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촌과 결혼 뒤 변심한 의사 "무효" 소송…'근친혼 확대' 불지폈다 [근친혼 논란]
‘근친혼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란 논란이 법조계에서 뜨겁다. 지난 2022년 10월 헌법재판소의 ‘8촌 이내 혼인무효’ 조항(민법 815조)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올 연말까지 개정안을 입법해야 해서다.
기름을 끼얹은 건 개정안을 논의 중인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근친혼 금지 범위를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친족 간 혼인의 금지 범위 및 그 효력에 관한 연구’)를 받아본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헌법상 혼인 상대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려면 근친혼 금지 범위를 4촌 또는 6촌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교적 전통과 도덕관념에 따라 지금의 8촌 이내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맞붙었다. ‘헌법존중론’과 ‘관습존중론’ 사이의 해묵은 논쟁이 재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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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의사의 소송…“6촌 여동생과 결혼 없던 일로”
헌재 결정의 발단이 된 사건은 2017년 소아과 의사 A씨가 6촌 여동생 B씨에게 제기한 혼인무효 소송이었다. A씨와 B씨는 6촌 사이(A씨의 조모와 B씨의 조부가 남매)인 걸 알면서도 2011년부터 미국 플로리다에서 동거하며 6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2016년 대전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가 변심해 “어차피 6촌 결혼은 원천 무효”라며 B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B씨는 “사회적 약자인 나를 상대로 A씨가 축출이혼(유책 배우자가 무책 배우자를 쫓아내는 것)을 시도했다”고 항의했지만, 대구가정법원 상주지원 1심과 대구가정법원 2심은 모두 혼인을 무효로 판결했다. 2018년 B씨는 8촌 이내 금혼 및 혼인무효 조항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을 다룬 헌재는 2022년 10월 ‘8촌 이내 혼인을 금한다’는 민법 809조1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정한 민법 815조2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쉽게 말해, 8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한 건 옳지만, 이미 한 결혼을 국가나 제3자의 목소리에 따라 일괄적으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치는 것(무효)은 과하다는 취지다. 법기술적으로만 본다면 헌재가 지적한 위헌성은 혼인 이력 자체가 남지 않는 ‘혼인무효’ 조항을 혼인 이력이 남되 상속·재산분할 등이 유효한 ‘혼인취소’로 한 단계 낮추는 것으로 해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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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촌은 ‘근친’일까…가족질서 유지 vs 혼인의 자유
그러나 ‘8촌’이라는 금혼 범위가 적정한가, 지나친가를 두고 당시에도 헌재 재판관들은 치열하게 논쟁했다. 최종 결론은 다수를 점한 재판관 5명(재판관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의 판단대로 “이미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까지 혼인무효로 하는 것은 가족제도의 유지라는 입법목적에 반하므로, 혼인 취소로도 충분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4명의 헌재 재판관(재판관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은 “8촌 이내의 혈족을 알고 지내는 경우가 드물어진 만큼 혼인의 자유 침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의견을 냈다. 유·이·김·문 재판관은 ‘8촌 이내 혼인을 금한다’는 민법 809조 자체도 헌법과 맞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무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는 ‘8촌 이내 혼인을 금한다’는 민법 809조 자체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헌법재판관 4인의 견해에 더 가깝다. 현 교수는 보고서에서 “5촌 이상과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고, 5촌 이상부터는 근친혼에 의한 유전적 질환의 발병률도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며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로 인한 친족 관념 변화와 대부분의 국가가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만 근친혼을 금지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5촌부터 결혼 가능하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현 교수는 헌법 소원 당시엔 법무부 반대 측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는데, 이번엔 법무부의 용역 발주로 보고서를 썼다. 법무부는 현 교수에게 용역보고서를 맡긴 데 대해 “시대 변화와 해외 입법례 등을 두루 검토하는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5촌 결혼’ 가능해지면 무슨 일?
현재 합법적으로 혼인이 가능한 촌수는 법적으로 남남인 9촌부터다. 예컨대 ‘고조할아버지의 친형제의 증손주’나 ‘증조할아버지의 친형제의 손주의 손주’가 9촌이다. 4촌 이내로 줄이면, 5촌 사이인 당숙(아버지의 사촌형제)이나 이종질(이모의 손주)과 결혼할 수 있게 된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얼마나 많은 ‘합법 커플’이 탄생할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고, 근친혼은 당사자들이 침묵하는 데다,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다. 국회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 5일까지 24년간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근친혼 관련 키워드로 접수된 민원은 51건이었다. 1년에 2건꼴이다.
드물지만 ‘사촌오빠와 사실혼 관계로 자녀가 있는데, 자녀가 평생 혼외자로 살 수밖에 없는지(국민신문고)’, ‘6촌끼리 결혼해서 가족들과 연을 끊고 시골에 내려가 자녀를 낳고 사는데, 제3자인 사촌이 혼인무효를 주장한다(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남모를 고충들이 관계기관이나 관련단체에 접수된다고는 한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배인구 변호사는 “서로 성도 다르고 부모님끼리도 전혀 모르고 평생 교류 없이 살다가 상대방과 8촌 지간인 걸 모르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대인 만큼 ‘8촌이 최소 단위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시점은 됐다”고 말했다.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결혼 상대를 선택할 자유는 국제인권법상 매우 중요한 가치인 만큼, 이를 국가가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2022년 10월의 헌재 사건처럼 금혼조항이 이혼 기록조차 남지 않는 축출이혼에 오용될 가능성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는 3~4촌까지 금혼…유림 “인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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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때 적발 불가…법무부 “열어놓고 검토”
금친혼 범위를 넓게 규정한 우리 민법이 실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론도 지적된다. “당사자가 혼인신고서에 ‘8촌 이내에 해당된다’에 ‘예’ 표시를 하거나,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확인되지 않는 이상 공무원이 근친혼 해당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법원행정처 공식답변)고 한다. 가족관계등록부로 확인되는 촌수는 부모와 자녀 등 3대까지다. 8촌 여부를 알려면 부모, 조부모, 증조부, 고조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뗀 뒤 세대별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이를 두고 헌법재판관 4인은 “친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신분공시제도가 없다”고 지적키도 했다.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장’인 윤진수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아직 가족법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해외에선 4촌을 넘어가면 결혼 못 하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는) 8촌→4촌 축소안, 8촌→6촌 미세조정안 등등을 모두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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