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390만년 전 인류 탄생…전쟁의 역사는 고작 6000년

박병희 2024. 3. 10. 14: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390만년 전에 출현했다. 인류는 380만년이 넘도록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살았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으로 먹고살던 선사 시대 사람들이 식량을 찾는 데 투입한 시간이 1주일에 고작 12~20시간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2~3시간에 불과했던 셈이다.

하지만 기원전 4000년께, 즉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인류는 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전쟁의 기록이나 다름없다. 국경분쟁, 노예나 제물로 바칠 희생자들을 획득하기 위한 습격, 제국의 영광을 높이거나 새로운 영토를 얻기 위한 전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자아 폭발(원제: Ego Explosion)'의 글쓴이 스티브 테일러는 평화롭던 인류의 역사가 왜 무시무시한 폭력과 억압에 친숙해졌는지, 왜 인간은 충돌하고 지배하고 억압하려는 원초적 욕구를 가지게 됐는지 따져본다. 그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께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극적인 기후 변화 탓에 인간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로 생존이 위협받으면서 인간은 '개인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글쓴이는 이를 '자아폭발'이라고 명명한다. 인류가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쟁, 남성 지배, 사회적 불평등이 나타났고 인류가 집단 정신병을 앓는 '타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테일러는 영국의 리즈 베켓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친다.

역사가 기록된 이후 인류 사회에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전쟁, 가부장제, 사회적 불평등이 바로 그것이다.(17쪽, 인류는 무엇이 잘못됐나)

기원전 4000년경 전쟁이 시작된 후 인류는 전쟁하지 않고 지내온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이 행성 표면의 대부분을 끊임없이 전쟁터로 만들었다. 19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은 평균 2년에 한 차례씩 전쟁을 벌였으며, 1740~1897년 사이 유럽에서는 230번의 전쟁과 혁명이 발생했다. 각 국가는 군사비 지출로 파산에 이르기도 했으며, 18세기 말 프랑스 정부는 예산의 3분의 2를, 프로이센은 90%를 육군에 투입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전쟁이 줄긴 했지만,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전쟁을 금방 끝낼 수 있게 된 덕이다. 실제로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급격히 증가했다. 1740~1897년 사이에 발생한 전쟁에서 약 3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반면,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약 150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약 5000만명이 사망했다.(20~21쪽, 인류는 무엇이 잘못됐나)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에 걸쳐 인류학 연구가 진행됐지만 기원전 8000년까지인 수렵채집인 사회 전체에서는 전쟁의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1999년 세계의 각기 다른 세 곳에서 고고학적 발굴을 했지만 후기 구석기시대, 즉 기원전 4만 년에서 기원전 1만 년에 걸쳐서 전쟁의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 고고학자들은 300개가 넘는 동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이래의 미술 화랑들을 발견했지만 전쟁이나 무기, 전사의 모습이 묘사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러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고고학자 W. J. 페리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는 역사상 수렵채집 단계가 가장 완벽한 평화 상태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40~41쪽, 타락 이전 시대)

기원전 4000년경 이러한 전쟁, 사회적 억압, 남성 지배 같은 사회적 폭력이 고질화되었다. 앞에서도 주장했지만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 원인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임스 드메오의 말대로 기원전 4000년경 "빙하시대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ㆍ기후 변화가 발생했다. 드메오는 방대한 연구자료들을 종합해 "건조화로 인해 사하라시아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사하라시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건조한 땅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지대다. 이곳에는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중동의 아라비아와 이란 사막 같은 사막들이 많이 있다. 사막들 사이에는 실제로 사막은 아니지만 극히 건조한 지역들도 있다. 오늘날 사하라시아에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으며, 비도 거의 내리지 않고, 강이나 호수도 거의 없고, 동물들도 거의 살지 않고, 대부분의 지역에는 사람도 살지 않는다. 그러나 기원전 4000년경까지 사하라시아는 삼림에 가까운 초원이었으며, 호수와 강, 인간과 동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드메오는 "기원전 4000년에는 강우량이 훨씬 더 많았으며, 지금은 말라버린 사하라시아 일부 분지들이 당시에는 수십, 수백 미터 깊이의 물로 차 있었으며, 계곡과 와디에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기원전 4000년 이전까지 사하라시아가 비옥했던 것은 아마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 빙하가 녹아내려 해수면이 상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빙하는 다 녹고 사라져 더 이상 수분도 남지 않았다. 해수면은 내려갔고, 근동과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마르기 시작했다. 강우량도 감소했고, 강과 호수의 물은 증발했으며, 식물은 사라지고, 기근과 가뭄이 심해졌다. 농업은 불가능했고, 사냥을 나가도 짐승을 잡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동물들과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대거 탈출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지역이 비옥했을 때 살던 사람들은, 기원전 4000년 이전에 지구에 살던 다른 모든 사람처럼 평화롭고, 가부장적이지 않고, 평등했으며, 성과 육체에 대해 건강하고 개방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건조화라는 환경 변화로 생활방식은 물론이고, 인간의 정신에 엄청나게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드메오는 이를 두고, "환경 변화로 인해 사람들은 모성선호에서 부성선호로 바뀌었다"고 했다.(54~55쪽, 타락의 시작, 폭력과 광기의 시대)

자아폭발이 만들어낸 새로운 종류의 정신에는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중략) 험한 환경에 대응해 우리 선조들이 발전시킨 스스로 생각하는 새로운 능력은 선조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발명·창조성·합리성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선사했다. (중략) 자아폭발과 함께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고, 개념화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은 인류에게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재능을 선사했다. 부분적으로는 이것이 이집트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왜냐하면 지배자들과 정부들이 이제는 그들의 권위를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하고, 이질적인 집단들을 동일한 행정 체계 아래에 통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153~154쪽, 새로운 정신의 출현)

타락은 우리에게 다른 이득도 주었다. 자아폭발이 없었다면 플라톤이나 칸트 같은 철학자나 프로이트나 융 같은 심리학자도 없었을 것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통찰력은 우리가 외부의 현상세계에 집중할 때보다는 내면에 주의를 집중하고, 자신의 정신과 곤경을 살펴보기 위해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을 사용할 때 나타난다. (중략) 타락의 시대에는 어떤 면에서는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훨씬 더 많이 필요했으리라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터무니없고 혼란스러운 인간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 철학자들이 필요했고, 깊이 분열된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려 노력하는 데 심리학자들이 필요했다.(158~159쪽, 새로운 정신의 출현)

전쟁을 화학적 용어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우리는 흔히 전쟁과 가부장제를 초래한 남성의 공격성이 남성의 체내에 있는 다량의 테스토스테론의 결과라는 설명을 듣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매일 5100마이크로그램의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한다. 반면 여성의 하루 분비량은 100마이크로램이다. 이는 마음속으로 모든 남성들은 싸우고, 섹스하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바이킹족이라는 의미다. (중략) 그러나 전쟁을 설명하려는 화학적ㆍ진화심리학적 시도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동물과 인간이 이러한 주장처럼 호전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만약 인간이 유전적ㆍ화학적으로 공격적이고 전쟁을 벌이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왜 6000년 전의 인류사에는 전쟁이 거의 없었는가? 아마도 당신은 타락 이전의 인류는 그 후의 인류보다 더 낮은 수치의 테스토스테론(혹은 높은 수치의 세로토닌)을 지녔다거나, 아니면 그들의 유전자가 그리 이기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두 주장 모두 가능성이 희박하다.(199~201, 사회적 혼돈의 기원 1 - 전쟁)

자아폭발 | 스티브 테일러 지음 | 우태영 옮김 | 서스테인 | 424쪽 | 2만2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