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데이고, 분진 가루 마시고…산업기능요원은 여전히 ‘극한노동’ [쿠키청년기자단]
구멍 뚫린 실태조사 속 인력난
실속 없는 안전 교육, 여전히 문제 방치
산업기능요원의 안전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병무청이 처우 개선을 위해 안전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중소 규모 사업장에선 뚜렷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한 화학 약품 공장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했던 김태민(24·가명)씨는 2021년 8월 화학 약품에 피부를 데이는 사고를 당했다. 김씨가 했던 약품을 소분하는 일은 유독한 약품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 안전 규칙상 2명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고를 수습해야 할 안전 책임자는 당시 현장에 없었다.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피부 재건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일단 수술하지 말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김씨의 입원을 막았다. 김씨는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의견을 그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소집 해제된 김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2022년 10월까지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던 성문영(24·가명)씨도 늘 안전을 위협받았다. 기계를 돌리기 전 매번 안전 점검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부품 조립 라인을 멈추면 안 된다는 회사 직원 때문에 안전 점검은 현장에서 잘 이뤄지지 않았다. 성씨는 “안전 규칙을 지키면 일을 절대 마치지 못한다며 규칙을 위반하는 일이 매우 잦았다”고 말했다. 자칫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성씨는 근무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안전하지 못한 근무 환경은 성씨의 건강도 해쳤다. 부품을 세공하면서 발생하는 분진 가루가 작업장 내부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매주 초 사원들에게 방진 마스크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수가 턱없이 적어 성씨는 금속 분말이 잔뜩 박힌 방진 마스크를 여러 차례 돌려써야 했다. 금속이 녹스는 걸 막기 위해 방청유를 뿌릴 때에도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산업용 윤활제인 방청유는 오랜 기간 흡입할 경우 호흡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성씨는 “근무 기간 내내 기침과 가래가 많이 나왔다”며 “회사에 말해도 ‘일단 알겠다’고 할 뿐, 그 무엇도 고쳐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산업기능요원의 안전 개선을 위한 정부 정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7년 산업기능요원이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다음해 병무청은 산업기능요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안전 교육 강좌를 개설했다. 교육을 이수하면 평가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식으로 업체의 참여를 독려했다. 하지만 온라인 교육의 특성상 실제로 교육을 수강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 이수도 필수가 아닌 권장 사항이다. 사업장 사정에 따라 교육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 충실히 교육을 듣는 것보다 사업장 자체의 안전의식이 높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각 요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에선 여전히 안전 교육을 간소화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병역지정업체에서 근무했던 A씨는 “교육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저렇게 하라’고 하면, 결국 현장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안전 문제는 산업기능요원의 과중한 업무와도 관련이 깊다. 병무청이 공시한 선정 기준에 따르면, 병역지정업체는 평균 상시근로자 수가 10인 이상인 중소기업만 선정될 수 있다. 다만 연구 인력이 상시근로자에 포함될 수 있어 현장 근로자는 기업 사정에 따라 10명보다 적을 수 있다. 근로자 부족은 곧 산업기능요원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퇴직과 이직이 자유롭지 못한 산업기능요원 입장에선 과중한 업무를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업기능요원에겐 편입 이후 6개월간 타 사업장으로 전직이 금지되는 ‘의무 종사 기간’도 존재한다. 김씨는 “회사의 안전 규칙 위반을 신고해도 의무 종사 기간까지 다른 사람과 껄끄러운 관계가 되기 싫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매년 병역지정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근로자의 안전 문제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무청에 따르면 올해 병역지정업체는 6767곳이고 산업기능요원은 1만4267명에 달하지만,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조사관은 45명에 불과하다. 조사관 1명당 사업장 150곳의 317명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정기실태조사는 온라인 대체가 가능해 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 위반 행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은 “산업기능요원은 군인과 노동자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사업장에서 일반 노동자보다 더욱 약자가 되기 쉽다”며 “산업기능요원들이 자체적인 소통 네트워크를 꾸려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부와 병무청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욱 쿠키청년기자 hansangwook1005@gmail.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심판대 선 이재명, 사법리스크 1차 허들은 ‘벌금 100만원’
- ‘의료·연금개혁’ 성과 자찬한 尹 정부…전문가들 “긍정적” “추진 의지 없어”
- 바닥까지 추락한 코스피, 반등 시점은 언제쯤
- 금감원 잦은 인사교체…“말 안 통해” 전문성 지적도
- 대한항공 합병 코앞인데 내부는 ‘시끌’…불안한 비행 앞둔 아시아나
-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포스코 글로벌센터 추진에 지역사회 ‘부글부글’
- 티메프 피해자들 “결제대금 유예해달라”…카드사 “심사 결과대로”
- 애플·테슬라로 몰리는 자금…“美, 자금흡수 모멘텀 강해”
- 반도체특별법 국회 문턱 넘을까…보조금·52시간 예외에 업계 ‘촉각’
- ‘분양가 걸림돌’ 검단 푸르지오 더 파크, 아쉬운 성적표