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차이' 부부를 이해하고 싶었던 이 배우의 선택

장혜령 2024. 3. 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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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메이 디셈버>

[장혜령 기자]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판씨네마㈜
   
'메이 디셈버' 뜻을 직역하면 5월(봄)과 12월(겨울)이란 뜻처럼 먼 사이, 나이 차이가 큰 커플을 뜻하는 영어 관용어다. 1990년대 타블로이드지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3살 차이의 커플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으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필름으로 촬영한 아름다운 풍경은 촬영감독 <퍼스트 카우>의 크리스토퍼 블로벨트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특유의 레트로 감성과 크리스토퍼 블로벨트 촬영감독의 노스탤지어 분위기가 만나 아련함을 더한다. 반대로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음악도 긴장감을 더한다. <사랑의 메신저>(1971)에 사용된 음악을 편곡해 세 사람의 관계와 주제를 함축하는 데 성공했다.

<세이프>(1995), <파 프롬 헤븐>(2002), <아임 낫 데어>(2007), <원더스트럭>(2017) 이후 다섯 번째 호흡을 맞춘 뮤즈 줄리안 무어와 새롭게 합류한 나탈리 포트만의 양보 없는 연기 대결이 압권이다. 그 사이를 서성이는 한국계 배우 찰스 멜튼의 존재감이 더해지자, 욕망의 트라이앵글이 완벽하게 구현된다.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을 만난 영화배우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판씨네마㈜
 
아르바이트하러 온 13살의 한국계 미국인 조(찰스 멜튼)와 사랑에 빠진 36살의 평범한 주부 그레이시(줄리안 무어). 두 사람은 부적절한 관계로 사회적 비난과 동시에 법정 실형을 선고받는다.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리는 사랑이라며 그들은 감옥 안에서 첫째 아너를 낳는다. 이후 둘은 조지아주의 평화로운 섬 서배너에 정착해 쌍둥이 찰리와 메리까지 낳으며 안정된 가정을 꾸린다. 세월이 약인 걸까. 20년 넘게 흐르자 전남편 톰과 아들 조지의 가족과도 서슴 없이 안부를 묻고 답하는 사이가 되었다.

완벽히 세팅된 가정이란 유리성에 살고 있는 여왕이 바로 그레이시다. 더러운 스캔들을 절대적인 사랑의 신화로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지금은 졸업을 앞둔 쌍둥이까지 키운 어엿한 부모가 되었다. 불륜이란 꼬리표가 여전히 따라다니지만 보란 듯이 선택의 결과를 온몸으로 증명하려 한다. 본인을 연기하겠다는 배우가 찾아와 들쑤셔놔도 기세에 눌리기는커녕 오히려 눌러 버리는 대담함과 카리스마도 갖추었다.

조의 내면은 13살 소년에서 멈추어 버렸다. 몸만 자란 36살의 아빠보다 세 자녀가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가족 안에서 혼자만 겉돈다. 유일한 취미인 나비 유충을 정성스레 키우며 SNS 친구와 일상을 주고받는 게 전부다. 요즘 들어 더욱 고립, 상실감이 커진다. 이런 게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인 걸까. 유독 복잡한 감정이 차오른다. 주변은 트여 있지만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는 섬처럼 고립된 마음이다.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판씨네마㈜
 
그러던 어느 날, 외면했던 그날의 진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발단은 TV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먼)가 찾아오면서부터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목한 가족처럼 보였지만 어딘지 삐걱거리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번 작품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하려는 욕심에 차 있었다. 몇 주 동안 기묘한 가족 곁에 머물며 전 남편, 아들, 친구, 변호사, 펫숍 주인 등을 만나며 캐릭터 빌드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면 팔수록 빠져드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간다. 제3자로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싶지만 매력적이고 위선적인 그레이시와 가까워지며 흔들린다.

진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 영화의 크랭크인이 본격화된다. 그토록 바랐던 연기 본질에 가까워지며 자신을 던져 버리는 메소드 연기에 가까워진다.

본인 선택의 책임과 결과에 대해..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판씨네마㈜
 
영화는 가족 안으로 들어온 엘리자베스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타인의 눈에 비친 이미지에 갇혀 버린 세 인생을 다룬다. 관계의 심연을 들추어 내 각자의 정체성을 찾는데 몰두한다. 내 안의 진짜 나를 들여다보길 두려워하는 인간을 탐구하고 있다. 여성의 진솔한 내면, 성공하고 싶은 야망을 주목한다. 진실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인간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 배우인 나탈리 포트먼이 극 중 배우를 연기하며 실존 인물을 묘사해야 하는 극한 설정이 포인트다. 도덕과 윤리가 모호한 인물을 연기하는 어려움이 성공으로 가는 척도임을 아는 욕망에 찬 인물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배우가 연기하는 배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뒤섞이며 누가 실존 인물이고 배우인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판씨네마㈜
 
복잡한 심리 묘사는 실존 인물을 연기했던 <재키>나 내면의 수렁 속으로 빠진 <블랙 스완>을 연기했던 나탈리 포트만이 맡았다. 둘의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억누를 수 없는 영감이 폭발한다. 둘이 사랑을 나누던 펫숍 창고에서 흥분했던 능청스러운 연기, 그레이시가 조에게 준 편지를 읽고 난 후 거울 앞에선 독백 연기로 정점을 찍는다.

그레이시는 연약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위태로운 부부의 세계를 만든 장본인이다. 사랑이라는 무기로 24년 동안 가스라이팅 해 원하는 인생을 얻은 전략가다. 사냥을 나서는 장면은 그레이시 본연의 모습이자 상위 포식자 기질을 짐작하도록 한다. 어엿한 가장처럼 보이는 조를 능수능란하게 조련하다. 조가 자기 곁을 떠날 수 없도록 단단한 족쇄를 채우는 인물을 줄리안 무어 역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토트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에서도 불륜에 빠진 기혼 여성을 연기한 바 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36살에 13살과 관계 맺은 그레이시의 나이가 된 조와 엘리자베스는 공교롭게 동갑이다. 36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각성한 아픈 성장이 성충이 된 나비와 교차된다. 그 질문의 답은 자녀들의 졸업식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조의 모습으로 얻을 수 있다. 과연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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