의 호소에 꿈쩍도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불법 집단행동에 대한 기계적 법 적용을 수차례 밝히고 지난 5일부터 전공의들에게 면허 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했음에도 전공의 92.9%(1만1985명)가 여전히 근무지를 이탈한 상태다.(지난 8일 복지부 브리핑 기준)

①방탄=의사들 사이에선 의사 면허는 웬만해선 박탈하기 어렵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통계로도 입증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7년간(2017년~2023년) 면허가 취소된 의사는 231명, 연평균 33명꼴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체 의사 10만명 중 매년 0.03%만 취소되는 셈”이라고 했다.

취소 처분이 적은 건 이유가 있다. 그간 의료법상 의사 면허를 취소하려면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면허 정지 기간 중 의료행위를 하거나, 면허 대여 등을 저지른 경우에만 가능해서다. 애초에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극히 좁다. 231명 취소자 중 226명이 법정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다는 이유로 면허 취소를 당했다. 나머지는 면허 정지 기간 중 의료 행위(1명)를 하거나 면허대여(4명)를 했다는 이유였다.

김경진 기자

면허가 취소된 231명의 의사들의 취소 사유론 이른바 ‘사무장 병원’ 범죄혐의(중복 포함)가 76건으로 가장 많았다. 비(非) 의료인에게 의사 명의를 빌려줘 불법의료기관 개설·운영에 가담한 혐의다. 진료기록부나 진료비 등을 거짓으로 작성한 경우도 59건이었다. 이어 리베이트가 39건,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가 33건, 마약류관리법 위반이 30건이었다.

다만 이 같은 ‘방탄 면허’ 효능은 향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1월 면허 취소 사유를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로 늘리는 개정안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진 살인·성폭력 등 다른 범죄로는 면허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업무개시 명령 위반으로도 징역형이 가능하다”며 “의사도 과거 사례만 떠올려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부활=면허가 취소돼도 패자부활전이 남아있다. 재교부다. 의료법 65조에는 ‘면허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고 대통령령으로 정한 40시간 이상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경우에는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다’고 돼있다. 형법에서도 사라진 표현인 ‘개전의 정’, 쉽게 말해 반성하고 있으면 면허를 다시 준다. 금고 이상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됐더라도 집행을 마쳤으면 취소일로부터 3년 뒤엔 재교부를 신청할 수 있다.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면허를 취득한 경우에만 재교부할 수 없게 돼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중대본 1차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한때 100%에 달했던 재교부율은 2020년 심사 강화로 연간 기준 승인율이 떨어지는 추세긴 하지만, 실제 복지부로부터 신청을 거부당한 의사는 많지 않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년간 면허 취소 의사 231명 중 ‘재교부 신청 거부 처분’을 받은 의사는 32명(14%)에 불과했다. 63명(27%)은 재교부를 받았고 나머지 136명은 재판 또는 형 집행 중이거나 재교부 심사 중이다. 재교부 신청엔 횟수 제한도 없다.

불사조 같던 면허 신화도 타개 대상이다. 최근 정부 관계자는 “재교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만들고 있는 단계”, “향후 면허 취소 시 재취득이 어렵게 심사를 엄격히 할 계획” 등 재교부와 관련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의사 커뮤니티에선 “어차피 구제될 것”이란 말이 아직도 많지만, 정부는 이미 “구제는 없다”는 원칙을 세워놓은 상태다.

③면허는 의사가 관리?=의사들은 아예 의사 면허를 자기들이 관리하겠다고 틈날 때마다 주장 중이다. 대한의사협회는 2021년 “의사 면허의 체계적·효율적 관리를 위해 대한의사면허관리원(가칭)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히곤, 현재까지 이를 요구 중이다. 정부가 면허를 발급하는데도 그 관리는 의사가 하겠다는 주장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국가가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익명을 원한 의료 전문 변호사는 “의사들이 과거 수십년간 쌓아온 불패 신화를 믿고 이번에도 같을 거라 여기는 것 같다”며 “생떼가 아닌 원칙 대 원칙으로만 부딪힐 경우, 과거 양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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