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K-뮤지컬, 해외 시장 벽 허문다
한국 제작자가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한국 창작품을 현지화한 뮤지컬이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려진다. 뮤지컬계에서 해외 진출을 위한 노력과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국내 뮤지컬 산업이 높은 해외 시장의 벽을 허무는 본격적인 시작점이 될 거라고 보고 있다.
먼저 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4월 25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씨어터에서 공식 개막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프로듀서가 전 세계 공연권을 확보하고 있고, 현지 창작진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제이 개츠비 역에 제레미 조던, 데이지 뷰캐넌 역에 에바 노블자다가 출연한다.
이미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해 10월 12일~11월 12일까지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인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PaperMill Playhouse)에서 선보인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통해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 프리뷰 개막 전부터 1200석 객석이 전 회차, 전석 매진됐다.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가 1934년 개관 이래 가장 빠른 티켓 매진이었다.
현지 매체들의 반응도 좋았다. 뉴욕타임스는 “무대와 영상에는 아르데코적 요소가 풍부하고, 조명은 정교하며, 눈부신 의상은 매혹적이다”라고 평했고, 브로드웨이 월드는 “이 공연은 경이로우며, 미국 뮤지컬 공연계의 기념비적인 새로운 작품이 될 운명이다”라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가 한국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새롭게 만들어져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면, 뮤지컬 ‘마리퀴리’는 2020년 초연한 한국 창작 뮤지컬을 영국 현지 제작진과 배우가 현지화해 웨스트엔드에서 선보이는 식이다.
뮤지컬 ‘라이드’의 연출가 사라 메도우스, ‘렌트’ 제작에 참여한 음악감독 엠마 프레이저 등이 이름을 올렸고, 강병원 라이브 대표는 현지 프로덕션의 리드 프로듀서를 맡았다. 공연은 6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런던 채링 크로스 시어터에서 초연한다. 한국 뮤지컬이 웨스트엔드에서 현지 스태프·배우들과 영어로 장기 공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리 퀴리’는 작품 개발 단계부터 아시아와 영미권 진출을 염두에 뒀다. 2019년 중국 상하이,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했고 지난해에는 일본 제작사 아뮤즈가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웨스트엔드에서는 2022년 11월 공연 하이라이트를 시연하고, 지난해 11월 전막 쇼케이스 공연을 하면서 작품을 발전시켰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시장 진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한국 뮤지컬 최초로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명성황후’는 1997년 뉴욕 링컨센터 스테이트 시어터(현 데이비드 코크 극장)에서 공연했고, 2002년에는 영국 런던 해머스미스 극장에서 영어 버전을 선보였다. 다만 이 공연은 사실상 초청 공연에 가까워 ‘브로드웨이 진출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후로도 ‘위대한 개츠비’의 프로듀서 신춘수 대표가 이끄는 오디컴퍼니는 ‘할러 이프 야 히어 미’ ‘닥터 지바고’ 등으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시도했고, CJ ENM은 글로벌 공동 프로듀싱 자격으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최근 뮤지컬 진출작들을 본격적인 시작점이라고 여겨지는 건, 이런 경험과 시도를 통해 쌓인 역량을 바탕으로 한국 창작진이 리드 프로듀서로서 작품을 이끌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한국 프로듀서가 작품의 주축이 되어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무대에 작품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이미 한국 작품, 창작진이 다양한 루트를 개척하면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무대에 올려질 공연이 성공적인 흥행 성적을 낸다면 향후 해외 진출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뮤지컬 해외 진출 지원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창작 뮤지컬을 지원하는 ‘K-뮤지컬국제마켓’ 등이 있지만 더 다각화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이미 성과를 낸 작품에 대한 해외 진출은 물론이고 창작 단계에서 글로벌 유통을 염두해 작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장기적으로 진출 이후 정착과 확장을 위한 꾸준한 네트워크 구축 등의 지원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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