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갈퀴로 긁어 모았지..." 이영자도 극찬한 휴게소의 숨은 이야기
[월간 옥이네]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허기와 지루함을 달래고, 졸음을 떠나보내는 장소. 장기간 운전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자, 활력을 주는 곳.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다.
충북 옥천에도 이러한 고속도로 휴게소가 세 군데 있으니 바로 금강, 옥천(부산방향/서울방향), 옥천만남의광장 휴게소다. 옥천허브(HUB)가 있는 교통의 요지답게 휴게소의 규모도 크고, 일부 휴게소는 그 자체로 여행지와 같은 역할을 할 만큼 주변 경관도 뛰어나다.
그중 가장 먼저 생겨난 휴게소는 바로 금강휴게소. 1971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그 속에 숨은 이야기도 많다.
▲ 금강휴게소 외부 |
ⓒ 월간 옥이네 |
금강유원지를 옆에 둔 금강휴게소. 경부 고속도로 양방향에서 출입할 수 있고, 빼어난 금강 풍광과 그 아름다움을 더욱 눈에 띄게 하는 건축물까지 갖춘 곳이다. 1971년 7월 개설, 2002년 개축공사 후 2003년 다시 문을 열고 운영 중인 금강휴게소는 한국 건축문화대상 우수상(2004), 충청북도 건축대상 금상(2004), 아름다운 화장실 최우수상(2004), 한국건축가협회상(2005) 등을 수상하며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2012년에는 운전자들이 꼽은 '여행지보다 더 매력적인 고속도로 휴게소'(내비게이션 제조업체 '파인디지털' 운전자 1천여 명 대상 설문 조사 진행, 71%로 1위)로 꼽히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방송인 이영자가 이곳에 방문해 향토음식인 도리뱅뱅이를 먹고 장소와 음식을 극찬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차가 가능한 양방향 고속도로 휴게소는 금강휴게소를 포함해 단 4곳(서울만남의광장휴게소, 행담도휴게소, 마장프리미엄휴게소)뿐. 전국 200여 곳의 휴게소 대부분이 한국도로공사가 공간을 건설한 뒤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인 데 비해, 금강휴게소는 건립 초기부터 현대그룹 계열사이자 현 현대백화점그룹의 모체인 ㈜금강개발산업이 건설·운영하다가 2002년부터 ㈜금강휴게소가 운영권을 매각해 운영 중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인근 금강유원지를 활용해 여름이면 수상스포츠(수상스키, 오리배, 바나나보트, 땅콩보트, 모터보트)를 즐길 수 있고, 2층 전문식당가에서는 도리뱅뱅이, 생선국수와 같은 옥천 향토음식도 판매한다. 자연 친화적 건축 방식에, 금강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창을 활용한 것 역시 눈에 띄는 점.
차량 500대, 1일 평균 6천 대가량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주차 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사랑의 그네, 사랑의 자물쇠 등 소중한 이들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은 여행지로서 금강휴게소가 갖춘 또 하나의 매력이다.
경부고속도로와 금강휴게소
금강휴게소가 자리하기 직전, 본래 이곳에는 현대건설 직원 숙소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1968년 2월부터 1970년까지 2년 5개월간 있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였다. 현대건설이 충북 청원군 옥산면 몽단이에서 대전을 거쳐 옥천군 청성면까지 이어지는 대전공구(총연장 74km)를 담당, 토목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 구간은 하천이 많고 추풍령 산악지형이 험준해서 여러 곳에 육교와 터널을 만들어야 해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중 공사가 가장 어려운 곳으로 손꼽힌다. 평균 1.6km마다 터널을 뚫거나 다리를 세워야 할 정도였던 것. 종일 수백 명이 노력해도 불과 30cm밖에 뚫지 못해 작업자들이 공사를 포기하고 달아날 정도였다고.
대전시 동구 가양동 대전 육교와 옥천 당재터널(현 옥천터널)이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움이 컸다. 당재터널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전국에서 가장 긴 터널(585m)로 13번의 낙반 사고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1970년 6월 27일 이 터널 공사를 끝으로 같은 해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지만, 여기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과정에서 77인의 순직자가 발생한 것이다.
세상에 금옥보다 더 귀한 것은 인간이 가진 피와 땀이다. 크고 작은 어떤 사업이나 피와 땀을 흘리지 않은 것이 없고 또 피와 땀을 흘리고서 무슨 일이고 이루지 못한 것이 없다. 여기 이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야말로 피와 땀의 결정이니 무릇 2년 5개월 동안 연인원 890만 명이 땀을 흘렸고 그중에서도 피를 흘려 생명을 바치신 이가 77명이었다.
그들은 실로 조국 근대화를 향한 민족 행진의 산업 전사요 자손만대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거룩한 초석이 된 것이니 우리 어찌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은혜와 공을 잊을 것이랴. 여기 그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정성 들여 이 탑을 세우고 이 앞을 지날 적마다 누구나 옷깃 여미고 묵도를 올리리니 혼들이여 내려와 편안히 깃드옵소서. 웃으옵소서. - 1970년 6월 이은상 글 김충현 씀, 경부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
▲ 경부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 |
ⓒ 월간 옥이네 |
1970년대 초창기의 금강휴게소
전국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1971년 1월 1일에 개업한 추풍령휴게소(경북 김천시 봉산면)다. 금강휴게소가 그의 6개월 후인 1971년 7월 개업했으니 국내 고속도로 역사상으로 보아도 상당히 초창기의 휴게소다.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려들어 금강휴게소는 온통 사람들로 북적였다. 초창기 금강휴게소는 일자형 단층 건물로 단순한 형태에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는 모습이었는데, 옆쪽으로 금강호텔(금강모텔에서 상호 변경)도 존재했다. 당시 호텔급 숙박 시설이 있었던 유일한 휴게소였던 셈. 이는 일부 금강휴게소 직원의 기숙사로 활용되기도 했다.
"휴게소 처음 생기고 아주 대단했죠. 사람들이 물밀 듯 들어와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어요. 현금만 쓰던 시절이라, 하루에 현금이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여기 더러 '현대현찰은행'이라 부를 정도였어요." (동이면 조령1리, 전인경씨)
▲ 강 뒷편으로 지금은 사라진 금강호텔 건물이 눈에 띈다. (사진제공: 박순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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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휴게소 안마을, 조령1리
금강휴게소에 들어서면 뒤편으로 굴다리를 통해 이어지는 한 마을이 있으니, 바로 동이면 조령1리 지우대 마을이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매운탕, 도리뱅뱅이와 같은 향토음식을 찾는 이들을 몇몇 식당이 맞이하고 뒤쪽으로 가정주택이 옹기종기 자리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금강휴게소는 마을로 들어서는 현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이 일대에서는 '금강휴게소 안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지우대마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조령1리 토박이 전영기(67)씨는 과거 이곳이 완전한 산골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지금 고속도로 자리는 옛집과 논밭이 있던 곳이고, 주민들 대부분 소소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고.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던 시절에는 걸어서 인근 장까지 가야 했는데, 옥천장이 3시간, 이원·심천장이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마찬가지로 조령1리 토박이인 전인경(73)씨는 이곳을 "살기는 팍팍했을지 몰라도 인심 좋고 재미난 마을이었다"고 회상했다.
"금강이 옆에 있고 강물이며 자갈, 잔디밭이 참 보기 좋았지요. 정월대보름이나 단오날이면 주민들이 모여 축제를 하곤 했어요. 평소에도 누가 음식이라도 하면 다 나누어 먹고, 어울려 놀고 의가 좋았지요."
그러던 마을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경부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부터. 집터에 도로가 놓이면서 30가구가량이 보상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도로공사에 투입된 전국 각지에서 온 인부들이 일하는 동안 마을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많이 생겨났다. 금강휴게소가 자리잡은 뒤에도 식당은 점점 늘어났는데, 그렇게 하나둘 생겨난 마을 식당이 한때는 20곳까지 됐다고.
▲ 금강휴게소에 들어서면 뒤편으로 굴다리를 통해 이어지는 한 마을이 있으니, 바로 동이면 조령1리 지우대 마을이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매운탕, 도리뱅뱅이와 같은 향토음식을 찾는 이들을 몇몇 식당이 맞이하고 뒤쪽으로 가정주택이 옹기종기 자리했다. |
ⓒ 월간 옥이네 |
그의 삶 역시 금강휴게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시집온 이후로 그에게 금강휴게소는 삶터가 되었기 때문. 그는 9년째 금강휴게소 직원식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전에도 그의 삶터는 여전히 금강휴게소였다.
"30대부터 금강휴게소 유원지에서 포장마차 일을 했죠. 삶은 올갱이 한 컵에 3천 원씩, 아이들이 어릴 땐 등에 둘러업고 일했어요. 용돈벌이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꼭 서울 지하철서 사람들 빠져나오는 것처럼 휴게소에서 사람들이 나왔으니 할 만했어요."
때론 노점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내기도, 실랑이를 겪기도 하는 괴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에 미소짓게 되는 옛일이다. 이제 금강휴게소 내부 직원식당에서 9년째 일하며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강순덕씨다.
조령1리는 마을 특성상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관문이 금강IC다. 이렇다 보니 여기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 국도가 이어져 있지 않은 탓에 주민들은 차를 타고 나갈 때면 무조건 고속도로를 통해야 하는 것. 본래 요금소 진출 후 24시간 이내 들어오지 않으면 최장거리 운행 통행료가 부과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마을 주민들의 경우 이러한 규정이 부적절하기에 그 기간을 일주일로 예외를 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번거로운 점은 있다고.
"조령1리에는 현재 30가구, 4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금강IC가 마을 바로 앞이라는 점은 고속도로 진출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있지요. 가령 세입자가 오면 차적증명서를 작성해야 하고, 일정 기간에 한 번씩은 회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점 등이에요." (박희관 이장)
비상시 출입할 소방도로가 따로 없고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면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량이 많아 마을 출입이 특히 어려워지는 점 등이 또 다른 고충이다.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국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한때 있었지만, 토지 확보 문제로 해결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 박희관 이장의 설명. 안전을 위해서라도 마을이 국도로 통하는 길은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농사 어려웠던 동네, 휴게소 생기고 모든 것이 달려졌다 https://omn.kr/27pz7
▲ 왼쪽부터 강순덕·전인경·전영기씨 |
ⓒ 월간 옥이네 |
월간옥이네 통권 80호(2024년 2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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