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나라로 돌아가" 차별 딛고…佛제과왕 오른 '충남의 딸'

백종현 2024. 3.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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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식 평가서 '고에미요'가 선정한 '올해의 제과사' 김나래(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의 페이스트리 셰프)씨가 한국을 찾아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미식의 천국, 디저트의 본향으로 통하는 프랑스에서 최고 제과사(페이스트리 셰프) 자리에 오른 한국인 여성이 있다.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의 김나래(35) 셰프다.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 ‘고에미요(Gault&Millau)’는 지난해 연말 시상식에서 ‘2024년 올해의 제과사(La Pâtissière de l’Année 2024)’ 자리에 그를 호명했다. 고에미요 최초의 한국인 수상이자, 1972년 출범 이래 제과 부문에서 외국인 여성이 선정된 것도 처음이었다. ‘고에미요’는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미식 평가서로, 매년 요리사‧제과사‧소믈리에‧홀매니저 부문으로 나눠 한 명씩 수상자를 선정한다.

김나래 셰프가 지난해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에서 선보인 디저트들. 왼쪽 첫번째는 보석 부티크들이 모인 파리 방돔 광장을 테마로 만든 케이크다. 세번째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모티브로 한 부활절 달걀이다. 사진 파크 하얏트

다이아몬드 수십 개를 휘감은 듯한 케이크, 붉은색 초콜릿과 블루베리 등 과일을 루비처럼 이어 붙인 디저트,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케 하는 달걀 요리 등 김나래 셰프가 만드는 디저트 메뉴는 소위 공예품이나 예술 작품에 비유된다. 손대기가 아까울 정도로 솜씨가 정교하다. 고에미요도 “페이스트리와 예술의 능숙한 결합”이라는 평을 내놨다.

충남 당진 출신의 김나래 셰프는 서울‧괌‧베트남의 특급 호텔의 레스토랑을 두루 거쳐, 2018년 프랑스에 둥지를 틀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프랑스 구떼’ 프로모션차 한국을 찾은 그를 중앙일보가 처음 만났다.

Q : 고에미요 ‘올해의 제과사’에 뽑혔다.
A : 언어 문제도 있고, 문화도 달라 프랑스에서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거 같아 기쁨이 더 크다.

Q : 창의적인 발상이 돋보인다는 평이 많다.
A : 일상이나 여행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녹인다. 지난해에는 보석 부티크가 모인 파리 방돔 광장을 테마로 케이크를 만들었다. 부활절 시즌에 내놓은 달걀 디저트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Q :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겠다.
A : 소스 하나 끓이는 데 1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과일 조림도 많이 활용하는데, 과일에 설탕 시럽을 입히고 졸이는 과정을 보통 5일 동안 반복해 만든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요소지만, 그런 정성이 맛의 차이를 만든다.

Q : 요리는 언제 시작했나.
A : 당진에서 자랐다. 중학교 3학년 때 동네에 제빵학원이 생겼는데 그때 호기심에 시작했다. 그때 처음 배운 메뉴가 슈크림 빵이었다. 원래 클라리넷을 전공 했었는데, 음악보다 빵이 더 적성에 맞았다.

Q : 특급호텔의 헤드셰프(제과장) 자리를 놓고 2018년 불쑥 프랑스로 향했다.
A : 어려서부터 디저트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서른을 앞두고 프랑스 행을 결심했다. 주변의 반대도 많았다. “아시아에서 커리어 잘 쌓고 왜 거기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했다.
서울에서도 김나래 셰프의 디저트 메뉴를 맛볼 기회가 생겼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더 라운지’에서 오는 11일부터 4월 21일까지 이어지는 ‘프렌치 구떼’ 프로모션을 통해서다. 김나래 셰프가 개발한 금귤 조림, 꿀벌 화분 아이스크림, 제철 과일 타르트 등을 다양한 프랑스 전통 간식과 함께 내놓는다. 김나래 셰프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프랑스 대표 디저트들로 메뉴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더 라운지‘에서 3월 11일부터 프랑스 전통 간식을 테마로 한 ‘프렌치 구떼‘를 선보인다. 오른쪽은 우유 아이스크림과 과일 조림, 벌 화분을 접목한 디저트. 사진 파크 하얏트 서울

Q : 요리 철학이 있다면.
A : 무엇보다 맛이다. 비주얼은 그다음이다. 타인 취향이나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맛과 색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도 뭐든 쉽고 빠르게만 하려 들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라고 강조한다. 요리는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이 아니다.

Q : 파리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A : 아침 10시에 출근해 자정 무렵 퇴근한다. 메뉴 개발에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고, 마지막 손님이 뜰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 하루 7시간만 일하고 노는 줄 알았는데, 나를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Q :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겪는 설움은 없었는지.
A : 아시아에서 왔고, 피부가 희지 않다는 이유로 주로 ‘시누아(중국인)’ ‘심슨(애니메이션 캐릭터)’이라고 불렸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데믹 때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안 타려고 뒷걸음질한다거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사실 지금도 인종차별에서 아주 자유로운 건 아니다.

Q : 잘 참고 버티는 노하우가 있나.
A : 너희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털어 버린다. 남의 시선보다 내 꿈과 일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니까.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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