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하면 귀신 분노? 다 옛말"…무덤도 자식 따라 수도권 간다 [르포]
지난 9일 오전 7시 장례지도사 박인식 두손장례개발 대표(50)가 삽 두 자루를 들고 경북 봉화 천주교 공동묘지 앞에 섰다. 잠시 뒤 도착한 인력사무소 직원 A씨는 “인력사무소에서 잔디 심는 일이라고 말했다”며 “후환이 있지 않겠냐”고 손사래를 쳤다. 이날 할 작업은 파묘(破墓)로도 불리는 개장(改葬). 무덤을 다시 파는 일이었다. 박 대표는 “동티(귀신을 노하게 해 받는 재앙)는 다 옛날 이야기”라며 “소주 한 잔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이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계속해서 설득하고, 유족들이 기다리자 A씨는 결국 삽자루를 잡았다. 가톨릭 신자였던 망자를 위해 신부와 가족들이 주기도문을 읊었다. A씨와 또 다른 인부가 40분 정도 땅을 파자, 흙 속에서 어두운색의 나무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묘의 주인은 봉화에서 자란 1946년생 고(故) 오장섭씨다. 강원도 태백에서 광부로 일했던 오씨는 진폐증을 앓다가 42세에 사망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아들 재윤(49)씨는 경황없이 묫자리를 찾았다. 훗날 보니 묘터는 계곡 근처였다. 산소가 물에 쓸려내려 갈 뻔하는 등 훼손 위험도 높고, 관리도 어려웠다. 재윤씨는 아버지가 과거 베트남전에 파병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북 영천 호국원에 안장시키는 절차를 밟았다. 재윤씨는 “(묘소) 관리도 국가에서 해주고, 집인 부산과도 더 가까워 아버지를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 호국원으로 이장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장묘업계에 따르면 과거엔 풍수지리나 미신 때문에 이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자녀의 편의에 따라 묘를 옮기는 추세다. 관리하기 수월한 주거지 근처로 이장하려는 자녀들의 수요가 늘면서다. 또 후손들이 묘지보다 납골당을 선호한다는 점도 이장의 주요 이유 중 하나다.
23년째 장묘업을 하는 변재홍씨는 “후손들이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다 보니, 지방의 묘를 수도권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관리가 힘들어서 한 군데로 조상들의 묘를 모으거나 관리하려는 사람이 없어 납골당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파묘’가 흥행하면서 박 대표 역시 지인들로부터 풍수지리와 이장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과장되거나 옛날에나 전해지던 이야기”라고 답했다.
토지 개발 사업을 위해 무연고 묘지를 이장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박 대표는 “경기도 파주에서 땅을 개발해 무연고 무덤 20여 개를 옮겨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도 있다”며 “인력으론 도저히 불가능해 포크레인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땅 주인도 묘지 주인의 허가 없이는 이장할 수 없다. 90일 동안 세 차례 이장 계획을 신문 등에 공고하고, 화장한 유골은 10년간 보관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분묘발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8~2022년 사이 분묘발굴 사건 건수는 총 829건으로 이 중 254건이 검찰로 송치됐다.
파묘와 관련된 법적 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9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류준구 판사는 자녀의 동의 없이 사촌 B씨의 묘를 이장한 C씨에 대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C씨는 문중 공동 묘원에 B씨 조상의 묘가 항렬에 맞지 않게 조성된 점에 불만을 품었고, B씨가 사망하자 문중 구성원 등과 공모해 B씨의 묘를 파고 새로운 위치로 옮겼다.
엉뚱한 묘를 조상의 묘로 착각해 파냈다 법정에 선 사례도 있다. 지난 2017년 D씨는 한 장묘업체에 의뢰해 60년 전에 묻힌 선대의 묘를 파묘했다. 유골은 밭에서 화장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무덤은 D씨의 조상의 것이 아니었고, 2019년 D씨는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40년 이상 장묘업에 종사한 김진태씨는 “산은 지형이 자주 바뀌고 묘비가 없는 무덤도 많아 매년 관리하지 않으면 착각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상재 대한장례인협회 회장은 “묫자리를 두고 가족 간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며 “자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가족 간 합의를 통해 이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 “어디 버릇없이 어르신 보냐” 현실에선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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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요” “개관이요”
영화 ‘파묘’에는 개장과 유골 수습 과정을 알리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 장묘업자들은 뚜렷이 정해진 절차는 없다고 한다. 종교에 따라 개장 직전 조상에게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할 뿐이다. 특히 영화처럼 굿을 하거나 개장 이후 액운을 쫓기 위해 맛소금을 뿌리는 과정도 현실에선 없다. 40년 경력의 김진태 상장풍의례원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묫자리 선정을 두고 풍수사와 무속인 사이에서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며 “최근엔 개장하기 위해 굿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염을 하는 역할인 고영근(배우 유해진)이 묫자리를 내다보는 유족에게 “어디 버릇없게 누워있는 어르신을 보려 하냐”고 호통치는 장면 역시 현실과는 다르다. 유족들이 원한다면 유골 수습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박 대표도 개장 작업 전 유족에게 유골을 확인할지 묻는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고(故) 오장섭씨의 파묘 현장에서도 동생 오의섭(68)씨는 허벅지 뼈가 유골함에 담기는 모습을 보며 “우리 형 키가 170cm도 넘어 뼈도 엄청 크다”며 “힘도 장사여서 마을 객토 작업을 도맡았다”고 회상했다. 유골 확인 작업은 수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하고 유족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진행하기도 한다.
파묘에서 등장하는 유골은 대부분 온전했지만, 실제 개관을 하면 온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육탈(시체가 썩어 뼈만 남음)이 되지 않거나, 관에 물이 가득 차 찰랑거리기도 한다. 장묘업자 박상현(55)씨는 “지난 1일에도 경기 여주에서 육탈되지 않은 시신과 물에 찬 관을 봤다”며 “가족이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상태만 알려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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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규·이영근·이아미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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