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C가 없다"…실리콘밸리에 K반도체 스타트업 모인 이유 [르포]

박해리 2024. 3.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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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km 거리 ‘K반도체 스트리트’로 불러
삼성전자 등 반도체 미국 지사 건물 즐비
지난달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위치한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건물 입구에는 반도체 스타트업을 비롯해 한국 기업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간판이 걸려있다. 모두 이 건물 내에 입주한 기업들이다. 새너제이=박해리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는 샌프란시스코만에서 중심가까지 길게 이어지는 퍼스트 스트리트가 있다. 이 길의 북쪽 부근에는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미주법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 아메리카 등이 속한 약 2.4km 정도 되는 거리를 현지인들은 ‘K반도체 스트리트’라고 부른다.

최근 한국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K반도체 스트리트’에 모이고 있다. 지난달 23일 찾은 이 거리의 남쪽 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 입구에는 딥엑스·리벨리온·가온칩스·QRT 등 한국 반도체 스타트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모두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로 글로벌 무대로 뻗어 나가려는 야심 찬 꿈을 안고 둥지를 틀었다.

박경민 기자

1992년 실리콘밸리 무역관을 개소한 코트라는 2009년 과거 LG반도체 연구시설이던 이 건물에 입주했다. 코트라는 IT 수출기업에 독립형 사무실을 임대하고, 각종 네트워킹과 영업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재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총 42곳. 그중 3분의 1이 반도체 관련 기업이다. 김형일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장은 “최근 반도체산업이 더욱 확장되고 있는 만큼 반도체 기업들의 입주가 늘고 있다. 크게 반도체·인공지능(AI)·모빌리티 세 가지 축으로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중 가장 ‘핫’한 분야가 반도체다”라고 말했다.

팹리스(설계)부터 설계자산(IP)·부품·장비업체까지 진출기업 분야도 다양하다. 원태식 딥엑스 미주법인장은 “잠재 고객사를 만나 명함을 주면 제대로 된 사무실을 갖춘 기업인지 직접 찾아와서 보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라며 “코트라 건물 내 입주해 있다는 건 일차적으로 검증이 됐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주법인을 세우고 활동하던 기업들도 기존 임대 사무실 대신 이쪽으로 옮긴 경우도 있다. 코트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K-반도체 위크도 열어 미국 상무부 관계자, 빅테크 기업인들을 초청해 한국 반도체 기업을 알리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왜 실리콘밸리에 갔나?


지난달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옛 LG 반도체 연구시설이 있던 건물로, 삼성 DS부문 아메리카부터 시작되는 'K반도체 스트리트'에 위치해있다. 새너제이=박해리 기자

“AI의 발전으로 이곳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우리가 그 파이 한 조각을 먹어도 티가 안 날 정도입니다.”(원 법인장)

실리콘밸리에 모이는 이유로 기업들은 다양한 고객사와 풍부한 기회를 공통으로 꼽았다. AI 발전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설계부터 시작해 부품·재료·장비 등 생태계 전반 시장도 사이즈가 커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본고장인 실리콘밸리는 그 물결의 중심이기에, 스타트업들은 이곳에서 새 기회를 모색하려 한다.

지난해 9월 입주한 리벨리온 관계자는 “잠재 고객이 많은 실리콘밸리에 전초기지를 세운 것”이라며 “미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박성현 대표가 한국·미국을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도체부품 품질·신뢰성 테스트 기업인 큐알티(QRT)는 지난달 막 입주를 마쳤다. QRT 관계자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데 현지에서 이들과 직접 네트워킹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또한 기술이 가장 발전한 이곳에서 활동하는 게 회사의 과제 중 하나인 신사업 발굴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K반도체엔 C가 없다...경쟁력은?


코트라가 지난해 7월 반도체의 본고장 실리콘밸리에서 'K-반도체주간'을 마련했다. 코트라는 북미 최대 최대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웨스트 2023'에 국가관을 구성했으며, 같은 기간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 내에서 K반도체 관계자와 미국 상무부 관계자, 글로벌 빅테크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네트워킹 행사도 열었다. 반도체 관계자들이 네트워킹을 갖는 모습. 사진 코트라

미국의 중국제재가 심화하면서 기업들은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점은 한국 스타트업에게 기회 요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고객을 만나 어필할 때 ‘우리에게 C가 없다’는 걸 강조한다”라며 “제품을 어디서 가지고 오는지를 계약서에 밝혀야 하는 곳이 있는데 이때 서해를 건너오는 게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제조공장이 있다는 점도 이들에게는 든든한 배후다.

성과를 내는 기업도 나왔다. 미국에서 L사 한 곳에만 납품하던 반도체 설비부품기업 동원파츠는 현지 네트워킹을 확대해 글로벌 10위권 내 장비업체 4개사와 추가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수출을 진행할 예정이다. 입주 후 올해 처음으로 미국 수출에 성공하거나 미국 내 매출을 확 늘린 기업도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잠재고객이 많은 만큼 경쟁 또한 치열해서다. 현지기업뿐 아니라 대만·일본·이스라엘 기업들도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진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시기로 선두 기업들이 더 큰 성공을 거둬 뒷 그룹을 이끌어야 할 단계”라며 “미국 내 시장 경쟁이 치열한 만큼 실증이나 투자자 유치 등 다양한 지원이 뒷받침 되면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위치한 삼성 DS(반도체)부문 미주법인. 삼성전자 뉴스룸

새너제이=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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