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도깨비불·여우는 과거 풍년을 예고했다(上)
'야칸'이라 불린 여우, 왜 '기쓰네'로…
'마네키 네코' 원조는 '마네키 기쓰네'였다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 어머니는 여우?
영화 '파묘'는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종교 본연의 태도를 보여준다. 세대는 물론 성별, 국적, 종파에 구분 없이 모두의 상흔을 보듬는다. 일련의 사건에는 다양한 풍속과 의례, 역사, 설화, 풍문 등이 등장한다. 중심에는 풍수가 있다. 제목 그대로 땅을 파헤친다. 의뢰인은 친일파 관료의 손자 박지용(김재철). 산소가 훼손돼 자손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은 대번에 악지(惡地)임을 알아챈다. 잘못 손대면 줄초상이 날 수 있다며 착수를 거절한다. 하지만 간곡한 한 마디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제 아들 좀 살려주세요."
이어지는 위험과 공포는 시간과 공간의 생생한 교차 속에 재현된 것들이다. 예컨대 후반부에 나타나는 오니(일본 요괴)를 빼닮은 정령은 사후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북쪽으로 전진하라는 대사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참수당했다는 설명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연상된다. 어릴 때 가톨릭에 입교해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받은 다이묘다. 종교적 믿음을 이유로 할복을 거부해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목은 베어져 높은 곳에 걸리고, 몸은 따로 매장됐다고 전한다. '파묘'에서는 다이토구에 안장되나 일제강점기에 파헤쳐져 강원도 고성으로 옮겨진다. 척추에 칼이 꽂힌 채로 관에 봉인돼 쇠말뚝이 된다. 비운으로 점철된 배경과 해결 과정에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물론 서민 문화의 근원과 정수가 숨어 있다. 더 넓은 세계를 탐구하는 실마리로, 이해의 길을 틀 수 있다.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시리즈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일본에서 유명한 요괴로는 여우, 덴구, 너구리, 갓파, 뱀, 오니 등이 있다. 여우는 변신하는 동물로 여겨진다. 사람을 돕기도 하지만 남자를 괴롭히는 요괴로도 그려진다. 농업이나 상업을 관장하는 신의 심부름꾼으로도 등장한다. 잘 섬기는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준다.
*일본에서 뱀은 여자 또는 요괴의 모습으로 변신해 사람을 홀린다.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복수하는 내용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오니는 한자로 쓰면 귀(鬼)다. 한국의 귀신과는 다른 이미지다. 주로 원혼과 관련이 깊으나 때로는 신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섭다. 사람에게 속기도 하고 복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다중적 성격이다.
*현대 일본인이 생각하는 오니는 빨강, 검정, 청색 등 원색 피부에 체구가 큰 요괴다.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훈도시를 두르고 쇠 방망이나 망치를 휘두른다. 이런 이미지는 세쓰분(봄맞이 축제) 의례에 등장하면서 정형화됐다.
*세쓰분에 가정에선 콩을 집 안팎에 뿌리며 복을 부른다. "복은 안으로 들어오고, 오니는 밖으로"라고 외친다. 오니는 이렇게 바깥으로 추방해야 할 존재라는 뜻부터 냉혹하고 무자비한 사람, 어떤 일에 심취해 있는 사람까지 여러 가지 의미로 통용된다.
*오니와 대응하는 우리말로는 귀신과 도깨비가 있다. 보편적 특징을 생각하면 후자에 더 가깝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도깨비라는 말은 황당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나 사건 등을 과장하기 위한 의미다. 어원의 형성 과정이 오니와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문헌상으로 도깨비라고 한글로 표기된 최초 기록은 15세기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다.
*도깨비는 '돗+가비'의 합성어다. '돗'은 불이나 씨앗이라는 의미로, 풍요를 상징한다. 아비는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에 쓰인 대로 아버지 즉 성인 남자를 가리킨다. 도깨비가 농경사회에 복을 가져다주는 신격체로서 전승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 숨바꼭질과 비슷한 놀이가 있다. 바로 오니곳코다. 신에게 올리는 제사 의식에서 시작됐다. 점차 신앙과 격리돼 어린이들의 놀이 형태로 변했다.
*일본에는 '오니의 공염불'이란 말이 있다. 무정하고 냉혹하나 겉으로는 자비심이 많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인다. 오니의 무시무시하고 인정 없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속담이라 할 수 있다.
*'오니의 목을 벤 것처럼'이란 말도 있다. 대단한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매우 기뻐함을 비유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대단한 것이 아닌데 마치 큰 공이라도 세운 듯이 의기양양할 때 사용된다. 매우 무섭다는 오니의 목을 벤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이를 해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오니도 잘 부탁하면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잖게 사용된다. 오니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지만, 잘 사귀어서 달래고 부탁하면 인정을 발휘해 잡아가지 않거나 잡아먹지 않는다. 진심으로 이해하면 뜻이 통하리라는 표현에 오니를 대비적 요소로 등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가마쿠라 시대에 불교는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떨어져 무서운 벌을 받는다며 서민층 신자를 늘려갔다. 당시 두루마리 그림이 많이 그려졌는데, 곳곳에 염라대왕 명에 따라 죽은 자들을 고문하는 오니가 배치됐다.
*일부 오니는 불교를 수호하는 신의 하나로서 인정된다. 이름 높은 스님이 절을 지을 때, 오니의 안내를 받았다는 전설이 꽤 있다. 실제로 일본 절에서는 오니 기와 등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오니가 다수 발견된다.
*에도시대 요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도리야마 세키엔(1712~1788)이다. 미인화로 유명한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스승인데, 미인화는커녕 우키요에(다색목판화)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요괴 그림책뿐이다. '백귀야행', '속백귀', '백귀습유', '화도백귀도연대' 등이 대표적 예다. 백귀란 수많은 요괴를 가리킨다. 고로 백귀야행이란 100가지 귀신 도깨비가 밤길을 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도조지 설화에는 뱀으로 변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떤 집에 해마다 찾아오는 승려(안친)가 있었다. 그 집에는 딸(기요히메)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스님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약을 올렸다. 농담이 계속되자 딸은 자신이 자라면 그 스님과 결혼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려가 찾아왔다. 딸은 승려에게 자신을 언제 데리고 갈 것이냐고 강하게 재촉했다. 깜짝 놀란 승려는 그날 밤 절로 들어갔다. 아침이 되어 승려가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자신의 사랑이 거절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뒤를 쫓았다. 절이 보이는 강가는 어젯밤 내린 비로 수위가 불어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건널 수 없었다. 하지만 원념에 불탄 그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 몸체는 서서히 뱀으로 변해갔다. 기어코 강을 헤엄쳐 도조지에 도달하자 승려는 종 안으로 몸을 숨겼다. 절을 돌아다니던 여인은 종을 휘어 감고는 그 안에 숨어 있던 남자를 태워죽였다. 일본 설화에서 뱀은 용과 동격이다. 용이기 때문에 입에서 불을 뿜어 승려를 태워 죽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연출된 노(일본의 가면 악극)에서 뱀이 된 여자는 '오니온나' 또는 '누레온나'라고 불린다.
*인간이 변신해 뱀이 된다는 발상은 일본에만 있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본 최초의 불교 설화집 '니혼료이키'의 정식 명칭은 '니혼코쿠 겐보젠아쿠 료이키'라는 긴 이름이다. 책명처럼 현세에서도 악한 행위에 대한 응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영험하고 신비한 이야기가 다수 수록됐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기쓰네'다. 긴메이 천황 시절, 오오노 고을의 한 남자가 예쁜 여성을 만나려고 길을 떠났다. 그는 우연히 그런 여자를 만났다. 집으로 데려와 결혼하고 사내아이까지 하나 낳았다. 그 집에서 키우는 개도 같은 날 새끼를 낳았다. 강아지는 늘 여자를 보면 이를 드러내며 짖어댔다. 여자는 남편에게 개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주인은 너무 귀여워서 죽일 수 없었다. 어느 날 쌀을 찧던 여성은 함께 일하는 여인들에게 간식을 주려고 방앗간에 들어갔다. 순간 어미 개가 여성을 물려는 듯 쫓아오며 짖어댔다. 화들짝 놀란 여성은 순간 여우로 변해 도망쳤다. 천정에 걸린 홰(새나 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남자는 여우에게 "당신과 나는 아이까지 있는 사이가 아니요? 절대로 잊지 않겠소. 언제든지 오시오. 함께 잡시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남자는 여자를 '기쓰네(와서 잔다)'라고 불렀다.
*일본에서 여우는 일찍이 '야칸'이라 불렸지만, 니혼료이키 설화가 퍼지면서 '기쓰네'로 통용됐다. 여우는 산토끼나 들쥐의 천적으로, 농민에게 유익한 짐승이다. 원래 음식·곡물이나 산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여우를 신의 사자로 모시는 이나리 신사가 지금도 3만 곳 정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9세기 말 무렵에 들어온 중국 지리서 '산해경'의 영향을 받아 음수·요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인간을 속이는 영악한 짐승이라는 인상이 퍼져 있다. 중국 도교의 교과서로 통하는 '도가서포박자'에서는 선악을 불문하고 신격화된 여우의 정령을 '요호(여우 요괴)'라고 부른다. "호리(여우와 살쾡이)는 나이가 300살을 넘어 요호가 되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요술을 터득하게 된다. 그 요술이란 인간의 해골을 머리 위에 대고 북두칠성을 향해 예배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나리대명신은 오곡의 신이다. 여우는 한동안 그의 심부름꾼으로 여겨졌다. 유부를 주고 소원을 빌면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퍼졌다. 사람들은 여우가 유부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여우의 털 색깔이 유부와 비슷해서라는 설이 있다. 일본우동 가게를 가면 "여우 주세요, 너구리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여우는 유부를 좋아하고, 너구리는 튀김 밥(밀가루 튀김을 튀길 때 만들어지는 동그란 찌꺼기)을 좋아한다는 속신의 영향이다.
*여우의 요괴로서 성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인간의 몸에 들어가 병나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을 속이는 것이다. 전자는 '기쓰네쓰키'라는 말로 대변된다. 여우의 영혼이 씌워져 자신이 여우가 됐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보인다. 기쓰네쓰키로 유명한 이야기로는 나가시노를 중심으로 구전된 '오토라기쓰네'가 있다. 건강한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 그들의 입을 빌려 나가시노 전투를 이야기한다. 여우는 망루에 올라가서 전투를 구경하다가 유탄에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하고 왼쪽 발을 다쳤다. 그래서 오토라기쓰네에 홀린 사람들은 왼쪽 눈에서 눈곱을 흘리고 왼발 통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일본 음양사나 밀교에선 인간 몸에 들어간 여우를 퇴치하기 위해 솔잎을 피우거나 무서워하는 개에게 전신을 핥게 했다고 한다. 불 위를 걷게 하거나 뜨거운 물을 끼얹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인간을 속이는 여우의 속성을 빌린 말로는 '기쓰네비'와 '기쓰네노 요메이리'가 있다. 전자는 도깨비불이나 인화 같이 어두운 밤에 산야에 보이는 괴상한 불을 뜻한다. 여우 입에서 나오는 불이라는 속설 때문에 기쓰네비라고 부른다. 후자는 초롱불 행렬같이 기쓰네비가 많이 줄지어 늘어선 모양을 말한다.
*일본에는 '마네키 네코'라는 것이 있다. 오른쪽 앞발로 사람을 부르는 시늉을 하는 고양이 꼴 장식물이다. 손님이 많이 들어오기를 비는 뜻에서 가게 앞이나 계산대 같은 데에 둔다. 원래는 고양이가 아니라 여우였다. 이나리신이 사업을 번창시켜 준다고 믿어 '마네키 기쓰네'를 가게 앞에 뒀다. 일본 정부는 서민들이 신성한 여우 인형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제작을 금지하고 나섰다. 이에 인형 업자들은 대체할 동물로 고양이를 떠올렸고, 지금의 '마네키 네코'를 정착시켰다.
*다큐멘터리 영화 '기타키쓰네 모노가타리'는 1978년 일본 극장에서 개봉했다. 제목 그대로 홋카이도에 서식하는 여우 '기타키쓰네'를 다룬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물을 대대적으로 조명해 주목받았고, 흥행까지 성공했다. 성엣장(물 위에 떠내려가는 얼음덩이)을 타고 홋카이도에 건너온 기타키쓰네, 렛프는 극한의 땅에서 보금자리를 지키며 새끼들을 키운다. 제작진은 머지않아 오는 새끼와의 이별, 그리고 독립한 새끼들의 운명을 심도 있게 담아낸다. 일련의 과정은 떡갈나무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새끼, 몸이 약한 새끼, 먹이를 잡을 수 없는 새끼, 인간의 덫에 걸린 새끼들이 차례로 죽는다. 어미 또한 덫에 걸려 운명을 함께한다. 그 뒤에도 고난은 계속된다. 스노모빌을 타고 사냥하는 집단이 이들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다. 인간은 철저하게 잔인한 악역으로 나온다. 피투성이로 죽어가는 여우의 모습에 어린아이를 포함한 많은 일본인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다.
*한국 고문헌에서 요괴라는 용어는 '삼국사기' 고구려 차대왕 3년에 유일하게 나온다. 대상은 흰 여우다. 요수라는 표현을 동시에 쓰고 있다.
*한국에는 다양한 유형의 요괴가 없다. 대신 도깨비에 그런 속성들을 부여했다. 도깨비는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어둑어둑할 때나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 나타난다. 등장하는 방식은 도깨비불이다. 귀(鬼)의 속성을 띤다. 이처럼 귀로 혼동되면서 도깨비는 돌림병을 가져다주는 역신과 사람을 홀리는 존재, 그리고 화재의 원인이 되는 귀신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깨비불은 성현의 '용재총화'에서 귀화(밤에 무덤이나 축축한 땅, 고목, 낡고 오래된 집 등에서 저절로 번쩍이는 푸른빛의 불꽃)로 표현된다. 당시 나타난 귀화는 좋은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성현의 외숙부 안부윤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날에 무수한 귀화를 만나 혼이 났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깨비불이 항상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는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곳에서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점세속이 성행했다. 이런 풍속은 서해안과 남해안을 걸쳐 두루 나타난다. 도깨비불로 치는 점세속은 육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농촌지방에서는 도깨비불을 근거로 해 흉풍을 점치는 점세속이 있었다. 부산의 경우 섣달그믐날(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도깨비불을 근거로 풍년을 점쳤다. 산 쪽에 도깨비불이 있으면 그쪽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광주에서는 도깨비불이 높은 곳에서 놀면 가뭄이 들고, 낮은 곳에서 놀면 물이 흔해져 풍년이 든다고 신봉했다. 전남 나주에서는 정월 보름날 들녘을 돌아다니는 도깨비불이 크고 활활 타오르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
*도깨비 인물화가 사람이냐, 오니의 형상이냐에 관한 논란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대표적 예가 2002년 월드컵에서 인기를 끈 '붉은 악마' 형상이다. 오니의 얼굴상이나 귀면와(귀신의 얼굴을 그린 장식 기와)를 대신 쓰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런 왜곡된 몇 가지 사례들을 제외하면 도깨비 형상은 주로 사람으로 나타난다.
*도깨비는 본질적으로 신의 속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를 겪었다. 귀신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사람 홀리기나 역신으로의 기능 등이 부여됐다. 그렇다고 신의 속성을 상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적 속성을 지닌 상태에서 다른 속성을 병행해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와 달리 요괴는 신의 일종이면서 부정적 측면을 지닌 존재로 이해되고 있다.
*일본에 도교가 전래한 역사는 유구하다. 6세기경 백제에서 천문, 역법, 방술 등의 학문이 전해졌다. 그 뒤 음양오행설의 이론을 바탕으로 풍수, 점복, 벽사 등의 도술을 행하는 음양도가 성립됐다. 대표적 음양사인 아베노 세이메이를 중심으로 음양도의 본질, 역사, 특징 등에 관한 연구가 축적됐다. 특기할 일은 요괴학과 도교학의 연구가 단순히 고대 문화를 탐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화가, 소설가, 영화감독 등이 현대의 문화현상을 함께 다루며 산업화를 이뤄내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는 많은 요괴가 등장한다. 온천으로 몰려드는 일본 전국에서 온 요괴들의 행렬은 마치 '백귀야행회권'에서의 모습을 재현한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요괴들의 행렬을 다룬 그림은 중국에 먼저 있었다. 한대에는 기남의 '화상석', 남송대에는 '중산출유도'가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분명한 차이는 있다. 중국의 그림에선 인간과 동물의 합체 즉 하이브리드가 많다. 일본의 그것은 인간 혹은 사물의 변종 형태 즉 뮤던트가 주를 이룬다.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음양사(2001)'는 헤이안 시대의 저명한 도술사였던 아베 세이메이가 황실을 수호하기 위해 요괴, 원령 등과 투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원래 유메마쿠라 바쿠의 베스트소설 '음양사(1988)'가 먼저였다. 변신, 점술, 부적, 축귀, 환혼 등 갖가지 도교 방술이 등장한다.
*일본에선 아베 세이메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라카미 천황 때 셋슈 아베노쿄향에 세스나란 이름을 가진 청년이 살았다. 아버지 아베 호로메는 지역 영주였다. 아베 집안은 명문가로, 선조인 아메노 나카마로는 일찍이 나라 시대의 견당유학생이었다. 아베 집안은 호로메 대에 이르러 사기를 당해 모든 영지를 잃고 말았다. 당시 집안에는 천문, 역법 등 음양도의 신비가 기록된 천문학 비서들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세스나는 그걸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 가문의 부흥을 위해 매달 센슈로 가서 묘신을 참배했다. 신사는 시노다노모리 숲에 있었다. 칡넝쿨이 뒤엉켜 있어 대낮에도 어두컴컴하고 사방이 여우 천지였다. 어느 날, 세스나는 시종 몇 명을 데리고 시노다노모리 숲에 참배하러 갔다. 시종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숲 쪽에서 개 짖는 소리와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시종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일어선 순간 흰 여우 두 마리가 장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쪽 입구로 들어와 다른 쪽 입구로 달음박질치더니 이내 장막 바깥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뒤를 따라 흰 새끼 여우가 뛰어 들어왔는데, 지친 모양인지 세스나 앞에서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방금 지나간 흰 여우 두 마리가 부모인 듯했다. 세스나는 새끼 여우를 긴 소매 안에 숨겼다. 사냥개 몇 마리가 사납게 짖으며 뛰어 들어왔다. 얼마 뒤 한 무리의 무사들이 몰려와 여우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여우가 이리로 도망쳤지? 어서 내놓거라." "이곳은 묘신의 경내이니, 살생하기에 적당하지 않소." "뭣이라?" 무사들 중 하나가 긴 칼을 빼 들고 세스나를 베려 했다. 세스나 역시 긴 칼을 빼 들고 맞섰다. 이때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네 놈들이 감히 우리가 쫓던 여우를 빼돌릴 셈이냐? 내 부하들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리기만 해봐라! 여봐라, 저놈들을 어서 처치해라!" 가와치의 슈고다이묘 이시카와 쓰네히라였다. 이시카와 군에 살면서 나쁜 짓을 일삼아 그곳의 인심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는 아내가 고열에 시달리자 새끼 여우의 생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풍문을 듣고 부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왔던 것이었다. 양쪽에서 칼날이 어지러이 부딪쳤다. 세스나의 시종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지만, 많은 수를 당해 낼 재간이 없어 하나둘 낙엽처럼 쓰러졌다. 급기야 세스나마저 부상하고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무사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그를 밧줄로 꽁꽁 묶어 버렸다. 무사 중 하나가 긴 칼을 높게 치켜들고 휘두르려는 찰나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시오." 한 스님이 서 있었다. 쓰네히라 일족 중 불교에 귀의해 가와치국 후지지의 주지가 된 요리노리 스님이었다. 쓰네히라는 깜짝 놀랐다. "주지스님, 이곳에는 웬일이십니까?" "신성한 경내에서 살생하시다니요. 우선 칼을 거두시고 노납(중이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보시지요." 쓰네히라는 이러쿵저러쿵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주지로부터 한 차례 훈계를 들었고, 결국 세스나를 주지에게 맡기겠다고 대답했다. 주지는 쓰네히라 일행이 떠난 것을 확인한 뒤 밧줄에 묶여 있는 세스나를 풀어주며 말했다. "사실 저는 당신이 방금 구해줬던 그 흰 여우랍니다." 말을 마치자 다시 새끼 여우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몸을 돌려 숲으로 달려갔다. 세스나는 부상한 몸을 이끌고 아베노쿄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격전을 치른 탓에 목이 말랐던 그는 이리저리 냇물을 찾았다. 냇가에 이르렀을 때 젊은 아가씨 하나가 물을 긷고 있었다. 어깨에 지게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막대기에 매달린 물통으로 물을 뜨려다가 그만 미끄러져 냇물에 빠지고 말았다. 세스나는 자신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아가씨를 부축했다. 감사해한 아가씨는 상처를 치료해주겠다며 세스나를 산 뒤쪽의 암자로 데려갔다. 세스나는 정신을 조금 차린 뒤 떠날 생각이었으나, 아가씨가 너무나도 정성스레 보살펴 주는 터라 하루만, 또 하루만 하며 지체했다. 결국 그 암자에서 아가씨와 7년을 살게 됐고, 슬하에 아베노 도지라는 자식까지 두게 됐다. 세월이 흘러 어느 해 가을이 됐다. 세스나는 완전히 그 지방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밭을 가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열심히 베를 짰다. 집 정원에는 세스나가 정성스레 가꾼 국화가 가득 심어졌다. 바람에 실려 오는 국화향을 맡자 아내는 정신이 그만 아득해졌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느꼈다. "아악, 너무 무서워요!" 정신을 차린 아내는 놀라 울고 있는 도지를 보고 그제야 가지가 국화향이 미혹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래의 여우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는 후회하며 암자 방문 창호지 위에 와카(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 한 수를 남겼다. "제가 생각나실 때는 이즈미의 시노다노모리 숲에 와서 구즈노하를 찾으세요." 그는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어머니를 잃게 된 도지는 더욱 상심해 큰 소리로 울었다. 집에 돌아와 와카를 본 세스나는 도지를 업고 시노다노모리 숲으로 향했다. 마침내 아내가 모습을 나타냈다. "저는 본래 시노다노모리 숲에 살던 여우랍니다. 7년 전, 당신이 저를 구해주셨고, 그 은혜를 갚고자 부부의 연을 맺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저의 진짜 모습을 들킨 지금, 더 이상 두 사람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앞으로 저를 대신해 당신이 아이를 잘 보살펴주세요." 말을 마친 아내는 도지에게 지혜옥 한 알을 주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도지가 바로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다.
참고 자료 : 박전열 외 지음·발행처 한누리미디어 '그 생성원리와 문화산업적 기능 일본의 요괴 문화(2005)', 김용의 지음·발행처 전남대학교출판부 '일본설화의 민속세계(2013)', 모로 미야 지음·김경아 번역·발행처 일빛 '전설일본(2010)', 천인호 지음·발행처 세종출판사 '풍수사상의 이해(1999)', 노자키 미츠히코 지음·발행처 동도원 '한국의 풍수사들(2000)', 이석정 박채양 최주대 지음·발행처 브레인북스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번성한다(2007)', 손숙희 지음·발행처 국학자료원 '보통 사람이 쓴 무속이야기(1997)', 홍태한 지음·발행처 민속원 '우리 무당굿의 세계(2009)', 김희영 지음·발행처 민속원 '풍속 조사 자료를 통해 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 인식(2014)', 무라야마 지준 지음·최순애 요시무라 미카 번역·발행처 신아출판사 '조선인의 생로병사 1920-1930년대(2014)', 무라야마 지준 지음·최석영 번역·발행처 민속원 '한국근대민속인류학대계 2: 조선의 풍수(2008)', 이와타 시게노리 지음·조규헌 번역·발행처 소화 '일본 장례문화의 탄생(2009)', 장윤선 지음·발행처 이숲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2008)', 박태호 지음·발행처 서해문집 '장례의 역사(2006)', 유재철 지음·발행처 김영사 '대통령의 염장이(2022)', 김영민 지음·발행처 새문사 '우리 조상신앙 바로알기(2005)'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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