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효율 장시간 노동’ 주4일제로 극복할까…노동계 “사회적 논의 시작”
“주4일제로 일과 삶 조화 찾아야” 노동·시민단체 연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주4일제’ 도입 사례가 늘면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보다 훨씬 긴 시간을 일하면서도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인 ‘저효율·장시간 노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한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특히 노동계에서 처음으로 ‘주4일제’를 내걸은 노동·시민단체 네트워크가 출범하면서 관련 법·제도 마련을 위한 공론화 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3일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연중 노동시간은 1874시간이었다. 전년(1904시간) 대비 30시간 감소한 것으로,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156.2시간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1800시간대로 떨어진 것은 2017년(1995.6시간) 1900시간대로 내려온 뒤 6년 만이다.
다만 꾸준한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월등히 많다. OECD 통계상 2022년 기준 임금근로자 근로시간은 회원국 평균 1719시간이다. 2023년 한국의 근로시간과 비교해도 155시간이나 적다. 한국보다 연간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등 5개국뿐이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노동 집중도가 떨어지고 근로자의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발간된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9.4달러로, OECD 38개국 평균인 64.7달러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보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국가는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등 4개국에 불과했다.
노동계는 이러한 저효율·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기 위해 주4일제 관련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미 영국 일본 호주 스페인 프랑스 스웨덴 등 해외의 개별 기업에서 주4일제를 도입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에서 ‘주4일제’ ‘격주 4일제’ ‘주4.5일제’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시간 체제를 실험하고 있어 정책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노총 등 노동·시민단체들은 지난달 29일 ‘주4일제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고 주4일제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대선 당시 주4일제 공약이 나오기도 했으나 조직 내부에서도 주4일제를 바라보는 의견이 분분했다”며 “이제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주4일제 적용 경험 등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법·제도화를 위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실제 주4일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각 회사의 근무 형태, 임금 체계, 노사합의 여부 등 다양한 쟁점을 고려해야 한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지난해 노사합의로 임금을 10%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 주4일제를 시범 도입했다. 반면 포스코는 2주 단위로 주 평균 40시간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격주로 금요일을 쉴 수 있는 주4일제를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이슈분석 보고서에서 주4일제 시행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결국 주4일제의 핵심은 생산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의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근무 형태를 접목하더라도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각 기업의 사정이 다르고 개인마다 직무 파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며 “주4일제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직무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며 근로자, 사업자, 정부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연구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주4일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HR 테크 기업 원티드랩이 직장인 17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4%는 ‘연봉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주4일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연봉 삭감률의 최대폭은 5% 미만이 73.4%로 가장 많았다.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1월 임금 근로자 300명에게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셋 중 둘 이상인 67.3%(정규직 68.1%, 비정규직 66.7%)가 주4일제 도입에 찬성했다. 지난해 9월 임금 근로자 500명으로 대상으로 했던 조사 때의 찬성률 61.4%보다 높아진 것이다.
주4일제 네트워크는 주4일제 법제화와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 종합계획 수립, ‘국가노동시간위원회’ 설립, 노동시간 체제 전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단체는 “입법·정책 활동과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한 실태조사 및 기획사업 등을 내후년까지 장기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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