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참주의 실상
지난주 15개 주 경선 ‘수퍼 화요일’을 하루 앞두고 미국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승인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압승을 거둔 트럼프는 올해 11월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4년 만에 맞붙는다. 수많은 미국인이 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무기력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양 민주주의 국가의 전형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고대시대 과두제에 못지않은 편협한 정치적 판도가 펼쳐지고 있다. 루스벨트나 케네디 같은 역사적인 가문들은 늘 존재했다지만 최근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나 클린턴 내외, 공화당 후보로 다시 뽑힌 트럼프 등을 보면 미국 ‘지배층’도 뻔한 서클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그러나 BC 507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이전에는 독재 체제 폴리스였다. BC 7세기에서 6세기로 접어들면서 귀족정 체제에서 벗어나 참주정 독재 체제의 길을 갔다. ‘참주(tyrannos)’라는 용어의 원래 뜻은 위헌적으로 정권을 잡거나 그러한 자리를 물려받은 시민을 일컫는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BC 6세기 중반 쿠데타로 참주가 된 페이시스트라토스다. 그는 평등주의적 정책으로 빈곤층의 지지를 샀고, 귀족들의 파벌 싸움으로 혼란한 아테네를 BC 561년 단숨에 장악했다. 5년 뒤 파벌들이 힘을 합쳐 그를 몰아냈지만, 파벌들 사이의 동맹이 깨지면서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다시 돌아올 기회가 생긴다. 이때 민심을 다시 사기 위해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짜낸 꾀가 유명하다. 키가 6척이나 되는 ‘푸에’라는 여인을 동원해 아테나 여신처럼 차려입히고 함께 마차를 타고 아크로폴리스로 갔다고 한다. 아테나 여신이 페이시스트라토스를 손수 데리고 온다는 소문을 미리 퍼뜨려 놓은 터라 아테네 시민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왠지 현재 미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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