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대중영화 됐다"…16일 만에 '파묘'에 벌어진 일
오컬트 첫 천만할까…2월 개봉 최초
오컬트 영화 최초 천만 흥행작이 탄생할까. 지난달 22일 개봉한 ‘파묘’가 개봉 18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687만 관객의 ‘곡성’(2016)을 제치고 역대 오컬트 흥행 1위에 올랐다.
10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파묘’ 누적 관객 수는 8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천만 영화 ‘범죄도시2’, ‘서울의 봄’보다 흥행 속도가 빠르다. 퇴마‧사후세계‧악령 등 신비주의‧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B급 장르를 풍수지리‧MZ무당‧식민 잔재 등 한국 현실과 엮어 대중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묘’ 기획‧각본‧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2014), ‘사바하’(2019) 등 오컬트 영화만 만들어왔다. ‘파묘’는 오컬트에 일제강점기 역사를 맞물렸다. 묫바람(묫자리에 탈이 나 후손에 해가 가는 것)이 난 미국 LA의 한인 갑부의 의뢰로 강원도 산골의 묘를 이장하려던 풍수사(최민식)‧장의사(유해진)‧무당(김고은‧이도현) 등이 묫자리에서 나온 ‘험한 것’과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감독 "매니어 영화 만들었는데 대중적 흥행"
“마니아만 보는 장르 영화를 만들었는데 실수로 대중영화가 된 듯 하다.”
'파묘'의 한 관계자가 전한 장 감독의 말이다. '파묘'가 영화계 예측대로 천만 관객 이상을 모을 경우, 2월 개봉작 중 최초의 천만 영화가 된다. 설 연휴가 낀 2016년 2월 개봉한 ‘검사외전’(970만명)이 2월에 개봉한 최고 흥행작이다. '파묘'는 지난해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에 이은 극장 비수기 흥행작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파묘’의 투자‧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오컬트 장르가 젊은 관객층에 어필할 것으로 보고 10‧20대가 극장을 많이 찾는 겨울방학 말미로 개봉 시기를 정했다"면서 "소재 때문인지 예상보다 폭넓은 관객층이 반응해주는 것이 흥행의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파묘’는 미스터리 공포이자, 일제강점기 소재의 ‘삼일절 영화’다. 이 영화의 흥행은 타깃 관객층이 충실히 극장을 찾은 결과”라면서 “코로나19 이후 반으로 줄어든 연간 관객 1억명 시장에선 (타깃층이) 확실한 영화가 흥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관람평 "공포 컨셉 방 탈출" "신박한 소재 섬세한 연기"
9일 예매 앱 관람평에선 “뜬금없는 9척 귀신이 스토리의 허리를 끊었다”는 불만도 있지만, “공포 컨셉트 방 탈출 카페에 다녀온 느낌” “2번 보니 지나쳤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신박한 소재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등 몰입했다는 반응이 많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의 연령별 예매 관객은 30대(31%), 20대(26%), 40대(21%), 50대 이상(16%), 10대(6%) 순서였다.
SNS에선 ‘파묘’ 패러디가 놀이처럼 유행한다. ‘파+고양이(猫‧묘)’ 인증샷부터 극중 무당 역 김고은‧이도현의 불교 경문 문신 따라 하기, 손수 그린 팬 아트가 잇따른다. 한반도 모양의 하늘이 나오는 특별 포스터는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팬 아트에서 따왔다.
1970년대 '엑소시스트' 붐, 한국형 오컬트로 부활
오컬트 장르가 영화‧드라마로 꾸준히 소비돼온 것도 관객층 확장에 한 몫 했다. 미국 공포영화 ‘엑소시스트’ ‘오멘’ 시리즈, 오컬트 공포를 부활시킨 제임스 완 사단의 ‘컨저링’ 시리즈로 공포·오컬트 장르에 재미를 붙인 관객들은 ‘검은 사제들’ ‘천박사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 한국판 오컬트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포영화는 독립‧예술영화 흥행 10위권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장르였다.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tvN ‘방법’(2020)과 티빙 오리지널 ‘괴이’(2022), 김은희 작가·김태리 주연 SBS ‘악귀’(2023) 등 오컬트 드라마도 주목 받았다.
‘검은 사제들’의 속편 격 영화 ‘검은 수녀들’을 제작 중인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는 "오컬트가 여전히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장재현 감독이 한국 현실에 맞춰 이야기를 만드는 데 탁월하다"며 "'파묘'도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점을 가져와 대중적 재미를 배가했다"고 말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구마 의식을 정확히 보여준 ‘검은 사제들’이야말로 한국 오컬트의 시초라 할 수 있다"며 “‘사바하’ ‘파묘’ 모두 익숙한 재미를 새로운 소재와 섞어낸 장르적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감독, 일본 귀신 공부, 장례지도사 자격증까지
‘파묘’는 지난달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이어 오는 28일 개막하는 홍콩 국제영화제 갈라 부문에 초청됐다. 인도네시아에선 8일 누적 71만 관객을 동원했다. ‘기생충’을 제치고 역대 현지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MZ 무한경쟁 공포, 좀비·오컬트로 재현해 공감"
오컬트 신작도 뒤따른다. 박신양이 죽은 딸의 심장에 깃든 악령과 사투하는 ‘사흘’, 마동석의 오컬트 액션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JYJ 출신 김재중 주연의 영화 ‘신사’ 등이다.
공포·오컬트물이 각광받는 배경을, 현실의 무한경쟁 공포에서 찾는 시선도 나온다. 현실을 닮은 지옥을 펼쳐낸다는 얘기다. 영화평론가 강성률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좀비 영화든 오컬트든, 뭔가가 끊임없이 나를 따라오고 잡히면 끝장난다. 취업난, 비정규직 등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 심리를 메타포적으로 재현한 것”이라면서 “‘파묘’는 해피엔딩이란 점에서 독특한데,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새로운 흥행 경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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