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3322번 버스' 영상속 주인공, 바로 접니다
[유지영 기자]
▲ 3322번 버스 영상의 주인공 한경아(38)씨 |
ⓒ 유지영 |
"영상에 나온 기사님을 찾아뵙고 감사했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한경아(38)씨는 최근 신기한 경험을 했다. SNS 영상에 자신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등장한 것이다. 유튜브 채널 KMIB의 '휠체어를 대하는 3322번 기사의 클라스'라는 제목의 3분 20초짜리 영상이었다.
영상은 서울 3322번 지선버스 기사가 휠체어를 탄 한씨를 수동 경사판을 이용해 안전하게 탑승시키고 내릴 때는 버스카드를 대신 찍어줬다는 미담을 담았다. 이 일화는 당시 버스에 탑승했던 시민이 인터넷에 기사님의 친절뿐만 아니라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승객들을 칭찬하는 글을 올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영상은 '감동실화', '아직 살 만한 세상' 해시태그와 함께 조회수 24만회를 기록했고 X(구 트위터)에서는 1만 번 이상 공유됐다. "버스카드까지 찍어주신 기사님, 감사해요"
그 영상 속 장애인이 바로 한경아씨다. 지난 7일 만난 한씨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모자이크로 얼굴을 가리면 뭐 하나요? 장애인은 휠체어가 신분증인 걸요"라고 답했다. 그는 "그야말로 자고 일어났는데, 영상이 어마어마하게 공유돼있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등장하는 줄도 모르고 '3322번은 내가 타는 버스인데?'라고 영상을 클릭했다가 저를 봤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휠체어에 달려있는 가방 등을 보고 본인임을 알아봤다고 했다.
"영상 속 그날이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저에게는 그저 매일의 일상이거든요. 늘 3322번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다녀요."
3322번 버스는 서울 송파구 복정역환승센터에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운행한다. 그는 "3322번은 버스 기사님들이 다들 친절하세요. 그날은 신체 특성상 날씨가 추워지면 경직이 심해지기 때문에 잘 못 움직였고 그래서 기사님이 버스 카드도 찍어주셨어요"라며 "다들 친절하시지만 그런 기사님은 드물어요. 기사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한씨는 지난 2018년 전북 익산에서 자립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다. 익산에서는 한 번도 저상버스를 타본 적이 없었고 서울에 오고나서도 바로 버스를 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사님들이 승차 거부를 하고, 승객들이 짜증을 낸다는 기사를 많이 접해서 봉변당할까봐 무서웠어요. 송파구민회관에 장애인을 위한 미술 동아리가 있어 1년 정도 활동을 하면서 처음 저상버스를 타게 됐어요. 그곳에서 3322번 버스를 타면 송파구민회관에서 집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한씨도 좋은 경험만 한 것은 아니다. 승차 거부도 당하고, 기계식 경사로가 고장나면서 식은땀이 줄줄 나는 경험도 했다.
"비장애인들이 버스를 탔다고 기삿거리가 되진 않는데, 아직도 장애인들은 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기삿거리가 돼요. 버스 기사님은 좋은 일을 하셨지만, 경사판을 내려주는 건 기사님의 의무이기도 해요. 영상을 보고 되레 장애인은 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길까봐 우려됩니다."
▲ 한경아씨가 지난 7일 자신의 자택 앞에서 3322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 유지영 |
그러면서 이들은 "영상 속 기사님이 오히려 창피해하셨다. 자기는 그저 교육에서 배운 대로 한 건데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고 그럴 만한 게 아니라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한서교통은 2018년 4월부터 기계식 경사판을 점차 수동 경사판으로 교체하고 있다. 관계자는 "기계식 경사판이 고장이 잘 나고 한 번 고장나면 버스 운행을 할 수가 없어서 바꾸고 있다"라며 "수동 경사판은 고장이 쉽게 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에 타려면 휠체어가 버스로 이동할 수 있게 연결하는 경사판이 필요하다. 기계식 경사판은 운전석에서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경사판이 버스에서 나오기 때문에 버스기사가 일어날 필요가 없지만 고장이 잦다. 반면 수동 경사판은 버스기사가 일어나서 직접 경사판에 달린 고리를 들어 올리고 내리게 돼있다. 기사가 번거롭긴 해도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 이점이 꽤 크다. 최근 버스 제조사들은 기계식 대신 수동 경사판을 설치하는 추세다.
관계자는 "저상버스의 경우 집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예약하고 타면 좋다. 휠체어를 타고 정류장에 계시면 버스 사각지대 때문에 운전기사가 휠체어를 잘 못 보기도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승차 거부당하면 서울시에 신고하면 된다. 서울시가 버스회사에 불이익(페널티)을 주니 승차 거부는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지역은 저상버스 타기 힘들어... 돌로 경사판 떼어내기도
▲ 버스 기사가 드라이버를 지렛대처럼 사용해 경사판 뚜껑 사이에 끼워 돌로 내리치면서 기계식 경사판 뚜껑을 열고 있다. |
ⓒ 김성훈씨 제공 |
짧은 영상 속에는 기계식 경사판과 수동 경사판의 문제점이 두루 담겼다. 영상에는 김씨가 탄 경기도 광주시 17번 버스의 기계식 경사판이 녹슬어서 열리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결국 버스기사가 무거운 돌을 주워와 두드린 후에야 경사판이 작동할 수 있었다.
▲ 영상 속 수동 경사판이 무너진 상태다. |
ⓒ 김성훈씨 제공 |
김씨는 2월 27일 <오마이뉴스>에 "저상버스는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지만 경사판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수동 경사판 또한 원래는 기사님들이 버스에서 내려 경사판을 잡아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성남시청이랑 버스회사에 민원을 넣으니 기사들에게 저상버스 교육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시정이 전혀 되지 않았다"라며 "2년 전부터 저상버스로 교체되길래 타보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탈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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