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구역’ ‘고명 프로젝트’… 결핍 안고 사는 이웃에 집중
박병주(50·서울 송학대교회) 목사는 ‘결핍’과 ‘아픔’이 목회 자양분이 됐다. 그의 이런 배경은 70년 역사를 지닌 송학대교회에 2017년 부임했을 때 지역사회를 품는 동력이 됐다.
그는 기흉으로 생사 고비에 놓였던 고교 시절 모교회인 서울 광성교회(남광현 목사) 찬양 집회에 참석한 뒤 병이 낫는 기적을 경험했다. 목사가 된 뒤에는 형언하기 힘든 고통에 빠지기도 했다. 안산제일교회(허요환 목사) 부목사 때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교회학교 학생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교육 총괄이던 박 목사는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면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깊은 바다에서 건져진 제자들을 기다렸고 저녁엔 다시 상경해 업무를 이어갔다. 교회학교 학생의 시신을 모두 수습할 때까지 400㎞가 넘는 거리를 하루도 쉬지 않고 오갔다.
지난 5일 서울 동작구의 교회에서 만난 박 목사는 “너무 아픈 일이었고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건강의 결핍과 사역 중 겪은 아픔의 의미를 함께 돌아보면서 사역 방향을 고민했다”면서 “송학대교회에 부임한 뒤 자연스럽게 교회 주변 이웃의 아픈 일상을 살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상처받은 이들의 삶이 내 속으로 들어왔고 결핍을 안고 사는 약자를 위한 사역에 집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40대 초반에 부임한 박 목사는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지역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교회는 마치 약자들의 일상을 돌보는 등대 같았다.
박 목사는 옆 동네인 관악구의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사역부터 관심을 가졌다. 현재 청·장년 교인들이 격주로 봉사도 가며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영아들의 건강 검진과 함께 보육원 위탁과정까지 도움의 손길을 보탠다.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성로원’은 보육원이다. 47명의 아이가 머물고 있는 이곳도 교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교인들이 문턱을 넘기 전까지 성로원은 한동안 도움의 손길이 끊어졌다고 한다. 첫 방문 이후 꾸준히 아이들을 찾는 교인들은 매달 이들의 자립 기금도 모으고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씨앗 통장’에 십시일반 기금을 보내는 교인이 200명에 달한다.
‘겨자씨 구역’은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신설됐다. ‘방배동 모자 사건’이 사역의 동인이었다. 2020년 발생한 어머니의 죽음과 이를 인지하지 못한 발달장애인 아들, 이후 거리를 방황하던 아들을 발견하고 공론화한 사회복지사와 경찰의 헌신까지. 교회는 그 모든 과정에 있었다.
박 목사는 “당시 사회복지사와 경찰이 교인이어서 어머니 장례도 교회가 치렀다”면서 “이 일 뒤에 겨자씨 구역을 만들고 노숙인들에게 밥과 반찬을 배달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교회는 교회 근처에 집을 마련해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쉼터도 제공하고 있다.
‘고명 프로젝트’는 고시생 맞춤 봉사다. ‘고시원생을 위한 명품 도시락’의 줄임말인 고명 도시락은 교회 인근 노량진에 있는 고시생 100여명에게 추석과 설이 되면 직접 만든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다.
한부모가정 지원을 위해선 구청마다 조직된 ‘드림스타트’와 협력한다. 한부모가정 지원을 위한 드림스타트를 통해 4가정을 추천받아 의료비와 교육비, 학원비를 지원한다. 해마다 6월은 ‘녹색 선교’의 달이다. 이때는 설교도 기후환경보전에 맞추고 교인들은 쓰레기를 줍는 활동인 ‘줍깅’과 플라스틱 모으기에 나선다.
이 모든 일이 7년 사이에 시작됐다. 목회자가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고 있더라도 교인들과 함께 하는 데까지는 작지 않은 난관이 있다. 장로들이 참여하는 당회 벽도 넘어야 한다.
박 목사는 ‘시리즈 설교’로 교인들과 동행의 길을 열었다. 그는 “새로운 사역을 하기 전 성경에서 사역과 어울리는 본문을 찾아 시리즈로 설교하며 취지를 설명했다”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사명 중 하나라는 메시지에 교인들도 흔쾌히 호응해 주셨다”고 말했다. 제자훈련도 한몫했다. 부임하자마자 16명의 장로들부터 시작해 교인들과 복음의 진수를 나누며 제자로 키우고 있다.
교회의 역동적인 변화는 새 신자 등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가 어려운 분들 돕는 걸 보고 왔다’거나 ‘동네 청소하는 교회라고 해서 등록한다’는 새 신자들의 얘기가 줄을 잇는다고 했다.
재개발이 한창인 교회 주변은 2032년이 되면 입주가 마무리된다. 교회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변화를 꿈꾸고 있다. ‘하늘로부터 사명을 깨닫는 나이’ 지천명(50세)에 들어선 박 목사는 목회의 방향성을 잡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티브 도너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 지도 대신 나침반을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지역에 아무리 새 아파트가 들어오더라도 미래 목회는 마치 사막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도 나침반이 중요합니다. 바로 말씀을 따르는 것이죠. 젊은 목회를 지향하면서 말씀 따라 교인과 동행하는 게 새로운 순례의 여정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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