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도박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도박중독자였다. 그는 도박 비용을 마련하거나 갚기 위해 여러 작품을 썼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노름꾼’이다. 즉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그는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출판사와 원고 계약을 하고, 원고료는 선불로 받아 도박으로 탕진했다. 그러다 보니 도박빚과 글빚이 쌓였고, 더구나 선불에 눈이 멀어 체결한 잘못된 계약으로 저작권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랴부랴 27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 ‘노름꾼’이다. 당시 그는 기한을 단축하기 위해 속기사까지 고용하면서 글을 써야만 했다. 이때 고용한 20대 초반의 속기사가 바로 나중에 부인이 되는 안나였고, 나이 차이는 무려 25살이나 되었다.
안나가 어떻게든 도박 비용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했음에도, 도스토옙스키는 심지어 안나의 목걸이, 귀걸이, 폐물까지 팔아 도박으로 탕진했다. 또한 돈이 떨어지면 글을 써서 마련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세계적인 명작이라 일컬어지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죄와 벌’조차도 그런 의미에서는 도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 안나가 쓴 글에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도박은 지금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병이다, 내가 우리 남편 병을 고쳐주겠다.’ 도박에 한 번 빠지면 끊기 어렵다는 것을 안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안나의 바람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말년에 속을 차렸기 때문이다. 그가 도박으로 탕진하는 동안 안나와 어린 아들이 두 달 동안 굶었다.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안나에게 모든 경제권을 넘겼다. 안나는 출판사를 차려 돈을 벌었고, 결국 2층집까지 마련하였다. 이 집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이 소설을 쓴 후 한 달 만에 그는 죽었다.
왜소한 체격의 20대 초반 청년이 수의를 입고 앉아있다. 이 청년은 인터넷 도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향정신성의약품을 판매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인터넷 도박에 빠졌다. 처음에는 용돈으로 게임하듯 인터넷 도박을 했다. 그러나 점차 대담해져 부모님 돈을 몰래 훔쳐 탕진하다가 결국 향정신성의약품을 판매해서 도박 비용을 마련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는 형사재판을 받았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며 다시는 도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이 인정되어 집행유예의 선처를 받고 구속된 지 5개월 만에 풀려났다. 그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도박중독치유센터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구속되었다. 인터넷 도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향정신성의약품 판매 광고를 올렸는데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린 것이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된 현재도 인터넷 도박을 할 당시의 희열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이 희열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도박중독도 사라지긴 힘들 것이다.
‘노름꾼’에는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눈앞에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종국에는 그 가능성을 붙잡지 못하고 가진 돈을 다 잃을지언정, 어쩌다 한 판 이길 때의 희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흔히 도박은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가능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한 번 빠지면 이 가능성을 완전히 놓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헤어날 수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접근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청년의 사례처럼 인터넷 게임하듯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도박중독에 대한 범사회적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 그나저나 도스토옙스키는 그나마 말년에 도박중독에서 벗어났다는데, 청년은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나마 그의 해피엔딩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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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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