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 어디까지 허용? “중국은 4촌 금혼” “인륜 무너져”
‘근친혼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란 논란이 법조계에서 뜨겁다. 지난 2022년 헌법재판소의 ‘8촌 이내 혼인무효’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올 연말까지 개정안을 입법해야 해서다. 기름을 끼얹은 건 개정안을 논의 중인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근친혼 금지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받아본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헌재의 결정은 2017년 소아과 의사 A씨가 6촌 여동생 B씨에게 제기한 혼인무효소송이 발단이 됐다. 두 사람은 6촌 사이(A씨의 조모와 B씨의 조부가 남매)인 걸 알면서도 미국에서 6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2016년 대전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가 변심해 “어차피 6촌 결혼은 원천 무효”라며 B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A씨 손을 들어주자, B씨는 2018년 민법의 8촌 이내 금혼 및 혼인무효 조항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22년 10월 헌재는 8촌 이내 혼인을 금한 민법 809조 1항은 합헌으로 결정했지만,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정한 2항은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8촌 이내 결혼 금지는 옳지만, 이미 한 결혼을 없었던 것으로 치는 건 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재판관 4명은 8촌 이내 혼인을 금한 것 자체도 헌법과 맞지 않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1년 뒤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에서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로 인한 친족 관념 변화와 대부분의 국가가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만 근친혼을 금지하는 추세에 맞춰 5촌부터 결혼 가능하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태국 등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만 결혼을 금한다. 프랑스·영국·미국 등은 숙질까지, 일본·중국은 3~4촌까지다. 현 교수는 5촌 이상부터는 유전적 질환 발병의 직접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도 들었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얼마나 많은 ‘합법 커플’이 탄생할지는 미지수다. “근친혼은 당사자들이 침묵하는 데다,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다.
가족관계등록부로 확인되는 촌수는 부모·자녀 등 3대까지다. 8촌 여부를 알려면 부모·조부모·증조부·고조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뗀 뒤, 세대별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8촌 이내 금혼 조항은 개인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전제된 것”이라며 “앞으로의 다문화 사회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전국 유림은 “5촌 사이 혼인이 벌어지다 보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된다”며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반발했다.
김기세 성균관 총무처장은 “한민족의 가족 문화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이유는 족보 질서에 기반한 혈연관계 덕”이라며 “우수한 전통은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은 대한노인회와 함께 집단행동도 고심 중이다.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장’인 윤진수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아직 가족법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위원회는) 8촌→4촌 축소안, 8촌→6촌 미세조정안 등등을 모두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민·윤지원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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